모두가 비슷하게 가난해지는 사회

집을 가질 수 없게 된 시대의 풍경

by LIFOJ

요즘 사람들과 집 이야기를 하면, 이상하리만치 조심스러워진다.
누군가는 전세로, 누군가는 월세로, 또 누군가는 아파트를 한 채 마련했다.
그런데 누가 무엇을 선택하든, 마치 정답이 정해져 있는 것처럼 굴곤 한다.

이상하다.
예전엔 다양한 삶의 방식이 자연스러웠다.
그런데 지금은, 자산이 있는 사람은 죄의식을 느끼고
자산이 없는 사람은 체념을 강요당하는 사회가 되어버렸다.

그 시작은 어쩌면 ‘평등’이라는 이름의 정책들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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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아파트와 집값 폭등 사이

지난 몇 년 동안, 정부는 집값을 잡겠다고 수십 차례 대책을 쏟아냈다.
한편으론 공공임대아파트를 대규모로 공급했고,
다른 한편에선 다주택자에 대한 규제와 세금 폭탄이 이어졌다.

그 결과는, 조금 아이러니했다.

집값은 계속 올랐고,
공공임대는 '기본값'처럼 자리잡았다.
사람들은 집을 사는 걸 주저했고,
임대에 머무르는 것이 오히려 ‘합리적인 선택’처럼 여겨지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자산을 형성할 기회는 조용히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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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향 평준화, 그리고 잃어버린 다양성

모두가 임대에 머물고, 모두가 집을 사지 않으면 평등할까?
표면적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그 평등은 너무 평평해서,
모든 삶의 층위와 색채를 지워버린다.

'왜 너만 집을 가졌어?'
'지금 집을 사는 건 투기지.'
'월세 사는 게 더 현명하지 않아?'

이런 말들 사이에 낀 사람들은 점점 자기 삶을 설명하는 데 지쳐갔다.
누구도 눈에 띄지 말고, 다들 비슷하게 살아야
덜 불편하고, 덜 미움받는 분위기.

그렇게 우리는 다양한 삶의 방식이 허락되지 않는 사회를 향해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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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것이 죄가 되어선 안 된다

자산을 가지는 것,
미래를 위해 집을 사는 것,
내 삶의 방향을 선택하는 것.
이 모든 것이 비난의 대상이 될 때,
사람들은 꿈꾸는 법을 잊게 된다.

그 자리를 대신한 건 냉소다.
“어차피 우리는 집 못 사.”
“운 좋은 사람들만 살아남는 거야.”
“공공임대라도 주면 고마워해야지.”

하지만 그게 정말 우리가 원하는 삶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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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사회를 위해

부를 욕망하는 것이 죄가 아니다.
자산을 형성하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자연스럽다.
다만, 그 욕망이 건강하게 실현될 수 있는 사회여야 한다.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살아야 하는 사회는 편할 수 있다.
하지만 결국은 숨이 막힌다.

누구는 사고, 누구는 임대에서 살고,
누구는 도시를 떠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전세를 고집하는 사회.

그 다양성이 허락될 때, 우리는 다시 숨을 쉴 수 있다.

그 다양성이 허락될 때, 비로소 자유로운 삶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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