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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혜영 May 17. 2022

오해는 비난의 칼을 숨기고 있다

아픈 애들은 딱 두 타입으로 자란다. 아프다고 오냐오냐 키워 버릇이 없거나 반대로 아파서 일찍 철이 들어버린 경우다. 난 후자에 속했다. 내가 버릇없이 컸다면 나는 살기 편했을 것 같다. 보는 사람 복장은 터졌겠지만 그런데 철이 드는 바람에 내 속을 스스로 뒤집었다. 짐이 되기 싫어 안간힘을 쓰는 나를 보고 언젠가 담임 선생님이 찾아와 혼 아닌 혼을 내었다.

“네가 너무 애를 쓰고 사는 것이 보기 힘들다. 인생은 긴데 그렇게 매 순간을 너무 힘을 들이고 살면 나중에 쓸 에너지가 없으니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마라 철이 일찍 든 것을 보는 것도 마음이 아프다”

부정맥이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을 때는 오해 받을 일이 참 많았다. 심장 판막이나 심장에 구멍이 나 있는 아이들은 비교적 잘 알려진 반면 소아 부정맥은 쉽게 찾아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심장 부정맥이라고 하면 선천성이냐 후천성이냐부터 시작해서 유전병이냐 물으며 가계도 조사를 시작한다. 쌍둥이를 가진 사람들이 밖에 애를 데리고 나가면 자연이나 인공이냐 물어보아서 애들이 가두리 양식이나 자연산 물고기가 된 기분이라고 한다. 나도 비슷한 맥락으로 선천성이냐 후천성이냐는 질문을 받으면 타고난 죄인가 살다 생긴 죄인가 하며 심판하는 심판관들을 만나는 기분이 들었다. 선천성이 아니라 하면 부모가 잘못 키웠다고 말하는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선천성이 아니냐 의심하면서 타고날 때부터 애가 문제인 거라고 흠을 잡는 사람들도 만났다. 생소한 병이고 보이지 않는 병이니 가족이나 친지들도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 겉은 멀쩡한데 자꾸 심장이 빨리 뛴다고 병원을 자주 들락거리니 주변에서 부모님께 정신과에 데려가라는 말을 많이 했다. 그 이유라고 할 것은 대충 이랬다. 늦둥이로 본 딸이라 애지중지 키워서 애가 부모 옆에서 떨어지기 싫어 저런다. 부모가 극성이라 애가 괜히 두려워 그런다. 분리 불안 장애 같은 것이 있을 수 있으니 심장을 고칠 것이 아니라 정신을 고쳐야 한다. 담력을 길러주어라 등등이었다.

주변 성화에 못 이겨 어느 날 엄마가 나를 소아 정신과에 데려갔다. 엄마는 혹시 내가 놀랄까 봐 아이스크림을 한 손에 쥐여주고 병원에 데려갔다. 그곳에서 내 순번을 기다리며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었는데 이곳에 있는 아이들은 내가 매번 심장내과에서 보던 아이들과는 달랐다. 소리를 지른다거나 구석에서 혼자 벽을 보고 중얼거린다거나 원숭이처럼 날뛰면서 내 아이스크림을 낚아채 가서 자기가 먹었다. 꼬마인 나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엄마에게 날뛰어 다니는 저 녀석이 내 아이스크림 뺏어 갔다고 말하자 “아픈 애니까 봐줘 엄마가 또 사줄게” 하며 나를 달랬는데 정말 이상해 보여서 나도 금세 수긍했다. 내 차례가 되었다. 항상 같이 진료실을 들어갔는데 이번에는 혼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 이상했지만 엄마는 밖에 있었다. 혼자 들어가서 이것저것 묻는 말에 대답하고 나무나 플라스틱 같은 장난감 비슷한 것들을 이리저리 맞추고 그림을 그리고 나니 검사가 끝났다고 했다. 검사 결과는 정신은 지극히 정상이니 심장내과에 가서 해결해야 한다는 결론이 났다.

부정맥이라는 병이 생소하다고 들은 많은 말은 나와 우리 가족에게는 결국 몰라서 아무렇게나 찔러댄 칼과 같았다. 툭툭 아무렇게나 내뱉는 말에 아니라고 근거를 댈 수 있는 것은 내 삶을 충실히 살아나가는 것 그래서 그들의 틀린 말과 편견을 바꾸어 놓는 것이었다. 내가 시시콜콜 설명하지 않아도 서로 다른 모습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마음이 하나 둘 생기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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