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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초록 Feb 10. 2023

황홀한 이질감

선물을 받을 때 기분이 좋은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갖고 싶었던 것을 대가 없이 받아서? 선물을 준 사람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져서? 물론 모두 맞는 말이다. 난 여기에 하나를 더 보태서, 나와는 관련 없었던 것이 나의 생활에 개입하게 되면서 새로운 의미를 지니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원래 내 것이 아니었던 것이 나의 삶에 들어오면서 풍성한 의미를 지니게 되는 것. 이것이 선물의 매력이 아닐까. 편지를 받으면 기분이 좋은 이유도 비슷하다. 생각지 않은 편지를 받으면 내가 지금껏 한 번도 보지 못한 문장이 유의미하게 나에게 주어진다. 그러면 우리는 그 평범하지만 낯선 문장에 마음을 빼앗겨 버린다.


우리의 삶은 대개 단조롭다. 아무리 여기저기 부지런히 돌아다니는 사람도 전체적인 삶의 모습은 꽤 단조롭다. 삶의 결을 통째로 바꿀 만큼 새로운 일은 잘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같은 자리에서 잠에 들고 잠에서 깬다. 무계획 여행을 오랜 시간 즐기거나 나그네처럼 여기저기 돌아다니지 않는 이상, 대부분의 사람들의 삶은 정해진 계획과 틀 안에서 움직인다. 그래서일까? 낯설지만 찬란한 장면을 보면 저절로 카메라를 들이밀게 되는 것 같다. 평소처럼 같은 길을 걷다 특이한 털 색을 지닌 귀여운 고양이를 보면 그렇게 반갑고 사랑스럽듯이, 단조로운 하얀 도화지 같은 우리의 삶에 출처 없는 색연필이 등장하는 순간, 우리는 그것을 마음껏 사랑하고, 그것을 오래도록 기억하려 애쓴다. 선물 같은 장면에 우리는 가끔 입꼬리를 올린다.


아무 의미 없는 것 같은 삶에 의미가 찾아오는 순간. 익숙해서 편하지만, 이젠 조금은 질리고 숨 막히는 나의 하루에 찾아오는 선물 같은 장면. 어떤 느낌인지 상상이 가는가? 그다지 무게감 있는 장면은 아니다. 앞 문단에서 말했듯이 평소처럼 같은 길을 걷다 마주친 고양이를 본 순간일수도 있고, 유난히 날씨가 좋아서 오늘따라 집 앞의 풍경이 유달리 감성적으로 보이는 순간, SNS에서만 봤었던 정말 가고 싶었던 여행지에 처음 발을 딛는 순간, 사랑하는 사람과 오랜만에 만나 잠시나마 진부한 일상 얘기를 나누는 순간 등 다양한 순간들이 선물처럼 찾아온다. 이런 가벼운 순간들이 주는 묵직한 황홀함은 아쉽게도 극히 짧아서, 단조로운 우리의 삶에는 꽤 이질적으로 느껴질 정도다. 마치 나의 것이 아닌 것 같은 낯선, 그러나 대체 불가능한 감정을 느낀다.


나의 삶에 전부가 되었으면 좋겠지만 그러지 못해서 더 귀하고 소중한 장면들이 있다. 아, 이 순간을 느끼려고 내가 살고 있구나,라고 느껴지는 순간들 말이다. 이런 순간들은 지루한 우리의 삶에 뜬금없는 선물처럼 찾아와 지칠 대로 지쳐 풀이 죽은 우리의 마음을 간지럽히고 떠나버린다. 아쉽지만 그래서 더 소중해진다. 이러한 작고 희소한 감각과 낭만과 희열이 우리를 내일로 질질 끌고 간다. 낯설어서 소중하고, 어색해서 사랑스러운 순간들이 있다.


옆에 있어도 그리워지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을 진심으로 좋아하면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좋아하는 사람과 항상 함께할 수는 없다는, 내가 너가 될 수 없다는 생각에 느껴지는 모순적 그리움이다. 아름다운 장면들도 그런 것 같다. 딥한 주홍빛 노을과 흐릿한 구름이 만드는 그림 같은 하늘을 목격하게 되면, 그 자리에 잠시 멈춰 그 장면을 묵묵히 감상하게 되다가도, 이 황홀한 하늘과 평생을 동반자처럼 살 수는 없다는 사실에, 나의 삶이 이런 그림 같은 풍경처럼 흐르지는 않는다는 사실에, 나는 얼른 나의 목적지를 향해 시선을 돌려야 한다는 사실에 왜인지 아쉬워지곤 한다. 필연적 이별이 선사하는 그리움의 가시지 않는 여운이다.


황홀한 순간들은 감질나게 떠나버리지만, 난 이런 희소하고 서먹한 황홀함이 좋다. 가끔 느낄 수 있는 생경하고 아름다운 장면들을 맘껏 기대하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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