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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영 Jun 06. 2024

02. 봄과 함께 폐암이 찾아왔다.

- 1961년 생. 소띠. 만 62세

- 176cm / 54kg 모태마름

- 운동을 싫어해 남들보다 체력은 좀 안 좋지만, 고혈압 약 복용하는 것 외에 지병 없음

- 최고 취미이자 특기는 흡연과 음주

- 흡연은 이틀에 한 갑, 음주는 하루에 소주 1병 이상

  (무려 40년 넘게 함께 해온 인생의 동반자 뭐 그런 거라나)


뭐 어쨌든. 말 그대로 엉망인 생활 습관에 비해 아빠는 건강한 편이었다.




아빠는 지난 연말부터 왼쪽 어깨가 아프다고 했다. 회사 퇴직 후 스포츠 브랜드 물류창고에서 물건 분류하는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단순히 무리해서 아픈 거라고 생각했다. 정형외과에서도 무리해서 그런 거라며 진통제를 처방해 주며 물리치료를 받으란 권유뿐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부턴가 가슴 통증도 있다며, 숨을 쉴 때 불편하다거나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 등의 증상을 호소했다. 이번엔 동네 내과를 찾아갔다. 내과에서 폐 x-ray를 찍어봐도 별다른 이상이 없다고 했다.

별다른 이상이 없는데도 자꾸만 통증이 지속되자, 아빠는 또 다른 내과를 찾아갔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역시 이상 무. 통증 완화를 위한 진통제만 처방해 줄 뿐이었다.


숨 쉬기가 힘들다, 어깨가 아프다. 아프다는 말을 달고 살면서 아침에 눈뜨자마자 부지런하게 담배를 피우고, 저녁마다 소주를 들이키는 모순적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진절머리가 났다. 심지어 술 마시는 걸 포기할 수 없어 기껏 받아온 진통제를 제대로 챙겨 먹지 않는 날이 더 많았다.

"아프면 술을 끊든지! 아프다고 말을 하지 말든지!!"

아빠가 그럴 때마다 난 똥고집도 이런 똥고집이 없다며 아빠에게 짜증을 부렸다.

짜증 속에 담긴 걱정을 아빠가 알아차렸을진 모르겠지만, 아빠에게 다정한 말 대신 짜증으로 걱정을 표현하는 게 내 최선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2024년 2월 말.


아빠의 내과 주치의가 병원을 비워 다른 의사에게 진료를 보게 되었다. 불행 중 다행이었다.

아빠의 상태를 처음 본 그 의사는 폐 x-ray에서 뭔가 특이점을 발견해 냈다. 그리고 곧장 큰 병원에 가보라며 소견서를 써줬다. x-ray 상 왼쪽 폐에 뭔가 뿌연 게 보이는데, 암일 수도 있다는 거였다.


지독한 회피형인 나는 아빠의 상태를 회피하고 싶었다. 자기 최면을 걸듯 희망회로를 돌렸다.

 

'에이 암은 무슨 암이야. 그냥 염증이겠지.'



2024년 3월.

나는 사실 '의사 파업'은 남의 일인 줄 알았다. 물론 파업 때문에 제때 진료를 받지 못하는 환자들을 보며 함께 분노했지만, 당장 그게 우리 가족에게 닥친 일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어느 날 눈을 떠보니... 마치 벌이라도 받듯 그건 우리 가족에게 닥친 일이 되었다.

대학병원에 예약을 잡는 일은 생각 이상으로 힘들었다. 기본 두 달은 기다려야 했다.

마음이 조급했다. 두 달을 기다릴 여유가 없었다.

그러다 병원에 새로 부임했다는 호흡기내과 교수님에게 겨우 외래 진료를 잡았다.

암이면 혈액종양내과 이런 곳 아니야? 호흡기내과가 맞나? 작은 의문이 들었지만,

진료를 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하는 시기였다.


"하필이면 의사 파업일 때 아프고 그래. 운도 지지리도 안 좋지."

속상한 엄마는 눈물을 글썽이며 마음에도 없는 핀잔을 늘어놓았다. 서로에게 다정한 말 한마디 못 하는 건 아마도 집안 내력인가 보다.


3월 15일. 외래진료를 본 아빠는 그날 바로 입원 수속을 밟았다. 바로 입원으로 이어질 줄은 몰랐는데...

하지만 당황할 시간도 없었다. 이틀에 한 번 꼴로 온갖 중요한 검사가 이어졌다. 기본 X-ray부터 조영제 CT 검사, 조직검사까지. 정신 차려보니 일사천리로 검사가 끝나있었다.


그리고... 결과는 최악이었다.

폐암 3기.

봄과 함께 우리 가족에게 폐암이라는 불청객이 찾아왔다.


모든 사고회로가 정지되는 것 같았다.

난 계속 외면해 오던 현실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다음날, 우리 가족은 [다학제진료]에 참여했다.

(✓ 다학제진료 :  전문의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여러 과의 진료가 필요한 암, 종양 환자들을 같이 진료하는 시스템)


회의실 큰 모니터 앞에 동그랗게 방사선내과, 외과, 혈액종양내과, 영상의학과 등 전문의들이 둘러앉아있었다. 엄숙한 분위기였다. 그리고 회의실 센터 자리에 우리 가족이 숨을 죽인 채 착석했다.

분명 들어오기 전엔 떨리지 않았는데, 갑자기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폐암 3기. 비소세포폐암. 전이 없음

(✓ 비소세포폐암 :  폐암은 크기와 형태에 따라 소세포폐암과 비소세포폐암으로 구분되며, 비소세포폐암이 전체 폐암의 대다수인 80~85%를 차지함. 성장속도가 비교적 느리나 주변 조직으로 퍼진 뒤 전신으로 전이됨)


다행히 아직 다른 장기로의 전이는 없었지만, 암 사이즈가 약 5cm 정도로 너무 컸다.

게다가 암의 위치가 흉벽 가까이에 붙어있어 수술이 어려운 상태였다.

당장 항암, 방사선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며 스케줄을 잡으라고 했다.


갑자기 너무 많은 이야기들이 파도처럼 밀려와 날 집어삼켰다. 그냥 맨 몸으로 파도에 던져진 기분.

정신 똑바로 차리고 이야길 들어야 하는데, 파도에 이리저리 휩쓸려 숨쉬기도 힘이 들었다.

아빤 표정을 알 수 없는 얼굴이었다. 증명사진을 찍는 사람처럼 어딘지 모르게 어색한 자세와 얼굴.

'암에 걸린 본인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궁금하지만 절대 물어볼 수 없는 의문이 잠시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렇게 나는 갑작스럽게 암 환자의 가족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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