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은 것을 돌려주기 위해, 모로가도 서울가는 교사되기
달빛 : 학교 학생들에게 돌려주기
윤리 교사가 된 후에, 내가 살면서 받았던 따뜻한 눈빛과, 따뜻한 말.
즉, 진심들을 나의 학생들에게 돌려주고 싶었다.
[1] 어둡고 무기력한 학생, 16살스러운 학생다움으로
학교 앞에 바다가 보이던 중학교였다.
독특하게도 복도마다 테라스가 있고, 테라스 벤치에서 바다를 구경할 수가 있었다.
가끔씩 끼룩끼룩 우는 갈매기 소리를 귀에 담고, 저 멀리 보이는 갯벌을 눈에 담을 수 있었던 학교.
그 학교의 복도에서, 테라스에서, 상담실에서.
가족이 손잡아주지 않는다면, 손잡아 줄 수있는 또다른 그 사람이 내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소위,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손가락질 하는, 엇나가는 학생들과 상담을 정말 많이 했다.
(물론 다른 학생들과도 상담은 두루두루 많이 했다. 상담교사인지 담임교사인지 잊을 정도로 과몰입이 문제....^^;;)
공부는 커녕 학교에서 대들지 않으면 다행이라고 여기는 남학생이 있었다.
첫날부터 눈빛도, 분위기도 어두웠고 다른 친구들보다 머리하나는 더 있을만큼 키도 크고 성숙해보였다.
그 친구는 깨어있는 시간보다 자는 시간이 많았고, 친구들은 무서워서 혹은 귀찮아서 잘 깨우지 않았다.
선생님들도 깨우기 포기한 것 같았다. 처음 상담할 땐 별 말이 없었다.
어떤 사람에게 어두운 분위기가 나는 이유는, 어두운 행동이 누적되고 어두운 마음을 지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저 친구 선도위원회 간 적도 없고, 그냥 자주 자는 무기력한 애 아니예요?"
물론 무기력하다는 것은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느껴지는 어두움은 그 사람이 세상의 기준에 어긋나는 행동들을 누적해가고 있다는 어느정도의 반증이라는 것이 내 개인적 생각이다.
다른 친구들과의 상담을 통해 상황을 열심히 조사해보았더니,
그 친구의 잘못된 행동이 운좋게도 학교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절도 행위 때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던 목격자 격의 친구들이 있었다. 그 친구는 편의점 등 가게에서 물건을 자주 훔치고, 흡연은 당연히 하고 있었다. 약한 친구들에게는 패드립, 욕설 등을 하면서 은근히 괴롭혔다.
'절도'라는 행위에 놀라는 외부 혹은 학교 안 사람들이 있는데, 의외로 학교 학생들은 절도 사례가 꽤 많고 학생이라는 이유로 운좋게 사건화가 되지 않은 경우가 많을 뿐이다.
형식적인 공간의 형식적 상담이라 여길만한 상담은 효과가 없었다.
물론 나는 진심으로 말했지만, '어차피 다 거기서 거기일걸? 너도 날 포기할걸?'이라는 메세지에 갇혀 있는 친구 같았다. 처음 생각보다 더 마음이 문이 닫혀있음을 알 수 있었다.
뭔가 좀 더 신선한 장소에서 '다름'을 느낄 수 있는 대화의 시작이 필요하다고 여겼다.
대대적으로 집단 상담을 공지했다. 예산 초과 불과 기준을 제시해주고(내 작은 월급..ㅎㅎ) 원하는 날짜, 시간, 장소, 함께 할 친구 1~2명을 무조건 적어서 내도록 하였다. 투덜대던 친구들도 전체적인 분위기에 휩쓸려서 결국 다 신청했고 그 친구는 '6교시 있는 날, 방과후, 빽다방, 주제는 진로 상담'을 적어서 냈다.
아마 처음보는 유형의 교사여서 호기심이 동했던 것 같다.
빽다방에서 본 그 친구는 눈은 이전과는 그래도 조금 달랐다. 대화를 길게 해보니 누군가와 진지한 마음을 나눈적이 없을 확률이 커보였다. 항상 새까맣게 노려보던 검은 눈동자가 동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그냥 그런 어떤 한 중학생의 눈동자로 변해갔다.
'저 OO고등학교로 가고 싶어요. 공부도 해볼래요. 면접 준비도 도와주세요.'
결국 그 친구는 자기 의지로 자기 삶을 선택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늘 무기력속에 휩싸여 있는 것이 아니라, 처음으로 눈을 뜨고 스스로 무엇인가 적고 정리하고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의 6개월을 싸워 댄 결과 학급 몇몇 친구들도 내 지극정성에 감화되었는지(?) 이 친구를 같이 변화시키고자 노력하기 시작했다.
공부잘하는 친구들은 이 친구 성적향상을 위해 자기 집에 데려가서 공부를 시키고 나한테 말해주기도 했다. 아래처럼. 인증 사진도 보내고는 했다.
꿈을 가지기 위해 노력해보고, 고등학교 면접 준비도 해보고. 반에서 웃는 날도 많아졌다. 매번 어둠 속 풍운아처럼 돌아다니더니만 눈이 마주치면 귀엽게 웃기도 했다.
차마 기하급수적 성적 향상과 기가막힌 반전드라마까지는 못만들었지만, 나름대로 그 친구는 자신이 준비하고 선택했던 학교에 진학했다. 학생다운 그 친구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었던 하루하루가 행복했다.
그 친구도, 자신이 조금 더 학생다움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그 날들이 다행인 날들이었길 바란다.
[2] 요즘말로 소위, 남미새로 낙인찍힌 날라리 학생, 멱살잡고 FM만들기
2012년도에 담임을 했던 제자가 무려 9년 뒤인 2021년도에 다시 연락이 왔다.
교사가 될 예정이라고 말이다.
뭉클했다. 과거에는 이 학생이 교사가 될 것이라고 교사, 학생들 모두 다 예측하지 못했을 만한 친구였다. 당시 흡연, 음주 등 비행 행동을 하던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고 이성 문제로 구설수가 많았다.
예쁘장한 외모때문에 여러 남학생들이 관심을 보였고, 이 친구는 필터링 없이 여러 남자 친구의 행동을 받아주면서 어마어마한 구설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질투섞인 유언비어는 생각보다 빨리 퍼져서 어느새 스스로는 모를만큼 빨리, 학생들 사이에서 이 친구는 결국 아무 남자하고 가볍게 지내는, 별로인 여자애의 프레임에 갇혀버렸다.
남학생들 사이에서 이친구는 알게모르게 가볍게 대해도 되는 성적인 괴롭힘의 대상이 되었고 그 프레임 속에서 흡연, 음주 등의 행동을 보이는 다른 날라리 친구들과 좀 더 친밀해지기 시작했다.
부모님은 딸이 그런 모습이 되는 것을 인정할 수 없어서 윽박지르고 혼내고 휴대폰을 압수하고 강경하게 나오셨지만, 반항심 때문인지 오히려 문제 행동이 점점 더 심해지기 시작했다.
교사스럽게 얘기해도 '어른인척'하는 얘기는 어떤 이야기도 귀에 들어오게 하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몇번을 선도위원회도 보내려고 하고, 부모님과 같이 엄하게 이야기도 해보고, 윽박질러보기도 했지만 별로 변화가 없었다.
그래도 밤 9시에 학부모님, 학생, 나 이렇게 야간 운영 까페에서 상담하고, 진절머리나게 혼내고 상담한 절대적 시간이 누적되었을 것이라 믿고싶기는 하다.
그리고 마지막, 결국 '교사답지 못하게 무슨말이냐'는 민원 신고를 당할 각오를 하고 정말 동네 이모느낌으로 진심어린 조언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얼굴이 예쁜건 사실이고, 예뻐서 이성의 관심이 따르는 것도 자연스럽다고 생각해. 그렇지만 '인기'를 얻는 것과 '소비'되는 건 달라. 네가 원하는 것이 '관심과 인기'라면 지금 처럼 하면 나중에 오히려 너한테 관심보이는 척 하던 친구들이 질려할걸. 연예인들 봐봐. 자기 얼굴 모습에 맞게 이미지 메이킹을 하잖아. 내가 볼 때 너는 '청순'이미지에 가까운데 왜 굳이 너랑 다른 이미지로 널 소비해? 애들이 지금 앞에서만 관심있는 척 하지, 뒤에서 유언비어가 얼마나 많이 퍼졌는지 알아?"
교사가 얼평이라니~ 교사답지 못하게 이게 무슨말인가. 사이버 댓글창의 댓글 수준의 말이 아닌가?
그래도 그 친구가 무슨 말이든 와닿는 말이 있어서 변화한다면 뭐 어때.
모로가도 서울만 가자.
황당하게도 오히려 친근하게(?) 이야기한 방식이 의외로 와닿았는지, 그때부터 뭔가 컨셉을 바꾸기 시작했다. 컨셉을 바꾸기 시작할 무렵 생각했다. 이것을 지속할 수 있게 하려면 지지해주는 비슷한 유형의 친구가 필요하겠구나. 나는 학급에서 그 친구와 비슷하게 이성에게 나름대로 관심을 받고, 잘 꾸밀줄 알면서 어느정도 성실성도 갖춘 친구와 단짝이 될 수 있도록 은근한 조작(?)으로 자리를 근처에 앉히고, 같이 모둠활동을 하게 하고, 집에가는 길에 셋이 같이 걸어가고 상담도 같이 했다.
아주 운좋게도 그 친구 둘은 정말로 결이 맞았는지 12년뒤인 지금도 친해보이는 사진을 종종 올린다.
그리고 정말 이 여자친구는 부모님이 걱정하시던 무리에서 나오고, 조금씩 더 성실해지기 시작했다.
올바른 방법인지 아닌지 생각할 겨를 없이 내가 엄마 역할을 대신한다고 생각하고 제대로 된 길에 들어올때까지 멱살잡고 쫓아다녔는데, 학부모, 학생 상담을 하고 매일 고민하던 열정이 보답받는 것 같았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사범대에 가고, 교사의 자리를 꿈꾸는 한 사람으로 날 잊지않고 연락해주었다는 것이 다행이자, 행복이었다. 돈으로 살수없는 마음의 행복.
담임이 되면 첫시간에 이런저런 소개를 하면서, 혹은 학교 폭력 등의 심각한 위기 상황이 생겼을 때 반 아이들한테 하는 말(진심!)이 있다.
오그라들수 있지만,
일하다 옷을 벗는(일을 그만두는) 한이 있어도 우리반 애들은 최선을 다해 내가 지켜줄 것이며, 마음이 아픈 친구가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게 성심성의껏 노력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교직이 언젠가부터 그냥 그저그런 회사원취급 받는 것 같아서 슬플 때도 있다.
하지만 내가 받은 아름다운 말을, 더 여러 사람에게 들려줄 수 있을 날까지 초심을 잃지 않고 버틸 수 있는 내가 되길 글을 쓰는 오늘 이 순간도 기도한다.
물론 이렇게 말해도, 감정기복에 휩싸여서 실수해대고, 말과 달리 나쁘게 굴기도 하고, 정신없기도 하지만.
어제 나빴으니까 오늘도 나쁜 사람이 되느니 어제 나빴지만 오늘은 좀 더 좋은 사람이 되어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그런 인간이고 싶다.
코끝에 스치던 학교 도서관 밤 바람이 아직도 기억난다.
꼭 대학 합격할거라고 늦은 밤까지 면접 지도 해주시던 지리 선생님의 모습도 바로 어제 일처럼 기억 난다.
대가 없이 받은 따뜻한 말과, 글은 상처난 마음을 천으로 기워주는 역할이었다.
언젠가는 내 삶과, 혹은 내 삶에서 느낀 감정에서 성찰하게 된 글과 말로
누군가의 얼어붙은 삶 속 공기를 더 많이 깨 줄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달빛 : 이 글을 읽을 누군가에게 돌려주기
지금 혹시 '내가 생각한 맞는 길'에서 이탈하는 것 처럼 느껴지나요?
[소소한 나만의 TIP이자 T스러운 위로방식]
1. 데미안(헤르만헤세)이 지루한 고전 같은가요? 처음에 지루하게 느껴지더라도 읽어보세요.
'성장'과 '나'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볼 기회가 생겨요.
2. 우리는 현실에 있는 자기를 자의식이 원하는 수준까지 끌어올려야만 발전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자기 자신에 만족할 때까지 너무나 힘들과 어렵습니다. 행복은 현재의 자기 상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됩니다. 나는 원래 이정도 되는 사람이라는 걸 인정하고 또 긍정하면 되는거예요. 넘어지면 넘어지는 것이 나고, 성질내면 성질내는 것이 나입니다. 그런데 나는 쉽게 넘어지거나 성질내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성질내는 자기를 보는 것이 괴로운 거예요.
-법륜 스님의 '행복'
3. 전 책 싫어해요. 까만건 글이요 하얀건 종이라는 입장이라면?
https://youtu.be/6LDg0YGYVw4?si=9reIJ0kX4E01mtNL
노래들어보세요. 이태원클라쓰 자체를 정주행으로 보셔도 되요. 이 드라마의 주인공이 마음속 슬픔과, 불안감을 대신 느끼며 괴로워해주고 대신 털고 일어나면서 멋진 역전극을 보여줄거예요.
빛나지 않아도 내 꿈을 응원해
그 마지막을 가질 테니
부러진 것처럼 한 발로 뛰어도
난 나의 길을 갈 테니까
4. 의지를 가지는 시도자체가 싫고 혐오스러워요. 그럼 잠시는 슬픔에 잠겨계세요. 하지만 지나친 자기연민은 늪으로 빠지는 지름길이니 정말 잠깐만입니다.
https://youtu.be/2yFwKcQo1ew?si=XkFbc9o_1f2-O0iK
슬픔이든, 좌절이든 담담하게. 하지만 슬픔속에 잠시 잠길 수 있게 해주는 노래라고 생각해요.
모두 행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