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황신애 May 15. 2020

정의연 기부금, 본질 꿰뚫기 2

#1. 비영리의 스피릿과 목적사업에 대하여

정의연 사태는 성금이 할머니를 위해 쓰여지지 않았다는 다소 충격적인 말에서 출발했다.  

이 때 미묘한 2가지 이슈가 발생했다.  


이슈1. 기부금이 잘못 쓰이고 있다는 설정이 마련되었고 정의연은 어떻게 해명할 것인지 숙제가 생겼다.  

할머니의 발언을 들은 보통 사람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그럼 기부금을 할머니들 안 드리고 어디 쓴거야?' 라고 묻게 된다.  


그런데 이 질문에는 비약이 담겨 있다. 정의연의 모든 기부금은 위안부 할머니를 위해 직접 쓰이는 것이 옳다는 전제를 슬그머니 깔아둔다.   


원래대로 하자면? '정의연의 미션과 목적사업이 뭐길래'를 물어야 한다.


만약 정의연의 미션(목적사업)이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생계지원'이라면, 현행법상 기부금의 85% 이상을 직접지원과 간접지원방식으로 할머니들의 생계지원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  


그런데, 현재 정의연의 미션은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한 활동(연구, 조사, 교육과 장학, 추모와 국제연대사업)과 전시성폭력 재발방지를 위한 활동과 피해지원이다. 따라서 할머니들을 위한 직접지원은 여러 사업중의 하나이며 기부금을 이 사업에 쓸지 말지 또는 얼마나 쓸지는 사업계획에 따라 결정된다.


그러니 할머니께서 성금이 할머니들에게 오지 않았다고 하신 말 때문에 정의연의 기부금 지출이 부정하다고 하는 것은 비약이다. 기부금이 정해진 목적사업 외에 썼는지 기부금 모집이나 관리 상에 진짜로 기부금에 부정이 있는지는 실제 사용내역을 확인해 보아야 알겠지만 말이다.  


이 사건이 시작될 때 정의연은 먼저 단체의 정체성과 미션을 잘 설명하면서 설정을 다르게 돌려 놓았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렇게 했더라도 언론이 그 중요성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것이라서 상황이 달라졌을지는 잘 모르겠으나 적어도 본질이 흐려지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이슈2. 정의연의 미션과 목적사업, 수행방식에 대해 활동가와 할머니들의 생각이 일치하는지, 즉 당사자 간 소통의 이슈다.  


비영리 단체 활동가들은 보통 사람들보다 더 큰 열정을 가지고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다.


어떤 이유로든 활동가들의 목적과 목표, 활동방식 등이 할머니들의 기대와 일치하지 않았거나 할머니들이 다르게 해석하고 있었다면, 이는 문제의 씨앗이 될 가능성이 크다. 혹은 처음에는 일치했다해도 지속적으로 소통하지 않으면 어느 순간 입장차가 생길 수도 있다. 게다가 위안부 할머니들의 고령화, 그리고 생존자가 줄어든 상황은 할머니들의 생각과 마음에 변화를 주기에 충분하다.


비영리의 미션과 목적사업은 단체의 정체성이며 존재이유이며 생존방식을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본질이다. 기부금을 받아서 일하는 단체일 경우, 기부금의 사용처는 이러한 가치체계(미션과 비전)를 중심으로 결정되어야 한다.


따라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단체의 비전과 미션, 가치에 대해 잘 모르면 단체가 일하는 방식과 기부금 사용에 대해 오해를 품거나 신뢰를 잃게 되기도 한다. 사람의 생각은 수시로 변할 수 있다.


단체는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단체의 미션과 목적사업을 알리고, 그 목적달성을 위해 어떤 노력을 경주하고, 어떤 변화와 성과들을 이루어가고 있는지, 그 과정에서 경비가 어떻게 조달되고 사용되었는지를 공유해야 한다. 이 노력이 소홀해지면 어느 순간 단체에 대한 오해가 증가할 수 있다.   


이 2가지 이슈로 정의연 사태를 다 설명할 수는 없다. 이용수 할머님의 갑작스러운 발표가 어떤 계기로 촉발되었는지, 어떤 누적된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 원래부터 가졌던 태도들을 정의연이 간파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인지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알 수 있으니 무리하게 추측할 일은 아니다.


분명한 것은 서로의 입장에 상당히 틈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어쩌면 윤미향 전 이사장의 비례대표 당선이 자극이 되었을 수도 있다. 할머니 입장에서는, 오랜 노력에도 불구하고 위안부 문제에 큰 진전을 이루지도 못했고 동료 할머니들은 한 분씩 세상을 떠나시는데 이 문제를 해결할 사람이라고 믿고 의지했던 활동가가 더 큰 물로 나가 일하겠다고 정의연을 떠난 것이 마치 배신처럼 느껴졌거나 얼마남지 않은 생에 더 의지를 불태울 이유를 잃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이렇게 중요한 것이 미션과 고유목적사업이다. 단체의 미션을 존재의 이유라고도 한다.  존재이유는 비영리 뿐만 아니라 인간 개개인에게도 매우 중요한 문제다.  존재와 존재이유를 따지는 영역을 철학이라고 하니 비영리 철학이라 해도 될 것 같다.


비영리 철학은 비영리 경영의 초석이 되기도 한다. 비영리 단체가 왜 만들어졌고, 어떤 사업을 해야 하며, 어떤 사람들이 일하고 있으며, 어떤 목적과 비전을 추구하고, 그 일하는 방식은 어떻고, 어떻게 경비를 조달하고 사용하는지, 이해관계자들과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종합적인 원칙을 포함한다.


나아가 사실상 단체의 고유한 비영리 철학은 우리나라 법이 어쩌지 못하는 수만개의 비영리 단체들의 행동양식을 자율적인 방식으로 규율하는 가장 중요한 원칙이기도 하다.바로 이런 이유로 비영리 단체의 정관의 맨 앞부분에 설립의 목적과 목적사업의 종류와 일하는 방식을 정해두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스스로 자기 검열할 수 있도록!


모든 비영리 공익법인과 단체들은 존재이유(미션)가 있다.  그 존재 이유를 상실하면 단체를 해산을 하거나 또 다른 목적으로 갈아타야 한다. 어떤 일을 하든 어떤 재정을 사용하든 미션에 부합하도록 하는 것이 정석이다. 목적을 상실한 곳은 기부금을 받아서는 안 된다. 목적이 불분명한 경우도 기부금을 받아서도 안 된다. 그 목적이 반드시 직접 사업비일 필요는 없으며, 많은 경우 비영리 활동가를 위한 인건비가 가장 중요한 경비가 되기도 한다(이 부분은 모금비용와 운영비를 다룰 때 다시 언급하겠다). 그런데 이 중요한 내용을 잘 다루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는 단체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존재에 관한 철학이 사문화되거나 철학을 상실한 조직은 외부와의 견해차에서 발생하는 리스크를 조율하기 어려워진다.


미션과 비전은 단체의 스피릿, 즉 영혼이다. 존재이유를 박물관에 걸린 전리품으로 간주하는 조직은 토대가 약해짐을 기억해야 한다.


<To be continued>





작가의 이전글 정의연 기부금, 본질 꿰뚫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