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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혜영 Jun 03. 2022

금요일 밤과 주말

금요일 퇴근 1분 전 5시 59분 전화벨이 울린다. 6시 땡 하면 나가서 경보하듯 걸어야 셔틀버스를 놓치지 않는데 눈치 없는 전화벨이 울린다. 셔틀버스를 타고 6시 20분까지 기차역에 도착해야 한다. 그래야 기차를 타고 본가에 갈 수 있다. 말을 천천히 하는 내가 랩을 하듯 전화 응대를 하고 나니 6시.

"간다! "하고 뛰쳐나온다.


목에 건 사원증을 확 잡아 뜯어 뺀다. 한 주간 있었던 일은 기차를 타고 고향에 내려가며 최대한 버린다. 생각도 감정도 떠나보낸다. 그리고 좋은 감정만 남겨놓는다. "그래 이번 주도 살아냈구나! 곧 가족을 볼 수 있구나! 주말에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야지!"

기차 창 밖 풍경을 보면서 마인드 컨트롤을 한다. 좋아하는 음악을 크게 들으면서 창 밖으로 노을이 지는 것을 본다. 행복하다.

기차 안에서 본 노을
금요일 퇴근하는 기차안에서

행복감에서 다시 회귀한다. 떠나보낸 감정에서 차마 버리지 못하는 의미를 찾아보려 한다. 지금 다니는 직장 면접을 보는 날, 면접관들이 내게 무엇을 하는 것을 좋아하고 무얼 하면 제일 행복한지 물어보았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책 읽고 글 쓸 때 제일 행복하다고 말했다. 잘 쓰는 글은 아니라도 그냥 그 행위 자체가 즐겁다고 말했다.


취미는 놀기라고 했어야 했다. 책 읽고 글쓰기가 취미라고 해서는 안되었다는 것을 취직을 하고 알았다. 내 취미를 그대로 일에 가져와서 써먹었다. 나는 책더미와 글 더미에 파묻혀서 하루 종일 글을 읽고 쓰는 조사 연구를 하게 되었다. 내 적성과 성격에 딱 맞는 일이었지만 글자 속에서 살게 되었다. 각국의 자료를 찾고 분류하고 분석해서 장단점을 비교하고 그 안에서 어떤 개선 방향을 찾아내었다. 어쩔 땐 글을 읽고 모아서 내가 이해하고 다시 문장을 만들어 책을 내기도 했다. 출판사에 가서 일해보고 싶다는 바람을 출판사가 아닌 곳에서 풀어낸 것이다. 독자 타깃이 다를 뿐 책을 내었다. 글로 만든 무언가를 세상에 내보이고 나니 혼자서 온전히 한 일은 아니지만 무척 뿌듯했다. 취미가 일이 되면 행복하지 않은데 취미가 일이 되었는데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이 괴롭진 않았다. 때로는 내가 한 일이 의미가 없어 보여서 허무해지긴 했지만 언젠가는 도움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버텼다.


매일 많은 자료와 글을 보다 보면 글자에 취해 머리가 어질 어질 하다. 어려운 내용이기도 해서 정신이 아득해진다. 그래서 가끔은 옆에서 일하는 동료와 난 한참 일을 하다가 일어나면 비틀거린다. 그때 나는 나지막이 말한다. "글자에 취하셨군요" 나는 비틀비틀 휘청이며 걸어가다 책장에 머리를 부딪히기도 한다. 그럼 바보 같은 내 모습을 보고 동료는 웃는다. 때로는 글자에 취하다 못해 글자에 체하기도 한다. 그래서 신입시절 글자에 체해서 한동안 계속 아침 점심으로 죽을 먹었다.


모든 업무가 마치 내 특성을 분석해서 맞춤으로 분장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책을 좋아해서 서점을 주말마다 가는 내가 도서 관리 업무를 담당하게 된 것이다. 일부러 배정한 일이 아니었다. 우연히 배정받은 일이 되었다. 나는 마치 도서관 사서처럼 과 내에 모든 책을 관리했다. 또 다른 업무들은 모두 내가 약을 먹고 치료를 받을 때 궁금했던 것 혹은 어려움이 있었던 것들을 연구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아팠던 것이 다 이런 업무를 하기 위해서였나 생각되었다. 물론 연구의 의미를 찾지 못하거나 일이 잘 안 되면 내가 일을 하는 것도 내가 아팠던 것도 다 쓸모없는 헛고생 같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일이 어려울 땐 능력이 모자란 자신이 한탄스러웠다.


이 허무한 감정과 기운 빠지는 생각을 금요일 퇴근길 기차에서 내던졌다면 일요일 고향을 떠나는 기차 안에서 하나 둘 주워온다. 금요일에 탄 기차는 가벼운데 일터 옆에 구한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는 뒷 목 뻗뻗해지고 골치가 아픈 일들이 떠올라 무겁다. "월요일은 일하기 싫어~" "나는 뽀로로가 되고 싶어 노는 게 제일 좋아"를 속으로 되네인다. 그러다가 잠시 후 목적지인 00역에 도착했다는 안내멘트가 나오면 고향에 두고 온 정신이 다시 들어온다. 갈 수 있는 직장이 있는 것이 감사하고 직장에 다닐 수 있는 몸 상태인 것을 감사하면서 일을 시작한 초심을 잊지 않기 위해 마음을 달랜다. 내일 가면 할 일을 생각한다. 내일 가서 일하기 위해 나를 위한 준비를 한다. 일요일 오전에 주문한 쿠팡 배송이 집 앞에 도착해있다. 장 본 것으로 5일간 먹을 음식을 해놓고 목요일 밤 해놓고 간 빨래도 잘 정리해둔다. 불타는 금요일과 작고 소중한 주말의 일요일 밤이 저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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