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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혜영 Jun 15. 2022

비 오는 날 야근

곧 장마철 시작이라고 한다. 출퇴근길이 어려워지는 계절이 돌아온다. 오늘 비 오는 아침 출근길에서 작년 퇴근길 생각이 났다.


6퇴근하려고 9시 전부터 일을 시작해서 후다닥 일을 해치우고 땡! 하면 나오는 사람이 나다. 이런 나도 입사 첫해는 야근을 자주 해야 했다. 일이 많았다. 지금은 논의 끝에 일의 개수를 줄였지만 작년에는 현재 업무량의 3배는 되었다. 점심시간을 쪼개서  해도 야근해야 했다. 나뿐만 아니라 동료들 모두가 야근을 하고 있었다. 일도 많은데 마감 시기가 모두 몰려있어서 더욱 정신없는 나날이었다. 그날은 비가 왔다. 야근하는  빗소리가 시원하게 들렸다. “어어~   가야 하는데  그만 와야 하는데하면서 정신없이 타자를 치며 일하고 있었다. 기계식 키보드가 내는 타닥타닥 소리에  오는 소리가 잠식되었다. 한창 일하고 나니 비는 그치지 않고 더욱 심하게 내리고 있었다.

버스가 끊기기 전에 집에 가야 했다.   시가   무렵, 막차는 20 후에 도착했다. 서둘러 건물을 나왔다. 비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 여름용 우양산은 너무 작고 얇아서 비를 막기에 부족했다. 바람까지 부니 사방으로 비가 들어왔다. 설상가상 한번 우산이 뒤집어졌다. ! 소리를 내며 어떻게! 했는데  소리 다음에 부는 바람이 뒤집어진 우산을 다시 한번 뒤집어 재자리로 돌아오게 했다.   열흘도    흰색 운동화에 빗물이   없이 들어왔다. 하필 입은 옷은 하얀색 원피스였다. 옷도 버리고 신발도 버리는 것을 이내 체념하고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조심 걸어갔다.

직장 출입문에 다다랐다. 출입문을 나가서 신호등을 건너야 버스 정류장이 나왔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출입문은 빗물에 침수되어 물바다가 되어있었다. 정강이까지 차오른 물웅덩이를 어떻게 건너나 고민하며 최대한 얕은 물웅덩이를 찾았다. 이리저리 피해서 발목까지 오는 물웅덩이를 발견했다. 이제  신발은 요단강을 건너버렸구나 하고 물웅덩이에 과감하게 발을 담갔다. 차갑고 더러운 까만 물이 신발로 들어왔다. 물길을 헤치고 길을 건너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불이 켜진 정류장에서  모습을 내려다보니 하얀 원피스는 빗물에  젖어서 속치마까지 훤히 보이는 지경이었다. 밤은 어둑어둑하고 비는 내리고 누가  모습을 보지 않았으면 무서운 사람이 지나가지 않았으면 하고 빌고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버스가 왔다. 신발과 옷에서 뚝뚝 떨어지는 빗물을 버스 바닥에 남기고 빈자리를 찾아 걸어갔다. 밤이 늦어 사람이 없을  알았는데 버스 안에는 의외로 사람이 있었다. 5-6 정도 되는 사람들이 내가 버스에 들어서자 -! -! -! 하는 감탄사가 나왔다. 놀란 것이다. 어두운 밤에 비를 홀딱 맞은  치마를 입은 여자가 들어오니 잘못 보면 소복 같기도 했을 것이고 옷이 비에 젖어 비치는 것이 걱정스럽기도 했을 것이다. 나는 마스크가 있어 천만다행이란 생각으로 얼른 자리를 찾아 앉았다. 버스 의자에 빗물이  묻는 것이 미안스러웠지만 어쩌겠나.

집에 도착했다. 신발장 현관문 앞에서부터 하나씩 하나씩 벗어던졌다. 양말을 벗어서 현관문 앞에 있는 세탁기에 넣었다. 옷도 바로 벗어서 세탁기에 넣었다.  길로 화장실에 들어가서 샤워했다. 샤워하고 나오니 세탁기가 여전히 돌아가고 있었다. 급하게 올라오느라 본가에서 가져온 신발은 운동화  켤레 구두  켤레였다. 다음날도  소식이 있는데 구두를 신고  수도 없고 비에 젖은 운동화를 그대로 신고 가면 냄새가  것이 뻔하고  11 운동화를 빨기 시작했다. ABC ABC 거리면서 짜증을 부렸다.  운동화인데!  소중한 꼬까신인데! 하면서 빨래했다.

세탁이 끝난 원피스는 곱게  널어놓았다. 운동화를  빨고 나니 거의 12시가 되었다. 이번에는 말려야 했다. 드라이기를 동원해서 운동화를 말리기 시작했다. 흔들어 말리다 팔이 아파서 잠시 운동화에 드라이기 머리를 넣어서 고정하고 말리고 있는데 타는 냄새가 났다. 뜨거운 열기가 운동화를 만나서 드라이기 머리 부분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아이고~  밤에 불날 뻔했네~” 하마터면 운동화까지 태워먹을   바보 같은  행동에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났다. 내가  밤에 뭐하는 짓인가 싶었다. 엄마에게  자라고 전화를 걸었다. 비를 흠뻑 맞고 집에  내가 자기 전까지 기다리신다고 했다. 엄마에게 험난한 퇴근길 썰을 풀었다. 엄마는 속이 상해하다가  거긴 배수 시설이  모양이냐 했다가 그냥 무사히  것에 감사해라 하고 전화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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