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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뒤에 쓰는 세계여행기
by 두 개의 등대 Mar 29. 2018

아버지가 주신 100만원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귀국을 2주 남기고 친척분들께 무슨 선물을 드릴지 한참을 고민하던 중이었다. 세계여행을 간다며 날 응원해주시고 용돈까지 보태주셨기에 작은 선물이라도 꼭 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여기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한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친구가 조언을 주었다. 아르헨티나산 와인을 선물용으로 포장해서 한국까지 배송해주는 와인샵이 있다고, 현지 직배송이니 가격도 한국에서 사는 것보다 훨씬 저렴하다고 말이다.


 와인을 보내드릴 외할머니댁 주소를 몰라 스카이프에 접속했다. 아버지께 메시지를 보냈는데 마침 컴퓨터 앞에 계셨는지 바로 답장을 주셨다.  

<많이 힘들지? 백만원 부쳐줄테니 계좌번호 보내라.>  


 선뜻 <네!> 라고 답을 드릴 수 없었다. 이 여행만큼은 순수하게 내 힘만으로 마무리 짓고 싶었다. 아버지의 상황이 100만원을 선뜻 보내주실 수 있을만큼 여유롭지 않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내 수중엔 호주까지 가는 비행기 티켓 뿐이었다. 호주에서 한국을 돌아가기 위해선 별도로 항공권을 사야 했다. 그리고 그걸 사면 며칠 뒤부터는 굶고 다녀야 할 판이었다. 여행에 대한 내 의미부여와 현실적인 어려움이 팽팽하게 맞섰다.



 여기저기 조언을 구해 보았다. 게스트하우스 직원부터 시작해서 여행지에서 사귄 친구들, 심지어는 와인샵 사장님에게도 물어봤지만 모두가 잘 생각해보라며 내 고민을 그대로 돌려줄 뿐이었다. 답변을 기다리고 계실텐데, 도무지 어떻게 해야할지 알 수 없었다. 그 때 아버지가 보내신 다음 메시지가 도착했다.  


엄마에게 네 계좌번호 받았다. 돈 보낸다.
내가 살아보니
돈은 없는 것 보다는 있는게 낫더라.



 아버지는 힘든 일을 하셨다. 건축현장에서 사람 서너배크기쯤 되는 두꺼운 유리를 들고 하루종일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하셨다. 나도 일손이 부족할 때 종종 도와드렸던 경험이 있어 그 일이 체력적으로 얼마나 힘든지 잘 알고 있다. 아버지는 힘든 내색 하나 없이 무척 근면하셨고 맡은 일은 끝까지 책임지고 꼼꼼하게 해내셨던 것 같다. 친구라는 사람이 큰 돈을 들고 도망가기도 했고, 투자에서 큰 손해를 보신 적도 있다고 들었지만 내색 하나 하지 않으시고 굳건히 버텨주셨다. 그 덕분에 나와 동생은 대학까지 졸업할 수 있었다. 그러다 어느덧 60대를 바라보는 연세가 되셨다. 아무리 철인이셨다고 한들 이 힘든 일은 아버지의 허리와 관절 여러군데를 오랫동안 망가뜨려왔다. 게다가 건설업계 경기도 좋지 않아 일감 수주도 날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었다. 아버지는 힘에 부쳐 보이셨다.



 아버지는 무뚝뚝하셨다. 때로는 힘든 날도 많이 있으셨을텐데 도통 자식에게 당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으셨다. 언제나 똑같은 무덤덤한 표정이셨다. 식사자리에서도 몇 마디 일상에 관해 필요한 내용만 물어보셨다. 또는 “반찬 골고루 먹어라 .” 와 같은, 당시엔 잔소리로 들렸던 말씀 외에는 침묵을 더 편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았다.  


 아버지는 칭찬을 하지 않으셨다. 지금 생각해보니 기쁘셔도 자식에게는 표현을 하지 않으셨던 것 같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시험에서 전과목 100점을 받았어도, 내 실력으로 가기 힘들것 같았던 대학에 운 좋게 합격했을 때도 좋은 내색 한 번 하지 않으셨다. 아버지는 그 단단한 팔뚝만큼 강해보였고, 그만큼 엄격하고 어렵게만 느껴졌다.


 때로는 그런 아버지를 원망하기도 했다. 말을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집에서 말을 잘 안하게 되니 내가 이렇게 말을 못하는거라고. 칭찬을 거의 받지 못하고 자랐기 때문에 무의식 중에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튀어나와 불편할 때가 있다고.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를 너무 어려워했기 때문에 아직도 윗사람을 대하기 어려운거라고. 그냥 내 자신이 부족한 것인데도 그 이유를 굳이 아버지에게서 찾으려고 했다.



 대학교 3학년을 마친 뒤엔 어학연수를 가고 싶었다. 아버지께 짐이 되고 싶지 않아 100만원 들고 무작정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났다. 초반에는 어떻게든 돈을 벌어서 남들처럼 3개월만이라도 어학원을 다녀보는게 소원이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세계여행을 하리라 마음먹게 되었다. 반 년간 열심히 일한 끝에 간신히 목표한 여행자금을 모았다. 그 후 장기간의 여행을 준비하기 위해 1년만에 한국으로 돌아와 있을 때였다. 하루는 아버지가 거나하게 취하신 채로 밤 늦게 집에 들어오셨다. 그리고 내 옆에 털썩 앉으시더니 힘겹게 말씀을 꺼내셨다. “아빠는 혼자 힘으로 더 큰 세상을 보러 다녀오겠다는 아들이 자랑스럽다. 우리 아들은 꼭 성공할거야.” 적어도 내 기억 속에선 아버지께 한 번도 들어볼 수 없었던 속마음, 아버지께 한 번도 들어볼 수 없었던 칭찬이었다.


 아버지는 금전적으로 어려운 내 상황을 말씀드리지 않았음에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셨다. 그리고 대답을 망설이는 아들에게 말없이 100만원을 보내주셨다. 그 뒤에 전해주신 ‘돈은 없는 것보다는 있는게 낫다’는 말씀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내 기억 속에 있던 아버지 삶의 장면들이 하나 하나 차례로 지나갔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버지께 갚아드려야 할 것은 돈 100만원이 아니라 계속해서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어드리는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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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의 세계여행을 현재의 시각으로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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