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던 어린시절의 버드나무집
유년의 시기는 통째로 기억되는 것이 없다.
그것은 거대한 서사가 아니라, 앨범에 아무렇게나 꽂혀 있는 몇 장의 스냅사진처럼 단편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내게 남아있는 유년의 가장 선명한 사진은 망원동 57번지 집에서 시작된다.
그 집의 풍경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거대한 버드나무
한그루가 마음속에 그늘을 드리운다.
집의 상징이자 동네의 이정표였을 그 나무.
아마도 나는 그 나무 아래에서 세상을 처음 배웠을 것이다.
그 집 마당은 나에게 세상의 전부였고,
버드나무는 그 세상을 묵묵히 지켜보는 거인 같았다.
기억은 공간에서 사람으로 번져간다.
우리 집 끝 채에는 대구에서 온 분이 세 들어 살았다.
그의 구수하면서도 낯선 사투리는 어린 나에게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 대한 막연한 상상을 심어주었다.
그리고 내 시선이 닿지 않는 또 다른 세상이 앞집에 있었다.
그 집에는 오빠가 좋아하던 소녀가 살았다.
이름이 아직도 선명한 그 언니는. 공부도 잘했다
우리나라 최고의 S대 사범대에 입학해서 훗날
교사가 되어 정류장에서 가끔 마주친 기억이 있다
오빠의 마음을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그 소녀의 집 앞을 지날 때면 괜스레 조용해지던 오빠의 뒷모습을 기억한다.
오빠는 나보다 훨씬 큰 세상의 비밀을 먼저 알아버린 어른처럼 보였다.
나는 그저 오빠의 뒤꽁무니를 쫓는 작은 그림자일 뿐이었다.
그림자가 된 나는 오빠를 따라 논밭을 누볐다.
지금은 상상조차 할 수 없지만, 그때의 망원동에는 분명 흙냄새 가득한 논과 밭이 있었다.
유리병 하나를 들고 해가 저무는 줄도 모르고 메뚜기를 잡으러 다녔다. 내달리는 오빠의 등, 풀숲을 헤치던 소리, 손아귀에서 버둥거리던 메뚜기의 까칠한 감촉. 그 모든 것이 필름처럼 스쳐 지나간다.
초등학교 때의 기억은 발바닥에도 새겨져 있다.
학교는 왜 그리도 멀었는지. 사계절 내내 그 길을 걸어 다녔다.
특히 비가 온 다음 날 꽁꽁 얼어붙은 겨울의 신작로는 어린아이의 걸음으로 감당하기 힘든 시련이었다. 울퉁불퉁하게 얼어붙은 흙길은 발바닥을 아프게 찔렀고, 몇 번을 넘어질 뻔하며 종종걸음을 쳤다.
그 울퉁불퉁한 길의 감촉은, 어쩌면 내가 처음으로 마주한 세상의 거친 얼굴이었는지도 모른다.
어떤 기억은 흉터처럼 날카롭게 남아있다.
늑막염을 앓고 있었을 때
낯선 의사와 간호사가 내 사지를 붙들고 쇠꼬챙이 같은 바늘을 생살에 찔러 넣었다.
비명조차 제대로 지르지 못하게 나를 억누르던 그 필사적인 손들을 기억 한다.
병치레가 잦았던 탓에 버드나무 집으로 오는 의사도 있었다.
왕진 가방을 든 그는 의사인지도 모르는 낯선 어른일 뿐이었다.
그저 입을 벌리라 했고, 뜨거운 불빛이 입안을 향해 쏘아졌다. 붉고 뜨거운 감각, 그 낯선 공포가 치료였다는 것은 한참 뒤에야 알았다.
하지만 그 모든 아픔의 기억 위에는 언제나 나를 향한 온기가 덮여 있었다.
잇몸이 안 좋던 나를 치과에 데려갔던 아버지.
울음을 그친 나를 업고 집으로 향하던 그의 등은 세상 전부처럼 넓었다.
그러다 그만 발이 꼬여 시멘트 바닥에 함께 넘어졌다.
아스팔트에 갈려 무릎이 너덜너덜해진 그 바지.
찢어진 바지보다 나를 먼저 살피던 아버지.
버드나무 가지를 비틀어 풀피리를 가르쳐 주던 젊었던
아버지가 오늘 너무 그립다.
몇 년 전 초등 동창회로 망원동 57번지를 찾아가게
될 일이 생겼다
그곳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잠시 길을 잃었다.
내 기억의 좌표가 통째로 뽑혀나간 기분이었다.
그 모든 것이 있던 자리는 매끈한 아스팔트와 낯선 건물들로 뒤덮였다.
재개발로 새로운 도시가 된 것이다.
단편적인 기억들이라 더욱 소중하다.
물리적인 공간은 사라졌지만, 그 기억들만큼은 오롯이 내 안에 살아남아 나를 증명한다.
지금도 눈감으면 바로 앞에 그 버드나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