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봄날이 미치도록 아프다
우리는 경상도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와 직장생활을 하는 몇 안 되는 동네 친구였다.
나의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삶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유일한 친구.
나와는 달리 결혼은 하지 않고 싱글라이프를 즐기며 회사생활을 했던 그녀는 나와는 전혀 다른 일을 했지만, 같은 고향이라는 공통분모 속에서 수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하루하루의 스트레스, 억울했던 일, 웃긴 실수, 뒷담화, 그러다 울컥한 고백까지.
늘 나보다 한 발 앞에서 괜찮다고 말해줬고, 위로와 질책, 용기까지 망설임 없이 전해주던 친구였다.
우리 나이에 회사 생활을 하는 여자 직장인이 겪는 일들은 비슷했다.
유난히 공감 능력이 뛰어나고 친구도 많았던 그녀는 이제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코끝이 찡해오고, 그녀의 별명이 입에서 튀어나올 듯한데 눈물이 먼저 튀어나온다.
일 년에 얼굴을 자주 보진 못했지만, 힘들거나 고민이 있을 때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친구였다.
그런데 몇 달쯤, 명절이 지나고 다음 명절이 오기 전까지 연락을 못 하고 정신없는 날들을 보내는 사이,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견디다 그녀는 세상을 떠났다.
나의 친구가 아프다는 소식을 들은 때는 이미 호스피스 병동에 있었다. ‘호스피스 병동’이라는 단어 자체가 나의 심장을 멎게 하는 것 같았다. 2024년 부처님 오신 날,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나는 길에서 종일 울다가 결국 너를 보러 가지 못했다. 그리고 그 주 주말에 너의 영정사진 앞에서 목놓아 울었다.
나는 얼굴 보자는 약속을 결국 지키지 못했고, 미치도록 좋은 봄날에 떠나보낸 그 친구는 매년 날씨가 좋은 봄날마다 내 마음을 찢어 놓는다.
나의 가장 아픈 이별 두 번은 모두 화창한 봄날이었다. 아버지, 그리고 그녀. 그래서 나는 봄날이 날씨가 좋으을수록… 미치도록 아프다.
이번에도 퇴사의 고민을 깊게 오랫동안 하면서, 나도 모르게 전화기를 들었다가 놀라고, 친구의 언니에게 연락을 해볼까 망설이기도 했다. 내 친구는 나의 대나무 숲이 었다.
너라면 아마도 "힘들긴 뭐가 힘들어, 다 힘들어. 그 정도면 행복한 고민이야. 열심히 일해!!" 라고 했겠지.
너는 이제 이 세상에 없지만,
너의 말과 웃음은 여전히 내 귓가에 살아 있어.
오늘, 이 글을 너에게 바친다.
우리가 함께했던 시간은 참 고마웠어.
그리고 너는 영원한 나의 편..
그립고, 또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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