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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혜영 May 21. 2022

삼각김밥과 딸기우유

어릴 적 병원 입원이 잦았다. 응급실 갔다가 입원했다가 퇴원하고 또 응급실에 갔다. 그래서 집 현관 앞에는 작은 가방을 항상 두었다. 언제든 병원에 갈 수 있도록 간단한 소지품을 담아둔 것이었다. 응급실은 들어서자마다 물 포함 금식이라고 알려준다. 병원 문에 들어서면 검사 결과 나오고 상태가 호전될 때까지 금식이다. 그렇게 응급실에서 소란스러운 밤을 보내고 아침이 되면 나는 각종 검사와 주사에 그리고 내 병이 일으키는 통증에 지쳐 넋이 나가 있다.

넋이 나간 환자와 그 옆에 지친 기색이 역력한 보호자에게 의사 한명이 다가왔다. 많은 의사들을 만났지만 아직도 잊지 못하는 의사 선생님이다. 경황이 없었을 때고 너무 어려서 이름을 외워도 잊었겠지만, 인턴이었는지 레지던트였는지 모를 지금의 내 나이쯤 되어 보이는 젊은 남자 의사 선생님이었던 것만 기억이 난다. 내 기억은 오전 회진 후 내가 있는 응급실 침대로 삐쭉삐쭉 수줍어하면서 다가오는 의사 선생님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엄마에게 비닐봉지를 건네주면서 조심히 말했다. “이거 애기랑 드세요....” 엄마랑 나는 의아하기도 하고 뭘 먹으라고 준 것에 놀라서 물었다. “이게 뭐예요 선생님?” 그 선생님의 설명이 이어졌다. “제가 보니 애가 계속 뭘 못 먹었잖아요 이제 검사 안 해도 되니까 지쳐있으니 뭐라도 좀 먹이세요... 제가 아침 사 먹고 오다가 간단히 샀어요..” 굉장히 조심스럽게 말했다. 감사 인사 후 봉투를 열어보니 삼각김밥 두 개와 딸기우유 두 개가 들어있었다. 삼각김밥을 나에게 직접 뜯어주며 애기라서 딸기우유가 나을 것 같았어요... 하면서 먹는 걸 보고 가겠다고 기다리며 서있었다. 어린 마음이었지만 굉장히 고마웠다.

밤새 심장이 빨리 뛰고 나면 명치가 아프고 입이 바싹 말라 뭘 잘 먹지 않는데 사온 성의를 생각해서 천천히 먹고 있었다. 내가 다 먹는 것을 기다리시며 조용히 말하셨다. “어젯밤부터 새벽 내내 애기를 봤는데 오전에 편의점에 가서 밥 먹으려는데 애기가 눈에 밟혀 사 왔어요. 별건 아닌데 밥은 파는 게 이것뿐이라, 제 생각이지만 너무 먹지 않아도 심장이 힘이 없을 것 같아서 안 될 것 같아 사 왔어요...” 어린 내가 보기에도 말을 많이 하고 활달한 성격이 아닐 것 같은 선생님이 그걸 사서 오기까지 나름 용기가 필요했을 것 같다. 혹시 먹고 있다고 혼날까 봐 자기가 지켜보다 가겠다고까지 했으니 조심스러운 성격이기도 하셨다.

병원을 많이 다녔고 괴로운 기억도 많았지만 이렇게 잊지 못할 따뜻한 추억도 있었다. 나에겐 이 날의 일이 꽤 인상 깊었는지 이십 년이 훌쩍 넘었는데도 삼각김밥을 보거나 딸기 우유를 볼 때마다 기억이 스친다. 오늘 삼각김밥을 어설프게 까 먹다가 또 생각이 났다. 그때 고마운 선생님이었지..... 하면서. 나도 그런 온정을 보여주는 사람으로 살아야 할 텐데... 그리고 때론 그 선생님은 복을 많이 받으셨을 거야.. 하면서 얼굴도 이름도 기억 안나는 사람의 행복을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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