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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혜영 May 18. 2022

심장소리 듣기 능력

엄마에게 "갔다"라고 말하면 엄마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옆에 있는 아빠는 "걔는 왜 가출이 잦냐?"라고 한다. 그 옆에 있던 오빠는 "너는 어떻게 바로 알 수 있냐? 신기하다"라고 한다. 사람이 잘 살다가 숨이 멎으면 가셨다고 한다. 갔다는 부정맥이 나타나면 병원에서 쓰는 단어이다. 엉망으로 날뛰며 이상한 그래프를 그리는 심전도 화면을 보면 의사들은 갔다.. 하고 탄식한다. 그리고 약을 써서 심장박동이 정상이 되면 큰 한숨을 내쉬며 긴장이 풀려 작아진 목소리로 “돌아왔다”라고 한다. 그래서 내가 일상생활을 하면서 부정맥이 나타난 것을 알릴 때 갔어, 다시 괜찮아지면 돌아왔어 하며 알리는 언어 습관 때문에 아빠는 “집나간 심장이 돌아온 것이냐 그 심장은 끄떡만 하면 집을 나간다냐~”라고 하는 것이다.

지금처럼 기계에 조금만 관심이 있는 젊은 세대의 손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스마트 워치가 없던 시절, 부정맥을 판단할 수 있는 수단은 쉽게 접할 수 없었다. 요즘은 스마트 워치가 심박동 수를 알려주고 기록해서 경고도 날려준다고 하지만(나는 스마트 워치가 없다) 20년 전에는 의사는 청진기와 촉진 그리고 ECG라는 기계로 환자의 심장박동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럼 환자는 어떻게 본인의 상태를 알 수 있었을까? 나는 한글을 배우기 전에 내 심장 상태를 파악하는 것부터 익혔다.

중학교 생물 시간, 나는 남들은 쉽게 하지 못하는 나만 가지고 있는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심장에 대해 배우는 시간 우리가 심장이 뛰는지 알기 위해 손목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면 심박동이 감지된다는 것을 처음 배우는 시간이었다. 중학생들은 신기했는지 반이 웅성웅성 소란스러워졌다. 우와 신기하다 하는 아이들도 있었고 이미 안다는 듯 우쭐하는 아이들도 있었는데 나는 신기해하는 아이도 아니고 우쭐하는 아이도 아니고 조금 놀란 표정으로 친구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유는 단 하나 손목에 손을 대거나 달리기하거나 흥분 할 때만 심장 박동을 감지할 수 있고 그냥 가만히 있으면 심장이 어떻게 뛰는지 전혀 모른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호흡을 느끼는 것처럼 심장박동을 느끼는 것이 아주 당연한 줄 알고 살아왔다. 병원에 갈 때마다 집에서 내 상태를 체크하는 가족들에게 언제나 하루에도 몇 번씩 “지금은 심장 빨라? 어때? 괜찮아?”라는 질문을 받으면 나는 주저 없이 손목에 손을 대지 않고도 잠을 자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질문이 들어오면 “응 괜찮아, 아니 빨라 혹은 빠르지만 정상 박동이야”라고 답할 수 있었다. 이런 능력을 모두가 가지고 있는 능력인 줄 알았다. 아니 능력이라고 할 것도 없이 사람이 숨을 쉬다 일부러 멈추면 숨을 참은 줄 알고 눈을 감으면 안 보이는 줄 알고 물건을 들면 들고 있는 줄 감지하는 것처럼 당연히 감각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에게 심장이 느린지 빠른지 물어보는 사람들도 다 나처럼 본인의 심장 박동을 바로바로 알 수 있어서 그런 질문을 주저 없이 하는 줄 알았다.

이런 성가신 자각은 조용한 밤 침대에 반듯이 누워서 고개만 살짝 옆으로 돌려서 베개에 귀가 닿으면 심장 박동이 전달되면 사그락사그락 소리와 함께 청각과 함께 공감각적으로 나를 괴롭혔다. 어느 날 의사에게 물었다. “다들 평소에는 심장이 어떻게 뛰고 있는지 박동 수가 몇 개 정도인지 못 느끼나요?” 의사는 무심하게 답했다. “너처럼 바로 아는 사람은 없어 그런데 그 능력이 너를 그나마 살리는 거야 너는 바로 아니까 바로 대처를 할 수 있잖아 보통 모르고 쓰러지거나 약을 안 먹지” 그 뒤로 나름의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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