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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혜영 May 25. 2022

루푸스 환자이야기

아침에 자고 일어나자마자 키를 재면 176.2cm,  동안 생활하다가 재면 175.7cm 혹은 간신히 176cm 나온다. 그렇다. 여자치고는   키다. 현재 키는 고등학교  키보다 2cm   키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컸고 자라는 내내  아이들보다 머리 하나 정도는  있는 항상  아이였다. 고등학교 2학년 무렵,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온몸에 근육통이 심해서 물리 치료 받으러 병원에 갔었다. 병원에서 나오는 , 하얀색  코트를 입고 새까맣고  생머리에 새하얀 피부를 가진 빛나는 사람과 병원 계단에서 교차하듯 만났다. 한눈에 띄는 외모에 언뜻 보아도 나보다 훨씬  보이는 여자. 갑자기 궁금해졌다. ‘멀쩡히  걷는데 병원에  왔지? ! 내가 이런 소리를  주제가  되지 나도 멀쩡히  걷고 멀쩡해 보이니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엄마에게 말을 걸었다. “엄마 아까 계단에서 내려올  나보다   여자 봤어?” “ 봤어” “어디가 아플까?” “다쳤나 보지호기심 많은 고등학생의 눈에  한눈에 봐도 모델 같은 사람. 다음날 병원에  갔다.  순서를 기다리며 대기실에 있는데 어제    여자가 들어왔다. 옆에는  사람의 친구로 보이는 동년배의 여자가 같이 왔다. 차가워 보이는 겉모습과는 다르게 둘은 연신 농담을 주고받으며 웃고 떠들었다. 작은 대기실에서     들은 척하기에는 대화의 내용이 너무 웃겨서 피식 웃고 말았다.  순간 내게 그들의 시선이 닿았다. “! 네가 떠들어서 애가 웃잖아” “애기는 아니고 학생으로 보이는데  언니가  웃기지?” “  조용히 있어라나는 갑자기 주목받은 이유로  없이 웃고 있었는데 엄마는  상황이 그들에게 말을  절호의 기회를 잡은 사람처럼 곧바로 말을 걸었다. “ 그래도 어제 우리 딸이 자기보다   언니를 봤다고 집에 가는 동안 이야기했는데 어디가 아프셔서 왔나요?” 대한민국 전형적인 아줌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아무렇지 않게 말을 건다. 다행인   사람들도 스스럼이 없었다. “ 제가 루푸스 때문에 몸이 여기저기  아파서 치료받으러 왔어요

병원은 자신의 병명을 알려주고 곧바로 친해지기 쉬운 공간이다. 같은 병실 사람들, 대기실, 검사실에서 만나는 환자들에게 직업, 나이, 이름, 학벌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는 수단은 “어떤 병에 걸렸는가이것 하나면 충분하다. 루푸스라는 무서운 병을 너무도 해맑게 웃으면서 말하는  언니는 뭘까? 내가 심장이  좋다는 이야기를 덤덤히 하면 사람들이 황당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볼  그들의 심정도 지금 나와 같을까? 순간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이 나왔다. “루푸스 그거 되게 아픈 병인데... 자가면역질환인데...”

 순간   언니의 눈빛이 빛나면서 “!   다들  몰라서 맨날 설명해야 하는데 어떻게 알아 고등학생?! 공부 잘하는 고딩이구먼!” 쑥스러웠다. 그리고 무서운 병명과 달리 밝고 말을 잘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참 들었다. 사연 없는 사람이 없단 말은 사실이다.  언니의 마음 아픈 사연이 시작되었다. 키가 커서 항상 농구부나 배구부 스카우트를 받은 나보다   키를 가진 그녀는 183cm 농구 유망주였다고 했다. 알고 보니 나와 같은 여고 선배였던  사람은 학창 시절 교통사고로 농구를 그만두게 되고 컴퓨터 학원을 운영하면서 열심히 살다가 너무 열심히  나머지 루푸스를 앓게 되었다고 했다. 가족들도 자신의 병을 이해하지 못하고 겉모습은 이렇게 쁘고 키가 크니 남들도  이해하지 못하는데 같이   친구는 자기 아픈  너무  이해하고 안타까워하고 같이  놀아주어서 맨날 붙어 다닌다고 했다. 서로 남자친구가 생기면 결혼할  혼수로 자기를 데려가야 한다고 말할 정도로 절친한 사이라고 설명했다. 자기소개가 끝나고 건강해 보이는 고딩은 어디가 아파서 왔냐고 물었다. 엄마는 사연을 듣다 감정이입을 해서 눈가에 눈물이 살짝 맺힌 상태로 우리 딸은 심장이 조금  좋은데 사고   물리치료를 받으려고 왔다 했다.  언니가 “이렇게 키도 크고 건강해 보이는데 심장이 그렇구나.... 하긴 나도 키가 크고 멀쩡해 보이지..... 허허허허허아픈 사람들이 우울할 것이라는 편견은 정말 편견이다. 스스로 자기가 이렇게 낙천적이고 밝아서 많이 아픈데도 속없이 잘살고 있다고 말할 만큼 그들 옆에 있다 보면 시간 가는  모르게 웃기고 즐겁고 에너지가 넘쳤다.

가끔 연락이 닿아 서로의 근황과 안부를 묻다 보니 어느덧 12 가까이 알고 지낸 사이가 되었다. 만나면 가방에서 이것저것 꺼내서  입에 넣어준다. 요즘 자기가 먹고 힘을 낸다는 건강기능식품들 같은 것이다. “ 이거 먹어봐라 말린 블루베리다,  이건 죽염인데 사탕처럼 입에서 녹여 먹어봐라, 이건 초유 분말인데 깨물어 먹어봐라, 빈혈에는 사과랑 당근이 좋단다.”

  전에 보았을 때는 병원 검진이 있다고 내가 다니는 대학원 병원에  날이었다. 보호자가 갑자기 일이 생겨 내가 보호자를 해주겠다고 잠시 검사실에 갔다. 183cm 176cm 키를 가진 여자  명이 검사실 앞에 서서 대기하고 있으니 지나다니는 사람들과 의료진이  번씩 쳐다보고 갔다. 담당 의사는 내가 친동생인줄 알고(그럴만  것이   허옇고 키가 커서 닮아 보인다) “언니 검사 금방 끝나니까 밖에서 잠시만 기다리고 있어요라고 했다. 검사를 마치고 나온 언니에게 말했다. “ 의사분이 우리를 친자매로 알았나 봐요” “네가 올해 몇이지?” “25살이요” “나는 올해 꽃다운 42살인데 이모지! 그런데 언니로 봤으면 역시  미모가 사그라지지 않았구나! 아하하하하!” 병원 복도에 서서 그렇게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웃다가 언니를 배웅하고 다시 일하러 돌아왔다. 환자의 일상도 병원에  날도 건강한 사람과  다른 것이 없다. 최근 연락을 해보니 이번에는 철학을 배우고 싶어서 대학원에 다니는 중이라고 했다. 철학을 배우니  아픈지  이유가 납득이 가고 있어 행복하다고 말하는 수화기 너머 목소리에서   특유의 밝고 쾌활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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