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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혜영 Jun 01. 2022

심장병이 있는 체육 선생님들


책 "적절한 고통의 언어를 찾아가는 중입니다"에서 저자는 "아픈 몸으로 살면서 근본적으로 느꼈던 고통은, 경험을 공유하기 어려웠던 외로움과 고립감 그리고 내가 충분히 사랑받지 못할 존재라고 느끼는 데서 오는 일종의 박탈감과 자괴감이었다."라고 말한다. 내 아픔이 다른 사람들에게 공유되어 고립감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었던 순간이 있었다.


중학교에 입학하기  부모님은 걱정하셨다. 이유는 과목별 선생님이 생긴다는 사실이었다. 초등학생 때는 담임 선생님  사람만   상태를 알고 조금 배려를 부탁하면 되는데 10 넘는 과목 선생님들 모두가  상태를 알고 배려를 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였다. 나는 담임 선생님  명에게만 말하겠다, 엄마는 아니다 모두  알아야 한다는 실랑이를 벌이다가 엄마가 이겼다. 엄마가 가장 걱정한 것은 체육 시간이었다. 체육은 참여할  없는데 이걸 괜찮다고 하는 분위기일지 점수는 0점을 주어도 되니 눈치만 주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엄마는 내 초중고 학창 시절 내내 내가 학교에 가는 날 모두 하루도 빠짐없이 내 등하굣길에 함께 했다. 아무튼 중학교 입학식 날 엄마가 담임 선생님과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교실 문 앞에 서 계셨다. 엄마는 가진 건 없지만 죄진 건 없으니 항상 당당하신 분이었다. 그래서 촌지 따위는 취급 안 하는 신조였다. 말로 들이미는 부탁이었다. 딸이 사고를 친 것이 아니기에 꿀릴 것은 없었다. 다만 겉은 멀쩡해서 입학식부터 농구부 선생님께 캐스팅된 이 애가 건강상의 이유로 체육을 못하고 뛰거나 단체 기합을 받으면 안 되는 사실을 어떻게 이해시킬지 걱정하셨다.

입학식이 끝나고 담임 선생님이 체육 선생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엄마의 표정은 한결 편해졌다. 여자 체육 선생님이었는데 무용을 담당하시는 분이었다. 엄마와 나는 쭈뼛거리며 뒤따라 같다. 교실 밖 창가에 서서 간단히 인사를 하고 엄마가 말하는데 뒤에 숨어 있었다. “선생님 처음 뵌 날 이런 부탁을 드려 죄송하지만 보기와는 달리 잘 이해도 안 가시고 안 믿어지시겠지만, 애가 심장이 좋지 않아서요 부정맥이란 병이 있는데 뛰거나 무리하면 안 돼서 체육 시간에 참여하기도 어렵고 결석도 자주 할 수 있어서요......”하며 말을 이어가는데 시니컬해 보이시는 시니컬은 좋은 표현이지 어딘가 짜증이 나 보이고 사나워 보여서 주춤하게 되는 인상을 지닌 선생님이 말을 자르며 이야기하셨다. “어.. 부정맥... 알아요 나도 그 병, 나도 있어요, 그거 있으면 체육 못하지 알았어요 다른 선생님들한테도 말해둘게요”

엄마와 나는 당황해서 가만히 선생님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선생님은 그냥 쿨하게 뒤돌아 계단을 내려가서 교무실에 가셨다. 계단을 내려가면서 중얼거리시는지 우리에게 하는 이야기인지 “나도 부정맥이 있어, 자주는 아니고 1-2년에 한 번 정도 가끔 나타나, 예전부터 있었어 수술은 안 했는데 그래도 애 낳고 살아 걱정하지 마요 내가 체육 시간에 잘 빼주면 되니까”

학교생활이 예상외로 수월하려나 생각하고 안심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은 반 친구들에게 설명하는 것이었는데 그건 어떻게 하든 내 몫이니까 생각이 많아지는 밤이었다. 학교생활은 많은 사람이 있는 곳인 만큼 많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애나 어른이나 삐딱하게 말하는 사람이 있고 예쁘게 말하는 사람이 있는 법이다. 삐딱한 애들은 나를 왕따 시켰고 그냥 순한 모범생들은 내가 아파도 열심히 공부한다며 격려해주었다. 삐딱한 어른은 학생들이 수업 때 떠들면 자기 분을 못 이겨 단체 기합을 주려 한다. 그때 “야 아픈 놈 너는 나가 있어!” 한다든지 “쟤는 어디가 아프대 그래서 엄마가 맨날 학교에 온다나 지극정성이야 시간이 많나 봐”하고 들으란 듯 말하며 내 옆을 지나간다. 반면 맘씨 좋은 선생님들은 와서 한 마디씩 격려해주고 가셨다. 가령 “너는 지금 고생을 다 해서 나중에는 안 하고 잘 살 거야” “원래 어릴 때 아픈 사람은 아픔을 겪어봐서 잘 큰단다”라는 말을 해주고 가셨다. 기독교 학교라서 말없이 손을 잡으며 “기도할게”하는 수줍음 많은 선생님도 가끔 있었다. 그런 고마운 선생님들과 못된 선생님들 모두 기억에 남아있지만 좀 특이하게 그리고 앞으로도 잊지 못할 것 같은 선생님이 있다.


학교에는 총 4명의 체육 선생님이 계셨다. 내가 학교를 졸업할 무렵 은퇴를 하신 체육 선생님이셨는데 체격이 건장하고 나이가 지긋하신 남자 체육 선생님이셨다. 하루는 체육 시간에 혼자 등나무 의자에 앉아 있는 나에게 다가오셨다. “왜 너는 체육 안 하냐?” 나는 또 설명을 해야 하는 타이밍이구나 하고 살짝 위축이 되어서 “제가 조금 아파서 체육을 안 해요...”라고 대답했다. 약간 놀란 표정으로 되물어보셨다 “어디가 아픈데?” “부정맥이라고 심장이 불규칙하게 빨리 뛰는 거라서 체육을 하면 안 돼요” 그러자 선생님 눈이 두 배로 커지더니 “나도 있는데 부정맥!”이라고 대답하시고 서서 한참 나를 바라보시다가 가셨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아니 부정맥이 이렇게 흔한 병이 아닌데 학교에 와서 두 명의 선생님이나 부정맥이 있고 그 두 명 모두가 체육 선생님이라는 이런 아이러니가 어디 있나?'

선생님이 부정맥 커밍아웃?을 하시고 놀란 채로 말없이 사라지신 후 며칠이 지났다. 선생님은 내 수업이 끝나는 시간보다 일찍 도착한 엄마와 대화하셨다고 했다. 애한테 말하면 못 알아들을 수도 있고 어려서 부모님이랑 이야기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먼저 말을 걸어오셨다고 했다. 본인도 부정맥 시술을 3번 했는데 처음 할 땐 상태가 좋아서 술도 먹고 담배도 피우며 살았다고 했다. 시술 한 사람 같지 않게 건강해서 관리를 하나도 하지 않았고 결국 재발해 두 번째 시술했는데 그때도 정신 못 차리고 술을 먹었다고 했다. 세 번째 시술을 하고 나서는 몸이 예전 같지 않고 부정맥도 가끔 나타나서 좋지 않다고 했다. 내가 크면 시술하게 될 텐데 그때 한 번만 하도록 관리를 아주 철저히 해야 한다면서 본인의 건강관리 수첩까지 보여주셨다고 했다. 그 수첩은 몇 시에 어떤 약을 얼마나 먹었는지 음식은 무얼 먹고 몸 상태는 어땠는지까지 상세히 적어놓은 것이었다.

엄마가 나에게 이 말을 전해주셨다. 엄마와 대화 이후 내게 말하는 것이 조금 편해지셨는지 나에게도 와서 엄마에게 한 말을 그대로 해주셨다. “내가 엄마에게는 일차 말을 했는데 너도 알아들을 거라고 해서 내가 말을 하는 거야 잔소리로 들릴 수도 있지만 나는 그래~” 하며 그 큰 체격과 큰 눈을 가지고 아주 진지하게 앉아서 말씀을 해주셨다. 너와 같은 아픔이 있는 선생님들을 만난 것이 참 감사한 일이라고 너도 언젠가 그냥 나아지면 너무 좋겠지만 시술을 하게 되면 관리를 잘해서 절대 재발할 일이 없도록 하라는 말씀을 하셨다.


가끔 나도 시술한 지 10년이 지났고 일탈 아닌 일탈을 하고 싶을 때가 있다. 술 먹지 않는 걸로 트집 잡는 사람이 자주 나타난다. 과일맥주라도 마셔볼까 하다가 “아니야 내가 그런 말에 휘둘릴 필요 없지” 하면서 학창 시절 신신당부하신 선생님 얼굴이 생각나 시도를 멈춘다. 술 안 먹는 것이 신기하면 이 세상에 신기할 것이 쌔고 쌨지 하면서 인생의 재미가 술만 있나 아이스크림도 있지 하며 제일 비싼 아이스크림을 고른다. 집에 가서 아이스크림을 까먹으면서 그 말을 가볍게 무시한다. 과도한 당도 안 좋다고는 하지만 술만큼 심장에 직접 영향을 주는 것도 없지! 이러면서 알코올이 아닌 당에 한껏 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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