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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 Jan 24. 2024

과테말라 안티구아

지진을 딛고 일어선 도시

2023. 05. 04 ~ 05. 05: Day 6 ~ 7,


활화산이 분출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말에 혹해, 취소되기 전까지 90 달러였던 프런티어(Frontier) 항공의 티켓 가격에 속아 넘어가, 꿈에도 없던 과테말라에 착륙했다.


웃돈을 주고 구매했음에도 제대로 터지지 않았던 유심, 환전 따위는 취급하지 않는 은행에, 귀찮은 입국 절차까지 모든 것들이 성가셨고, 30도가 넘어가는 후끈한 날씨 역시 결코 이상적이라 할 수 없었으나 본격적인 우기가 아직 찾아오지 않았음에 감사해야 할 판이었기에, 중남미에서도 위험한 것으로 악명 높은 과테말라시티를 빠져나와 과테말라의 옛 수도였던 안티구아(Antigua)로 향했다. 


15달러였는지 20달러였는지 정확한 금액은 가물가물하지만 분명 매 시마다 안티구아로 떠나는 셔틀이 있었다. 그럼에도 새벽 비행에 이미 지쳐버린 나와 친구 녀석은 40달러를 내고 택시를 잡아탔다. 둘이니 이런 점이 편했다고나 할까. 


호스텔 체크인 시간까지는 두어 시간이 남았기에 점심거리를 찾아 거리를 헤맸다. 



그렇게 선택받은 곳은 평점 4.7의 Kombu Ramen Shop, 룸메이트 녀석은 전투 식량에 진배 없는 학교 기숙사 식당 밥에 질려 있었고, 나 역시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끼니가 멀다 하고 먹은 파스타에 질려 있었기에, 한식이 없는 상황에서 일식은 선택이 아닌 필연이었다. 


맛은 더할 나위 없었다. 함께 시킨 교자가 평범하기는 했지만, 면을 한 젓가락 집어 파와 톳을 얹고 한 입 먹은 다음 맑고 깔끔한 육수를 한 숟가락 하면 으레 라멘집에서 먹던 그 뽀얀 국물 맛이 났으니.


문제는 가격. 한 그릇에 18,000원... 과테말라에서 사 먹은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미국인도 울고 갈 가격이었다. 그럼에도 맛은 확실히 있었으니 눈물을 머금고 결제했다. 오기 전에 평균 5~6달러면 한 끼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으나 완전한 오판이었다. 배가 고파 제대로 환율을 계산하지 않고 허겁지겁 입에 라면을 욱여넣은 내 패착이었다.



그래도 생활 물가는 싸다는 게 그나마 위안거리. 옷 한 벌에 만 원이 넘지 않는 저렴한 물가. 그럼에도 실제로 산 건 물 몇 통이 전부였다는 사실이 곤궁한 여행자의 지갑 사정을 대변했던 걸까. 아니면 단지 파는 건 많은 데 살 건 많지 않았던 걸까. 


안티구아에 있는 동안 묵을 숙소는 부킹닷컴과 호스텔월드 두 곳 모두에서 평점이 괜찮았던 트로피카나 호스텔(Tropicana Hostel).


인기 많은 호스텔답게 매일 저녁 다른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고, 중간에 풀이 하나 있어 좋았다 (깨끗하지는 않았지만). 내부에는 바, 그리고 루프탑 식당이 하나 위치해 있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고.



다만 사육장 같았던 3층 침대가 4개 들어 있던 자그마한 방은 빈말로도 좋다고 할 수는 없었다. 2인 2박에 45,000 정도의 가격이었으니 싸긴 분명 쌌다만...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은 그 어디서 보다 여행길에서 가장 정확히 들어맞았다.


40달러에서 50달러 하는 단체 아카테낭고 투어는 이미 자리가 찼다고 들어, 베이스캠프가 아닌 오두막에서 자고 가이드 한 명이 따라붙는 투어를 120달러에 예약한 후 밖으로 나섰다. 



길바닥이 전부 돌로 된 것이 캐리어를 끌고 다니는 여행자 입장에서는 거슬릴만했지만, 걸어 다닐 때는 또 우둘투둘하니 나쁘지만은 않았다.



안티구아의 중심이라고 하면 안티구아 대성당을 꼽을 수 있다. 시내 어디를 가더라도 결국은 이 성당을 거치게 되는데, 화산대에 걸쳐 있어 지진이 빈번한 안티구아에 위치해 있기에 지난 1773년 무너졌다 재건되었다고 한다. 


다음 날 간단한 브런치를 위해 찾은 곳은 맥도널드와 더불어 아름답기로 유명한 스타벅스. 


현재는 물가가 많이 올라 (혹은 관광지라 물가가 비싼 건지) 주위 식당들과 별다른 차이를 보이는 것 같지도 않지만, 경제가 발전하지 못한 여타 중남미 국가들과 비슷하게 과테말라에서 스타벅스와 맥도널드 등의 체인은 꽤나 비싼 식당 취급을 받는다고 한다.



평일 오전 찾아 그런지 카페는 한산했고, 본디 커피는 입에 대지도 않는 나지만, 과테말라 커피의 스모키 함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기에, 한 잔 주문해 마셨다. 


위스키의 훈연향보다는 달짝지근하면서도 가볍게 느껴지는 커피 맛.


한 번쯤은 시도해 봐도 좋을 커피라고 생각한다. 아니라면, 사진 한 장 건지기 위해 찾아도 나쁘지 않고. 


스타벅스에서 나와 산타 카탈리나 아치(Arche de Santa Catalina)를 보러 가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잠시 재래시장에 들러 구경도 하고,



산타 카탈리나 아치에 당도했다. 


구글에서 안티구아를 검색하면 맨 앞에 걸리는 이미지지만, 실제보다 보정이 과하게 들어가, 그 존재를 모르고 지나친다면 그저 특이한 아치라고 여기고 넘어갈 정도. 쨍한 노락색과 기둥에 섞인 흰색과 시계가 예쁘기는 하지만, 높이로 압도하지도, 주변 경관가 썩 어울려 들어가는 것 같지도 않기에 어딘가 애매하다고 느꼈다. 



그다음 방문한 곳은 라 메르세드 교회(Iglesia de la Merced). 마찬가지로 지진으로 인해 붕괴되었다가 재건축되었다. 



이어 탁 트인 전망으로 유명한 십자가의 언덕(Cerro de la Cruz, Hill of the Cross)을 방문. 


라 메르세드 성당으로부터 도보 20분 거리이기에 한꺼번에 다녀오는 게 좋다. 


전체적인 도시의 모습과 아구아 화산(Volcan de Agua)의 전경이 눈에 들어온다. 



점심은 8달러 정도를 주고 타코로 해결했다. 


구도심 쪽으로 이동하니 확실히 지진이 도시 곳곳에 미친 영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점심시간에 맞춰 삼삼오오 짝을 지어 집으로 돌아가는 학생들의 모습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San Francisco the Great Sanctuary


중간중간 성당도 몇 군데 들렀다. 외부는 지진으로 무너져 있고 내부는 허연 시멘트로 마감한 것이 빈말로도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금색으로 휘황찬란하게 제대 인근은 꾸며놓은 게 라틴 아메리카다워 정겨웠다. 


Por Que No? Cafe


이후 체크인을 마치고 나와 저녁을 해결했다. 연내 방문한 식당 중 가장 합리적인 가격과 뛰어난 맛을 보여준 식당이었다. 4.8이라는 높은 평점에 뒤따르는 기대를 배신하지 않는 훌륭한 리소토를 한 그릇 먹었다. 무엇보다 우선 시각적으로 먹음직스러웠고, 아삭한 토마토가 가끔 밥알 사이에 씹히는 식감 역시 새로웠지만, 무엇보다도 만족스러웠던 건 달콤 새콤한 사이에 절묘히 녹아난 짠맛이었다.


Café Condesa

파라과이에서 살았던 친구가 추천해 준 카페에서 과도하게 달았던 티라미수 한 잔과 스모키 한 커피 한 잔을 들이키며 그렇게 도미니카 공화국 산토 도밍고에서 공항 노숙으로 시작했던 하루를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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