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혜영 Feb 09. 2022

예방의 날

코로나19 백신을 맞았다.

모두 그렇겠지만 난 유독 병원에 가는 것을 싫어하는 어린이었다. 안 아프려면 건강할 때 관리를 잘해서 병을 예방해야 한다는 것이 내 지론이었다.


양치를 잘하고 과자를 멀리한 덕에 어린 시절에는 치과에 갈 일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 다 커서 대학생이 된 후 치과 치료를 받아야 할 일이 생겼다. 사랑니가 불편해졌기 때문이다. 사랑니 안나는 사람들의 사랑니까지 대신했는지 사랑니가 날 수 있는 자리 4곳에 이가 났다. 사진을 찍어보니 뽑아야 하는 결론이 났다.


그런데 과거의 심장 부정맥 이력과 아직 수술은 하지 않았지만 판막 질환을 가지고 있는 내 병력이 치과의사에게 조금 부담이 되었을까? "뽑아야 하지만 관리를 잘하는 편이니 둬도 괜찮지 않을까?"라는 말을 들었다. 겁 많은 내게 그 말은 꽤 설득력이 있었다. 발치 준비와 과정을 떠올려도 정말 하기 싫었다.

사람은 하기 싫을 때 많은 핑계를 댄다. 우선 심장 판막질환이 있거나 그로 인해 수술을 받은 사람이 치과 치료 시 감염되면 감염성 심내막염에 걸릴 위험이 있다. 그래서 처치 1-2시간 전에 고용량의 항생제(500mg을 4알 총 2000mg)를 복용해야 한다.

두 번째 문제는 마취제였다. 마취제 속에는 혈관을 수축시켜 마취제가 혈액으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하면서 동시에 지혈효과도 있는 에피네프린이 들어있다. 이 성분이 심장 박동을 빠르게 할 수 있어서 부정맥 시술을 했지만 심장이 빨라지는 상황은 어떻게든 피하고 싶었던 겁쟁이에게 마취제는 마취를 안 하는 것보다 무서운 약물이었다.


이러한 일련의 이유를 대면서 사랑니 발치를 미루다 결국 일이 터졌다. 사랑니와 닿아있는 어금니 두 개가 썩은 것이다. 이제는 사랑니를 빼야 했다. 발치 전에 항생제를 입안 가득 넣어 삼키고 마취도 해서 사랑니를 뽑았다. 발치 후 40도의 고열이 나서 심내막염이 생긴 것은 아닐지 걱정을 하면서 동시에 혹시 모를 두려움에 사랑니를 제거하지 못했다는 후회를 했다. 괜한 겁 때문에 제거하지 못한 사랑니 때문에 썩게 된 두 개의 치아도 무척 아까웠다. 치료도 고통스러웠다. 치료받을 때마다 마취를 하고 예방적 항생제를 복용했다. 겁먹지 않고 미리 발치를 했다면 치아도 지키고 치료로 드는 시간과 돈을 아끼면서 고통도 줄일 수 있었을 텐데.... 하면서 후회와 자책을 했다.


이번에 코로나 19 백신을 맞을지 말지 고민하면서 사랑니 발치 때와 비슷한 생각을 했다.

백신 부작용이 심근염이라지만 안 맞고 걸리면 심장에 더 치명적이라는데 어떻게 하지? 맞아? 말아?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서 주치의와 상의 끝에 결국 맞기로 결정했다. 사랑니 때와 같은 고생과 후회를 두 번은 안 하고 싶었다.


2021년의 마지막 날 1차를 맞았다. 1차를 맞은 뒤 3주 동안 무척 고생을 했지만 2차를 맞기로 결정했다

드디어 2차를 맞는 날, 마침 오전에는 치과 정기 검진과 스케일링이 예약되어있었다. 스케일링을 받기 전에도 항상 예방적 항생제를 복용했다. 내가 백신을 맞고 항생제를 먹는 것이 모두 예방을 위해서 하는 일이었다. 최악을 생각하고 이를 막기 위한 최선의 선택을 하려고 했다. 예방을 위한 선택이 추후 내게 벌어질 불행을 막아주길 희망하면서...

치과 치료 전에 복용하는 예방적 항생제


매거진의 이전글 냉정과 열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