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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나 Oct 10. 2024

바람의 언덕      -선자령-

초보 백패커의 기록 3

드디어 그날이 왔다.

우리가 선자령으로 백패킹을 떠나는 그날이~~

사실 백패킹을 처음 시작하면서 가고 싶은 많은 곳들을 리스트에 적어 놓았는데 선자령은

그중에서도 1순위로 가고 싶은 곳이었다.

백패커들이라면 우리나라 3대 백패킹 성지라 불리는 곳들(굴업도, 선자령, 비양도)을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특히 나 같은 초보 백패커들은 성지라고 불리는 곳부터 찾아보는 법이니까.

그중에서도 사실 마음만 먹으면 그냥 바로 배낭을 메고 떠날 수 있는 곳이 선자령이 아닐까 싶다.

인천의 굴업도와 제주도의 비양도는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곳이기 때문에 배편 예약부터 시작해서 미리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다. 아무래도 철저한 계획과 준비가 필요한 백패킹 장소다.  거기에 비하면 강원도 평창에 위치한 선자령은 지리적으로 가장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이다. 선자령을 좋아하는 백패커들은 계절마다 간다고 하니 그 매력 또한 무시할 수 없으리라.

그렇게 가기 쉬운 곳을 왜 계속 미뤄왔을까.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것은 바로 날씨였다. 선자령을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는 곳이라고 해서 그곳이 그리 호락호락한 곳이란 뜻은 아니다.

선자령이 바람의 언덕이라 불리는 것이 바로 그것. 변화무쌍한 선자령의 날씨 중 바람으로 인해 낭패를 본 백패커들을 유튜브나 블로그만 찾아봐도 쉽게 볼 수 있다.

텐트 폴이 휘어지거나 부러지고 텐트를 날려

버릴 수도 있을 만큼 강력한 바람이 불기 때문이다.

비가 와서, 너무 흐려서, 너무 추워서 등등 여러 이유들로 가고 싶었던 선자령이 뒤로 밀리다가

드디어 10월 첫째 주, 가을 선자령에 첫 발을 디뎠다.

우리가 가기로 정한 날은 일기 예보상으로도 맑음이었고 바람도 거의 없었다. 제발 이 예보가 변하지 않기를 바라며 우리는 등산을 시작했다.

이번 선자령 산행에는 우리 멤버 외에 나의 막둥이 아들도 함께 했다.


선자령으로 출발!!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과 강릉시 성산면 경계에 걸쳐 있는 선자령은 높이 1,157m로 대관령 북쪽에 있는  산이다.

백두대간의 주능선에 우뚝 솟아 있는 산이기도 한데 해발고도는 높지만 산행의 기점이 되는

구 대관령 휴게소가 해발 840m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선자령까지는 사실상 6km밖에 되지 않는다. 등산로가 평탄하여 비교적 쉬운 등산코스에 속해서 등산객들은 물론이고 백패킹 초보자들도 많이 찾는 곳이 바로 선자령이다.


 우리는 최단거리로 올라가기 위해 구 대관령 휴게소에서 조금 더 차를 몰아 KT 송신소가 있는 곳에 주차를 했다. 우리도 우리지만 막둥이 아들이 혹시라도 힘들어하지 않을까 싶어서

였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핑계였고... 내가 힘들어서였다.

혼자 오를 때는 모르겠지만 아이를 데리고 간다는 것은 배는 더 신경 쓰이고 힘든 일이었다. 혹시라도 배낭이 무겁다고 징징거리기라도 하면 어쩌나 노심초사하며 올랐다. 아들은 내 걱정을 한 방에 무너뜨렸다.

무거울 법도 한 박배낭을 씩씩하게 메고 엄마를 앞질러 날다람쥐처럼 산을 올랐다.

내가 배낭 때문에 잠시 쉬었다 가자고 하니 무거운 엄마 짐을 자기 배낭으로 옮겨 달라고

까지 하는 여유를 부렸다.

새삼 언제 저렇게 컸나 싶은 마음에 울컥

하면서도 든든해졌다. 아직은 낮에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날씨라 반쯤 올라가니 땀이 줄줄 흘렀다. 그러다가도 숲 속 길로 들어서면 다시 시원해졌다.

몇 번쯤 반복하고 나니 드디어 저 멀리 풍력 발전기의 날개 부분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들~~ 풍력 발전기가 보인다. 우리 조금만 더 가면 돼. 힘내!!!"


다시 파이팅을 외치고 막판 스퍼트를 올렸다.

선자령이 왜 백패킹의 3대 성지인지, 백패커들이 왜 그렇게 선자령을 사랑하는지 그곳에 올라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보고 비로소 알았다. 그곳은 정말 성지였다.

온갖 색상별, 종류별 텐트들이 풍력 발전기 주변으로 펼쳐져 있는 모습에 와~ 하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군락을 이루고 있는 선자령의 텐트들


첫 선자령 백패킹은 날씨까지 우리 편이었다. 땀을 식혀줄 정도의 아주 잔잔한 바람, 그 바람에 느릿느릿 돌아가는 풍력 발전기,

그리고 내리쬐는 햇살에 반짝이는 각양각색의 텐트들과 풀과 나무들...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힐링 그 자체였다.

우리는 텐트를 피칭할 장소부터 물색한 다음 배낭을 내려놓고 텐트를 꺼냈다.

큰아들에게 이른 생일 선물로 받은 새 텐트를 이곳 선자령에서 처음 펼치다니!!!

나의 새 집인 노랭이(내 새 텐트의 애칭이다)는 그림 같은 선자령 풍경과 오늘의 날씨와도 찰떡궁합이었다.

텐트 피칭이 끝나기 무섭게 의자를 펴고 디팩에서 시원한 맥주부터 꺼내 들었다.

집에서 살짝 얼려온 맥주는 내게 한 줄기 오아시스와도 같았다.


눈앞에 보이는 수묵화 같은 능선들, 고개를 들어 위를 올려다보면 수채화 같은 하늘과 구름, 마치 대비되는 듯한 두 개의 그림을 나란히 감상하는 것 같았다.

아들은 들고 온 아이패드 드로잉으로 선자령 풍경을 그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아이와 함께 오는 것을 살짝 고민했었는데 데려오길 참 잘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행 후 허겁지겁 들이킨 맥주 한 캔 때문일까. 갑자기 피로가 몰려왔다. 저녁을 먹기 전까지 각자의 텐트에서 낮잠을 자면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옆에서 그림 그리기에 심취해 있는 아들을 보다가 잠깐 잠이 들었나 보다. 어둠이 내려앉으면서 살짝 한기가 느껴지는 바람에 눈을 떴다.

선자령은 일교차가 매우 커서 낮에는 덥지만 밤에는 5도에서 3도까지 내려간다는 예보를 미리 보고 충분히 보온이 될 만한 옷과 핫팩을 준비했다.

뜻하게 옷을 갈아입고 꿀맛 같은 저녁식사를 마친 후에는 선자령에서 빼놓을 수 없는 텐풍을 감상했다. 전국의 백패커들이 다 이곳에 모였나 싶을 정도로 선자령을 빼곡하게 채운 텐트에서 서로 저마다의 불빛을 뽐내고 있었다.

 

선자령의 멋진 텐풍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여기 다 모일 수가 있지. 참 신기하면서도 놀라웠다.

그 속에 나도 있다. 백패킹의 참 맛을 조금씩 알아가는 것 같은 기분에 괜히 어깨도 한번 으쓱거렸다.

하늘에선 쏟아져 내릴 것만 같은 별들이 반짝

거리고 이곳 선자령 바람의 언덕엔 색깔별로 반짝이는 텐트들이 있다. 예보를 빗나가는 이변은 없었고 우리는 잔잔하게 선자령에서의 밤을 보냈다.


막둥이 아들은 산을 오를 때보다 하산할 때 조금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첫 백패킹에 대해 매우 환상적이었다는 말로 소감을 대신했다. 다음에 또 같이 갈 거냐는 질문에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예스라는 대답도 들을 수 있었다. 사실 나만의 힐링 시간을 갖기 위해 아들을 데리고 가지 않으려 했다가 함께 가자고 제안한

이유는 스마트폰과 컴퓨터, 게임에서 벗어나

멍 때릴 수 있는 시간을 아들에게도 선사해

주기 위해서였다. 심심하고 재미없어서 다신 가지 않겠다라고 할 줄 알았는데 엄마의 마음이 아들에게도 닿은 것 같아서 그것만으로도 반은 성공한 것 같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다음 백패킹 장소를 묻는 아들.

너, 우리 백패킹 멤버로 충분히 합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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