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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혜 Jun 01. 2022

가위에 눌리면 어쩌지

집이라는 장소(2)

악몽을 꿨다.

1인 가구로 살기 시작한 이후 아마도 처음.

회사 동료들과 인생에서 2번째로 요란한(첫 번째는 돌잔치) 생일파티를 하고 돌아온 날 밤이었다.


꿈에서 공중화장실에 들어가 앉았는데 사람인지 귀신인지 모를 무엇이 나타났다.

외롭다며, 자신을 버리지 말라고 내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늘어졌다.

긴 머리의, 높은 힐을 신은 여성이었다.


옷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하고 서둘러 화장실을 빠져나오니

세면대 앞에 뒤늦게 바지를 추어올리는 또 다른 여성이 서 있었다.

그녀에게 화장실의 존재에 대해 물었다.

그녀가 화장실 안에 있는 존재의 이름을 알려주었다. "피터 스티커"(대체 무슨 뜻이지)

내가 그 이름을 반복해 말하자 그녀가 화장실 밖으로 기어 나왔다.

너무 놀란 나는 달아났고 순간 잠에서 깼다.


이미 해가 뜬 것 같았지만 눈을 뜰 수가 없었다.

화장실에 가고 싶었지만 참았다.

눈앞에 무엇인가가 있을 것만 같았다.

좌우로 뒹굴고, 바디필로우를 안았다가 이불을 뭉쳐서 안았다.

그렇게 한참을 뒤척이다 겨우 잠에 들었다.


다시 일어났을 때에도 악몽의 여운이 남아 있었다.

악몽도 이런데, 가위에 눌리면 어쩌지.

갑자기 진지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과거에 혼자 살 때도 공포를 느낀 적이 있었다.

캄보디아의 한 시골 마을에서 지낼 때였다.

모르는 남성 2명이 내 집에 찾아와 친척이라며, 집주인을 찾았다.

집주인은 없다고, 혼자 산다고 답한 다음에서야 실수를 했다는 걸 깨달았다.

다른 나라(잘 사는)에서 온 혼자 사는 여성.

손쉬운 범죄 타깃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드러냈던 것이다.


그 순간 이후 두려움에 사고가 마비되었다.

해만 지면 방이고 거실이고, 온 집안의 불을 다 켜 두었다.

(당시에는 불을 켜 두면, 어두운 바깥에서는 집 안이 더 잘 보일 거라는 생각을 못했다)

불빛을 따라 모여든 날벌레가 집안에 쏟아져 들어와, 내 몸 위로 뚝뚝 떨어져도 불을 끌 수 없었다.

내 동선이 절대 보일 수 없는 창문 바로 아래 사각지대, 창문이 없는 복도에서 주로 생활했다.


당시 내가 살던 집의 방바닥은 온통 대리석이었는데,

딱딱한 건 물론이고 열대지방임에도 새벽이면 바닥에서 냉기가 올라왔다.

멀쩡한 침대를 그냥 두고, 복도에 11달러짜리 리클라이너 체어를 가져다 두고

그 위에 누워 얕고 짧은 쪽잠을 잤다.


그러면서도 무서워서 차마 집주인에게 물어볼 수가 없었다.

아니라고, 친척이 아니라는 답을 듣게 된다면 그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

사나흘 만에 4kg이 빠졌고(역시 다이어트엔 맘고생),

그로부터 며칠이 더 지난 다음에 집주인을 찾았다.

그 집에서 더 이상 살 수가 없어서였다.

그때 집주인은 웃으며 말했다. 두 명의 친척(남성)들이 며칠 전에 정말 다녀갔노라고.

하지만 이미 나는 잔뜩 지친 상태였다.




캄보디아에서 보다야 이번의 공포는 가볍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집에 나 말고 다른 생명체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라게 되었다.


이를 테면, 고양이.

집사가 자다가 시끄럽게 굴면, 체온을 나눠주는  건  바라지도 않으니

냥냥 펀치라도 날려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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