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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밍A Feb 22. 2022

나이들수록 자주 만나게 되는 이별

_우리 인생의 한조각 이야기 '죽음'


6일만에 집에 돌아온 남편의 얼굴이 매우 수척해보였다.

지난주 수요일, 시아버님은 결국 연명치료를 포기하자마자 1시간만에 하늘나라ㄹ 가셨다.

나는 우리 부모님에 이어 또 한번의 이별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아버님은 크게 중증이셨던 것은 아니고 노인성 질환이셨는데,

몇달동안 식사를 못하시더니 끝내 거동을 하실 수가 없었고 성인 기저귀를 차고 집에서 지내셔야 했다.

결국 요양원에 보내드렸는데 구정때부터 응급실을 왔다갔다 하시더니 끝내 눈을 감으셨다.

폐에 급속도로 물이 차더니 급격하게 산소 포화도는 떨어졌다.


구정 전주에 시댁을 간 것이 내 마지막 아버님을 뵌 시간이었다.


"새아가, 아기가 언제 나온다고 했지?"

"아버님, 이제 3월 마지막주면 보실 수 있어요. 배가 많이 나왔죠? 그때까지 얼른 건강 회복하셔야 해요."

"그럼그럼, 그래야지."


그러나 아버님은 내 뱃속에 있는 벙글이를 끝내 보시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하나뿐인 막내 아들의 손녀인데, 결국 얼굴한번 보시지 못하고 이별을 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 가장 마음이 아팠다.


남편은 아버님 살아계실 때 항상 둘이 여행이라도 다녀와야 겠다고 이야기 했다.

하지만 바쁘다는 이런저런 이유로 끝내 여행한번 못가고 그대로 이별을 맞이했다.

아버님이 눈을 감기 전날, 병원에서 오늘 밤이나 내일 돌아가실 수 있을 것 같다고 이야기 하며

준비하라고 했다.


나와 남편은 집에서 조용히 그 시간을 견뎠다.

죽음을 통보 받는다는 것 자체가 참 힘든 일인데, 그 시간을 견디는 것은 더더욱 힘든 일이었다.


결국 전화한통으로 그렇게 아버님 장례식은 치뤄졌다.


나는 9개월 막달 임산부에 코로나와 오미크론으로 극성은 시국 속에서,

장례식장에서 계속 있을 수는 없었다.

결국 이틀정도만 있었고, 나는 집에서 6일간 홀로 아버님을 그리며 지내야 했다.


비록 내가 아버님과 함께 한 시간이 많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별 앞에서는 여러 후회와 죄송함의 감정만 흘러 넘치는 것 같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버님과 함께 찍은 사진을 보며 그리움에 젖어있는 것 뿐이었다.



우리는 나이들수록 주위의 부고소식도 많아지고, 이별의 소식을 자주 만나게 된다.

특히 부모님과의 이별은 그 어떤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일이다.

항상 사람들은 말한다. 살아계실 때 잘해드려야 한다고...

그러나 결국 이별을 맞이한 이후, 그 말은 가슴 속 깊은 후회로만 남게 된다.


이별은 항상 힘들다.

평상시에 나는 가끔 주위에 있는 사람들과 하나둘씩 이별을 하게 되는 상상을 할 때가 있다.

그때마다 나도 모르게 울컥하며, 이 모든 순간들을 붙잡고 싶어진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별에 덤덤해지면 좋겠지만, 그 순간만큼은 절대 덤덤하기는 힘들 것이다.


후회의 감정보다 더 힘든 것은,

이별 뒤 상대방을 당장 눈앞에서 볼 수 없고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것.

그러하니 우리는 특히 부모와 함께 하고 있는 순간만큼, 아낌없는 사랑을 쏟을 필요가 있겠다.


다 아는 사실이라도, 다시한번 마음에 새기고 싶은 오늘이다.


"아버님, 손 한번 더 잡아드리지 못해 정말 죄송합니다...이제 평안히 쉬세요."



#에세이 #가족 #이별 #죽음 #사랑 #카밍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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