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립고도 미운 너에게

by 여름밤

그 친구는 나보다 한 살이 적었다. 처음 만난 것은 내가 24살, 그 아이가 23살일 때였다. 약간 찢어진 눈에는 반항심이 담겨있었다. 먼저 말을 건 것은 나였다. 나랑 그 친구는 성당 청년 모임에 속해있었는데, 그 당시 나는 리더 역할을 맡고 있었고, 여기 저기서 앞으로 나서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보니 내 주위는 일때문이거나 아니거나 항상 여러 사람들로 복닥복닥했다. 그런 내게 그 무리에 들어오지 못하고 있는 그 친구가 유독 신경쓰였다. 성당 모임의 특성상 사람들의 눈은 항상 웃는 상이었고 목소리는 나긋나긋했다. 나 스스로도 그런 부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 아이의 반항심이 더 마음에 들었다. 청소년들도 그렇듯이, 보통 사람이 겉이 거칠면 속은 부드러운 경우가 많았다. 내 짐작은 적중했다. 그 친구는 고마운 일에 고마워 할 줄 알았고, 미안한 일에 미안해할 줄 알았다. 모임이나 일에 늦는 법이 없었고, 하지 못할 일을 거절하더라도 하겠다고 한 일은 책임을 다했다. 그런 기본을 지키는 사람이 드물어서일까, 아니면 겉모습과 달라서일까. 그 친구에게 호감을 느끼는 사람들은 더 늘어갔다. 조금씩 그 친구의 주위가 복닥이기 시작했다. 그 때까지만 해도 뿌듯함이 더 컸다. 내가 발견한 보물을 모두가 알아준다는 느낌. 순수한 기쁨.


시간이 흘러 나는 이른 나이에 결혼했고 아이가 생겼다. 10평짜리 방에서 홀로 어린 아이와 육아를 하고 있는 내게 근처에서 취업준비를 하고 있는 그 친구의 존재는 큰 위로였다. 이십대에 엄마가 된 친구는 내 주변엔 없었다. 주변에 쉽게 휩쓸리는 나는 몇 개월이 지나도록 엄마라는 정체성 보다는 친구라는 정체성에 더 익숙했기에 더 외로웠다. 그 친구는 일주일에 한번은 우리집에 들렀다. 자기 엄마가 사둔 오리고기나, 반찬들을 커다란 검정 배낭에서 꺼냈다. 점심은 이걸 먹자며 몇시간이고 이야기를 나눴다. 보통은 그친구가 말하고 나는 듣는 쪽이었는데 나는 그게 좋았다.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끊기지않고 조리있게 자기이야기를 하는 그 친구가 신기할 따름이었다. 오죽했으면 여러 번의 시험 낙방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친구에게 쇼호스트를 하는게 어떻냐고 제안할 정도였다. 그 친구 덕분이었을 것이다. 내게 그 흔하다던 산후우울증도 없었고, 육아로 인한 외로움도 덜했던 것은. 그런 사람은 잊을 수가 없다. 아무도 내 곁에 없을 때, 나 홀로 외로울 때 곁을 지켜준 사람은. 23살 처음 만났을 때, 그 친구에게도 내가 그런 존재였을까? 아니면 그 친구는 그 때도 그다지 외롭지 않았을까. 나는 아마 평생 물어보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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