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살때, 일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 방황했던 시기였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진작에 대학 진학을 포기했다.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나니, 시원하다기보다 답답했다.
'앞으로 뭐 먹고 살지?'
가장 큰 숙제였다.
그런 방황의 시기에 무작정 상경했다.
주산이라는 시골에서 대천고등학교를 다녔던 나였기에 서울은 처음이었다.
시골 촌놈의 서울 상경기는 그렇게 시작됐다.
갈곳을 정하고 오지 않았기에 어디로 향할지 막막했다.
그러다 문득 충무로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영화인들의 산실이었던 충무로였다.
어려서부터 영화를 좋아했던 터라, 충무로라는 곳을 그냥 무작정 가보고 싶었다.
그렇게 충무로라는 지하철 노선도를 찾았다.
3호선이군!
당시 지하철이 4호선까지만 있을 때여서 복잡한 느낌은 없었다.
용산 고속버스터미널(당시 그곳에 있었다)에서 내려 지하철 역사로 향했다.
그렇게 찾은 곳, 충무로.
충무로 지하철 역사를 빠져 나왔더니 대형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대한극장이었다.
'왜 이렇게 가슴이 뛰지?!'
나도 모르게 심장박동수가 빨라지는 기분이 들어
손으로 지그시 심장을 어루만졌다.
하지만 또 마땅히 갈 바를 알지 못해서 막막하게 그 자리에 한참을 서 있었다.
그렇다고 여기서 영화를 보기도 좀 우습고 영화표 시간도 맞지 않았다.
'그래. 무작정 걷자!'
갈곳도 모른 채 그냥 무작정 걷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한참을 걷고 또 걸었는데, 수많은 조명기계와 발전기와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대낮에 빛을 밝히며 모여 있는 사람들을 보자, 호기심이 발동했다.
천천히 그곳으로 다가갔다.
카메라가 있었고, 배우가 있었다.
그런데 유독 나의 시선을 눈부신 사람이 있었다.
놀랍게 그 분은 하얀 장갑을 낀 채, 손으로 진두지휘를 하고 있었다.
훗날, 알게된 그분의 이름, 차정남 조명감독님이었다.
네이버 발췌
차정남 조명감독/
수상내역
1996
제34회 대종상 영화제 수상 (공로상, )
1992
제30회 대종상 영화제 수상 (조명상, 개벽)
1991
제29회 대종상 영화제 수상 (조명상, 젊은 날의 초상)
1989
제13회 황금촬영상 시상식 수상 (조명상, 개그맨)
1983
제22회 대종상 영화제 수상 (조명상, 여인 잔혹사 물레야 물레야)
1983
제19회 백상예술대상 수상 (영화 기술상, 안개 마을)
1981
제20회 대종상 영화제 수상 (조명상, 만다라)
1978
제17회 대종상 영화제 수상 (조명상, 망명의 늪)
1969
제5회 백상예술대상 수상 (영화 기술상, )
1967
제5회 청룡영화상 수상 (기술상, 한)
놀랍게 내 눈에 들어온 사람은 배우가 아니라 차정남 조명감독님이었다.
차정남 조명감독님이 낀, 햐얀 장갑이 왜 그렇게 눈부시게 다가왔는지,
아무래도 조명의 길을 걷는 것이 나에게 운명이 아니었나 싶다.
충무로에서 우연히 만난 눈부셨던 하얀장갑이 나를 새로운 인생길로 안내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신기한 일이다.
갈바를 알지도 못한 채, 무작정 올라간 서울에서
우연히 만난 촬영현장!
그리고 눈부셨던 하얀 장갑.
하얀장갑의 손짓에 따라 분주히 움직이는 조명기사들을 보면서
'나도 저 일을 하고 싶다!'는 소망이 강하게 일어났다.
그리고 용기를 내서, 감독님을 찾아갔다.
"감독님~ 저도 감독님처럼, 이런 일을 하고 싶습니다."
그때 나는 까까 머리였다.
짧은 까까 머리에 작은 체구! 감독님의 눈에 얼마나 어린 놈으로 보였을까?
"너, 몇살인데?"
"이제 곧 고 3 졸업합니다."
"그래? 그럼 졸업하고 다시 찾아와!"
"어디로요?"
"충무로!"
"아~네! 알겠습니다."
어리숙한 나는 충무로라는 대답을 듣고 마치 천군만마를 얻을 듯 신나서 고향길로 향했다.
그리고 나는 정확히 고등학교 졸업장을 쥐자마자, 다시 서울로 상경했다.
눈부셨던 하얀 장갑의 주인공, 차정남 감독님의 말씀대로!
'충무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