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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자전 속도와 비행 공포증

나에게 힘을 주는 것!

by 여름타자기

아이를 재우고 나도 잠을 청하려는데 번쩍 불빛이 창을 밝힌다. 그리고 이어지는 천둥소리. 비가 오나 보다. 우르릉 쾅쾅. 천둥과 비는 사람과 장소를 차별하지 않으니 참 공평하단 생각을 하며 잠이 들려는 찰나 다시 한번 천둥이 친다. 이번에는 더더욱 크게. 신의 기침 소리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크게. 내가 지구라는 행성에 살고 있다는 감각이 살아온다. 살아있는 지구. 그냥 매일 하는 말이지만 지금은 정말 실감이 난다.


나는 비행공포증이 있다. 좀 심할 경우 공황 증세를 보이기도 한다. 예전 심한 터뷸란스 이후로 조금 흔들리거나 감각의 변화가 느껴지면 몸에서부터 반응이 생기는 것이다. 눈물을 계속 흘린다던지, 호흡이 가빠지는 것. 그래서 혼자 비행기를 타는 것은 나에게 큰 결심이 필요하다. 얼마전 제주도 여행에서도 비행기를 타기 전까지 계속 긴장이 되었다. 약을 먹을까 했지만 사실 까먹어서 놓쳤다. 비행기가 이륙하려는 순간 내 옆에 김창옥 씨가 앉아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사를 하고 싶었지만 이륙과 동시에 호흡을 컨트롤하는 게 먼저였다. 옆에 대통령이 앉아 있었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비행하는 내내 나는 겉옷을 머리끝까지 덮었다. 눈물을 흘릴 때 남들이 보지 않게 하려는 것. 비행기에 내려서 김창옥씨에게 팬이었다고 말이라도 할 껄 후회했다. 이런 내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조금은 답답하기도 하다.


극도의 공포감이 몰려오면 나는 스스로를 달리기 위해 여러 가지 생각을 한다. 이 흔들림은 추락이 아니라 추진력에서 오는 진동일뿐 기체는 흔들리지만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 시속 800km의 엄청난 속도로 나를 목적지로 데려다주고 있는 것을 의식적으로 떠올린다. 이런 생각은 공포심을 말끔히 지우진 않지만 어느 정도 효과는 있다.


천둥소리를 들으며 생각해 보니 내가 사는 지구는 비행기보다 더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다. 지구는 24시간 만에 지구 한 바퀴를 돈다. 자전 속도는 적도를 기준으로 시속 1670km. 비행기의 거의 두 배 이상에 달하는 속도다. 하지만 일상생활 속에서 나는 어떤 긴장도 두려움도 느끼지 않는다. 나의 감각 평균값 주파수는 단단하게 지구라는 행성이 마련한 느낌에 고정되어 있다. 실상은 빠르게 돌아가는 행성 위에 있으면서도 말이다.

만약 내가 24시간 비행기나 우주정거장에서 생활을 한다면 내 두려움은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곳의 느낌과 감각에 또 적응을 해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평소에 나를 어떤 감각과 일상에 단단히 묶어 두느냐가 나를 어떤 방향으로 길들일지, 어떤 사람으로 만들지를 결정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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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는 매일 운동을 하고 식단 하고 조금씩 글을 쓰며 영어 공부를 하고 있다. 이 과정이 쉽지 만은 않다. 아직 에너지를 쓰고 힘을 많이 들여야한다. 하지만 계속해서 이 감각과 일상에 나를 단단히 묶어두고 싶다. 이것을 당연한 불편함으로 나아가선 기꺼운 즐거움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시속 800km의 비행기가 나를 목적지에 데려다주듯 루틴으로 흘러가는 일상도 나를 계속해서 새로운 기항지로 데려다줄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렇게 꾸준히 매일을 쌓아가다 보면 지구의 발을 편안히 딛고 살아가는 것처럼 루틴의 행성에 뿌리를 단단히 내리고 편안히 또 즐겁게 열매를 맺을 수 있지 않을까. 이 생각으로 오늘의 나를 일으켜 세워본다. 힘을 내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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