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송합니다, 오해할 뻔했습니다.
우리를 빼고 나머지 여덟 집이 다 인도인들이었구나,
지난 글을 쓰며 새삼 떠올리게 되었다.
그런데 모두 인도인이라고 하면 괜한 편견이
생길 것 같아서 그 말은 하지 않았다.
오늘은 맘 잡고 그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지난 글 "카풀에서 만난 별로 아저씨"과
연결되는 내용입니다. 혹시 안 보셨다면 여기..)
미국 중부 여러 도시에서 살아봤는데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플로리다에는 유독 인도인들이 많다.
따뜻한 날씨 때문일 거라는 추측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러한 것 같다.
인도는 워낙 크고 인구가 많으니 내가 만난 인도인들
이라고 다 같은 말을 쓰는 게 아니었다. 집에서 사용
하는 언어가 힌디어, 딸라구, 따무 등등 다양하다.
언어뿐만 아니다. 문화도 태도도 다양하다.
똑같은 거 같다. 한국 사람들이라고
다 비슷한 성격을 가지고 있지 않다.
아주 넉넉하고 인심 좋은 한국인도 많고,
극도로 이기적인 한국인도 있다.
인종으로 나눌 수 없는 문제이다.
지난 글에 덧붙여 솔직히 고백하자면,
인도인들을 대해 들어온 편견을
내 생각으로 굳힐 뻔한 적도 있다.
인도인에 대해 안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는
한인들을 이곳 미국에서 참 많이 만났다.
그들에게서 많은 이야기를 들어왔다.
그런데 어떤 것이 사실이고 어디서부터가
부풀려진 것 인지 구분이 안 갔다.
내 주변에는 인도인이 거의 없으니
직접 경험해 볼 일이 없었다.
이곳으로 이사 오기 전까지는.
내가 들어온 그것들은, 인도인들은 거짓말을
많이 한다. 남을 속여 자신이 원하는 걸
얻는 것을 일종의 기술로 생각한다.
카스트 계급 문화가 사회 깊이
뿌리 박혀있어 무례한 경우가 많다.
사실 지난 글에서 말한 부정적인 내용들은
지금 카풀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작년 카풀 그룹 중 어느 한 인도 가정, 그 집의
남자가 보여준 말과 행동이 대부분이다.
난 원래 나한테 함부로 하는 사람들을
미련 없이 바로 떠나는 성격이다.
선을 확실히 긋는다.
그런데 작년에 카풀을 하면서는 그러지 못했다.
내가 너무 예민한 건가, 자기 성찰을 하고
또 하며 그렇게 일 년이 흘렀다.
올해부터 다시 딸 아들이 다른 학교를 다니게 된다.
딸 아들 각자 카풀이 반드시 필요하다.
원래 하던 카풀이 익숙하고,
다른 데 가봐야 또 그런 사람이 있을 것 같아서,
아니면 어쩌면 더 심한 사람이 있을까
경계하는 마음에서, 옮길 엄두를 못 냈다.
———
그런데 새 학기가 시작하니까 그 인도아저씨의
행태가 점점 더 심해진다. 스케줄 정할 때 기본 예의도
없고 작년처럼 늦는 건 마찬가지이다. 작년에 늦을 때
가끔이라도 주의를 주어야 했었나 보다. 아니면 심하게
늦을 땐 정색하고 얘기를 했었어야 했다.
우리 아들보다 한 살 많은 그 집 아들이 우리 아들을
은근슬쩍 괴롭히기도 해서 아들도 귀찮아했다.
그래서 급하게 탈출했다.
아들 카풀을 이번 학기 시작하고
일주일 해보고는 앞으로 이렇게 계속하는 건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주말에 급하게 새로 구했다.
다행히 가까운 곳에 한 자리가 비어있는 카풀이 있었다.
우리를 제외한 네 가정이 다 인도인이라 긴장했었다.
그 아저씨 같은 사람이 있으면?
더 심한 사람이 있으면?
카풀이 없으면 아들, 딸 스케줄을 내가
다 소화를 못 할 텐데... 걱정을 했다.
처음에 약간 비슷할 수도 있겠다 싶은 아저씨가
있었지만, 아니다. 두 달 정도 됐는데 괜찮다.
누가 많이 늦었을 때에는,
나도 작년 카풀에서 처럼 참고 그냥 넘기지는 않았다.
부드럽게, 그러나 정확하게 지적해 주었다.
'당신이 아이 픽업을 늦게 오면
이후의 우리 스케줄이 꼬인다.
예상 도착시간을 꼭 지켜 나와야 한다.'
한번 그런 일이 있고는 다 잘 지킨다.
한 3분 정도까지 늦는 건 괜찮다.
차가 막 하다 보면 나도 그런 일이 생긴다.
그런데 15분 이상 늦는 건 상대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그리고 두 달이지 난 지금 아주 만족스럽다.
작년에도 중간에라도 새로운 카풀 구할
시도를 했어야 했다.
우리 딸 아들은 동네에도, 학교에도
인도 친구들이 많다. 카풀에서 만난
그 이상한 아저씨 한 집 빼고는 다 좋다.
얼마 전 내 지인이 인도인이 옆 집에서 밤늦게 까지
파티하며 너무 시끄럽게 한다는 말을 한다. 그러면서
인도인들은 그래,라는 인상을 풍겼다. 그럴 때 나도
작년의 그 인도아저씨 경험을 얹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오히려 인도인들을 대변하게 된다.
우리 옆집도 그렇게 파티하며 시끄럽게 할 때가
종종 있다. 그런데 그냥 전형적인 미국인이다,
라고 말해 주었다. 그리고 내가 만난 인도인들은
여태껏 내가 가진 편견을 깨지게 해 주었다고
조심스레 꺼내본다. 막상 가까이 지네고 보니까
괜찮은 사람도 많더라고. 진상 카풀 인도인 이야기는
그냥 꺼내지 않는다. 그런 사람은 한국인 중에도 백인
중에도 만나 보았으니, 인종으로 묶을 일이 아니었다.
다양한 인종과 여러 문화가 혼합된 미국에서
살고 있다. 여기서 15년 이상 살면서 배운 것은
어느 인종이나 크게 다르지 않고
사람 사는 곳은 비슷하다는 것이다.
물론 한국인들은 대체로 부지런하다.
흑인들은 대체로 노래와 파티를 좋아한다.
멕시칸들은 한국인들처럼 음식을 먹고 나누는 걸
좋아한다. 이런 긍정적인 이야기는 받아들인다.
그런데 인도인들은 거짓말을 잘한다, 무례하다.
흑인들은 질서를 잘 지키지 않는다. 등등의 말은
잘못된 말이라고, 깨어야 할 것들이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한다.
혹시 이 이야기를 내가 인도인을, 흑인들을,
또는 어떤 인종, 어떤 나라사람들을 제대로
겪어 보지 못해서 그렇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꼭 되묻고 싶다.
당신은 그들을
편견 없이 제대로 만나 보았는가?
넓게 오래 경험해 보았는가?
2년 전 즈음 겪은 일이다.
또 다른 인도인과의 에피소드다.
우리 아들은 동네 친구들과 친형제처럼 매일매일
함께 놀았다. 우리 집에서 너네 집에서 그리고 밖에서.
우리 아들 빼고는 다른 네 명 모두 인도 아이들이었다.
어느 날은 그중에 우리 아들보다 한 살 나이 많은
친구가 놀러 왔다. 둘이서 한참 놀았다. 장난을 치던 중
그 친구가 우리 집 기둥 모서리에 부딪혀 머리에 피가
났다. 두피가 찢어져 선홍색 피가 주르르 흘러내렸다.
우리 아들도 4살 때 그런 경험이 있었다. 우리 집에서
놀다가 벽에 부딪혀 머리가 찢어졌다. 결국 그날
응급실 가서 머리를 세 번을 꿰맸다. 그때랑 거의
똑같아 보였다. 나는 멘붕이 왔다. 차라리 우리 아이면
응급실로 달려가겠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미국에 살면서는 Sue 문화에 대해 많이 듣는다. 소송,
고소를 제기 하는 것. 손님에게 실수로 커피를 쏟은
맥도널드를 상대로 소송을 해서 어마어마한 돈을
받아 낸 케이스를 뉴스에서 보았다. 그 비슷한 뉴스를
심심치 않게 접했다. 뿐만 아니라 개인이 개인에게도
소송을 걸어 큰돈을 받아 내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이렇게 우리 집에서 놀다가 아이가 다치면 우리가
병원비를 물어 줘야 하겠지. 만약에 우리가 병원비를
내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으면 수를 해서라도 다 뺏어
갈 것 같았다. 그러면 차라리 우리가 먼저 병원비를
낸다고 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런데 미국 병원비는 정말 어마하게 비싸다.
건강보험이 있어도 상상을 초월 한다.
작년 4월에 자전거 타다가 차에 살짝 치이는
사고를 당했다. 그때 응급실 가서 CT랑 엑스레이
네 군데를 찍었다. 그러고 나서 나온 돈은 천만 원이
훌쩍 넘었다. 물론 보험처리를 했지만 그래도 어마
어마한 돈을 내라고 해서 변호사를 고용해 처리 중이다.
아무튼 미국 병원비는 정말 상상을 초월한다.
이걸 아니까 선뜻 병원비를 대겠다는 말을 하기
어렵다. 일단 당황해서 남편한테 전화를 했다.
남편, 이런 일이 있었어, 어쩌지?
빨리 그 집에 데려다주면서 병원 가보라고
해야 될 거 같은 데… 어떻게 얘기해야 될까?
우리 둘이 결론을 내렸다. 일단 그 부모에게 빨리 병원
데리고 가라고 하고 병원비는 우리가 낸다고 하는
것이었다. 우리 집에서 놀고 있었는데, 안전을
책임지지 못한 우리의 잘못도 있었을 거다.
우리 아들이 밀거나 그런 게 아니었지만,
책임은 우리가 져야 할. 것 같았다.
일단 화장실에서 피를 씻어 내고 있는 그 아이한테
괜찮냐고 걱정스럽게 물었다. 대충 처리하고 같이
그 아이 집으로 갔다. 초인종을 누르자 그 아빠가
나왔다. 상황 설명을 했다. 너무 미안하다.
아이들이 놀다가 당신 아들 머리에 피가 났다.
우리 아들도 옛날에 이런 적이 있었는데
응급실 가서 바로 꿰맸다.
아마 병원에 바로 가야 할 것 같다. 병원비는 우리가 내겠다. 나중에 다녀와서 알려 달라.
그렇게 얘기하자. 그 아빠는 바로 아이를 걱정스럽게
살펴보았다. 그리고는 이렇게 답한다.
우리 아이 어렸을 때 이런 적이 두 번 있었다.
그런데 집에서 병원에 가지 않고 집에서 잘 나았다.
이번에도 안 가도 될 거 같다라고 말 하는 게 아닌가.
너무 깜짝 놀랐다. 나 같으면 당장에 병원에 가야 할
상황인 거 같은데, 괜찮다니…
아이의 부모는 인도에서 자랐는지 몰라도 이 아이는
미국에서 태어나서 자랐다. 여느 미국 아이처럼 자랐을
텐데 부모의 어릴 적 인도 방식을 고수해도 되는 걸까?
그 아빠는 괜찮다고 하며 오히려 아이를 데려다주고
신경 써서 고맙다고 한다. 그 집은 아이를 방치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한국 부모처럼 아이한테 온갖
관심을 기울이며 여러모로 신경을 많이 쓰는 집이었다.
다음날도 너무 신경이 많이 쓰여 연락을 했다.
아이는 학교를 가지 않고 하루를 쉬었단다.
정말 병원을 안 가도 되냐고 내가 물었고 아빠는
괜찮다고 한다. 그리고 오히려 나한테 고맙다고 한다.
원래도 가까이 지냈던 집인데 이 사건으로로 인해서
인도인에 대한 편견이 와장창 깨진 것 같다
그 아이도 그렇게 다친 거에 대해 전혀 마음에 남은 게
없는 것 같았다. 고의성의 전혀 없고 놀다가 그런 걸 잘
아니까. 그 뒤로 그 아이는 머리가 나을 때까지 이삼
주는 밖에서 못 놀았던 거 같다. 하지만 그 뒤에 완전히
회복되고는 원래처럼 우리 아들과도 다른 친구들과
함께 밖에서 뛰어놀며 우리 집에 왔다, 저 집에 갔다
하며 아주 아주 잘 놀았다. 이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돈을 요구하거나 그런 일이 없다.
뒤통수를 치듯이 고소를 하지도 않았다.
내가 들은 인도인에 대한 나쁜 말들은
편견이었음이 틀림없다
이 한 가지 사건으로 인도인을 다 좋게 보이냐고 하면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내가 만난 진상 인도인이
있듯이, 이건 극단적으로 좋은 인도인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 딸과 아들의 인도 친구들은
대부분 상식적이고 유쾌하고 좋은 친구들이다. 그래서
나는 인도인에 대한 편견을 깨는데 한몫을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