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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림스 Jul 17. 2024

뜨거운 6월은 갔고, 기말고사는 끝났지만

학원 생활

인천에 한 학원의 영어 강사다. 내신과 수능에 집중하는 학원이다. 다양한 아이들이 학원에 온다. 성적을 올리고 싶은 아이들과 친구들과 놀고 싶어서 오는 아이들. 부모님이 보내서 온 아이까지. 이처럼 성적대도 다양하다. 겨울 방학에 A라는 학생이 등록했다. 공립 고등학교 1학년으로 입학한 학생이다. 특이 사항은 이제 막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  


영어 문장도 기본 영단어도 모르는 아이였다. 파닉스도 잘 모르는 학생이다. 방학 때 초등학생이랑 수업을 같이 들었다. 


우리 학원 고등부는 개학하는 순간 학교별로 나뉜다. 선생님들이 각 학교를 맡으며 담임제로 운영된다. 나는 그 학생의 담임이 되었다. 총 6명의 학생으로 구성되었고, 남고였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 2명, 잘 못하지만 열심히 하는 2명 그리고 놀러 다니는 학생 2명. A 학생은 열심히 하는 그룹에 속했다. 


질문을 보면 그 학생의 학업 성취도를 알 수 있다. A 학생이 가지고 온 질문들을 보면 아주 기초적인 질문들이었다. 중1 수준의 질문들. 중학교 시절의 공백이 느껴지는 질문들이었다. 하지만 그 학생은 내게 질문을 계속했고, 공부했다. 내 모든 수업이 끝나는 시간은 밤 11시. A학생은 항상 문 앞에 서있었다. 지금 질문해도 되냐는 순수한 표정을 뒤로한 채 퇴근을 할 수 없었다.


- 이 문법은 왜 그런 거예요?

- 이 문장은 해석이 잘 안 돼요.

- 이 지문은 한글 해석을 읽어도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어요.

- 이 선택지는 왜 답이 될 수 없는 것일까요?


A는 시간이 흐를수록 당황한 모습이었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아는 게 많아질 줄 알았는데 쥐게 된 답보다 늘어난 질문에 난감해했다. 그러나 A는 포기하지 않았다. 쌓인 틀린 문제에 한숨 쉬어지고, 고개 떨구는 날은 많았지만 눈은 조용한 사냥꾼처럼 작게 빛났다. 지금은 틀린 게 아니라 모르는 걸 확인하는 단계라는 말을 계속해줬다. 이런 실수 없이는 좋은 결과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A는 중간고사 첫 시험에서 70.1을 받았다. 그 학교 내신 영어 시험은 난이도가 쉬운 편은 아니었다. 시험 범위 자체도 많아 봐야 할 지문들이 많았다. 하지만 기초가 없는 상태에서 시작해 받아온 점수로써 만족스러웠다. A도 같은 생각이었다. 중간고사 시험지 상담을 하며 이대로 계속하고 문법 문제나 낱말 문제를 집중적으로 하면 좋은 점수를 기대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을 해줬다.


그렇게 6월이 되었다. 끈적함과 뜨거움의 연속. A라는 친구는 계속해서 열심히 했다. 중간고사와는 다른 분위기로 기말고사를 준비하는 아이들. 나도 그 뜻에 동참해 주말을 반납했다. 6월 내내 주말 없이 학원에 나왔다. 시간이 부드럽게 흘러갔다. 누군가가 노력을 할 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이 직업의 가장 큰 매력이다. 



A 학생의 학교의 영어 기말고사가 있던 날, 나는 점심을 먹고 아이들의 연락을 기다렸다. 공부 잘하는 학생들에겐 연락이 왔다. 이번 기말고사는 꽤나 쉽게 나와 좋은 점수를 받았다고 했다. 하지만 A 학생에겐 연락이 없었다. 시험이 끝나고 학생에게 연락이 없는 대부분의 이유는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해서이다.


출근을 하고 평상시처럼 수업을 했다. 화장실을 다녀오자 익숙한 뒷모습이 내 강의실 문 앞에 서있었다. A였다. 시험 잘 봤냐라는 질문에 84점이라고 웃으면서 말했다. 26문제 중 객관식 3개 서술형 1개 틀렸다. 직접 말씀드리고 싶어서 점심에 연락을 안 했다고 했다. 수고했다고 나는 말해주고 안아주었다. 


내가 이 친구만 봐준 것처럼 보이지만, 많은 학생들에게 똑같이 말했다. 언제든지 질문이 있으면 가지고 오라고, 나를 괴롭히라고. 하지만 질문을 들고 오는 아이들은 언제나 소수이다. 그리고 소수가 결과를 만든다. A는 본인의 태도로 성적을 증명했다.


반대로 좋은 태도로 열심히 했지만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못하는 친구들도 존재한다. 사람이 계획한 일은 곧잘 빗나간다는 점을 먼저 배운 아이들. 뜨거운 6월은 갔고, 기말고사는 끝났지만 그런 아이들을 위한 방향을 제시해야 하는 시기이다. 언제나 해답은 뒤에 없고 앞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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