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의 관계는, 특히 상사와의 관계는 피상적이라고 생각했기에 상무님과의 이별이 아무렇지 않을 줄 알았다. 회사라는 게 원래 팀 이동이나 보직 이동이 잦고 기업의 자리 하나하나가 대체 가능한 속성을 갖기 때문에 직장 내에서의 이별은 큰 이벤트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팀에 온 지 한 달만에 유일하게 나를 챙겨주셨던 선배님이 다른 팀으로 전배 되었을 때도 도움을 줄 사람의 부재가 가장 걱정이 되었지 슬픔이 주가 되진 않았었다. 그런데 상무님과의 이별은 아쉬움과 슬픔이었다. 그동안 나눴던 대화의 시간만큼, 매일 뵙던 분을 아예 회사에서 볼 수 없다는 게, 매일 듣던 인사와 발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게 너무 어색했다.
사람은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을 좋아하게 되고 마음이 갈 수밖에 없다. 나는 우리 상무님을 좋아했다. 나의 첫 상무님이셨고 많은 부분에서 젊은 세대와 소통하려고 노력하셨기 때문이다(트렌드 관련해 M세대인 내 의견을 많이 물어보셨다). 그리고 지금은 나아졌다고 하지만 과거 유통업계가 얼마나 고되고 남성 중심적인지 들어왔기에 그것을 다 견뎌내고 여성 임원으로서 여성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셨다는 점도 작용했다. 물론 윗 분들은 업무로 직접 상무님과 대면해야 했기에 나와 다른 입장일 수 있겠지만, 갓 들어간 신입사원은 권위적이지 않고 내게 관심을 보여주시는 상무님이 그냥 좋았다. 상사로서 느껴지는 감정보다 인간 대 인간으로서 호감을 느꼈던 것 같다.
어떤 사람을 좋아해야지 그 사람에 관심을 갖게 되고 그래야만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상무님이 남초 환경에서 일부러 더 강하게 표현하려 애쓰시는 것이 보였고, 더 윗분들과의 관계에서는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성(친절함 또는 챙김과 같은)까지 보여주시려고 노력하신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겉으로는 강한 사자의 모습이지만 그게 원래 모습이 아니신 것을 느꼈기에 실질적인 힘은 못 되어드리지만 마음속으로 응원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회사에서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호감의 말이나 행동을 하면 이것을 "정치한다", "아부한다"라고 표현한다. 그래서 나는 의도치 않게 "정치질 하는"사람이 되었고 좋아하는 마음을 눈치 보게 되었다. 내가 아직 뭘 몰라서 그런 건가. 정말 회사에서는 정치만 존재하는 걸까.
익숙해진 사람과의 이별. 매일 눈에 보이고 지나가며 말 한마디라도 건네주시는 분이 떠나시니 멀미가 났다.
이별에 익숙하지 않다. 이걸 매년 매 시즌 겪어야 한다니. 직장인이 된다는 건, 어른이 된다는 건 더 강해져 더 이상 멀미를 하지 않게 되는 것일까. 이제 곧 새로운 사람이 오고, 그 사람에 익숙해져 그 사람에 길들여지면 이 허전함은 채워지겠지. 그리고 다음 누군가가 떠나면 이 허전함과 슬픔이 한동안 나를 데리고 다니겠지. 또 누군가에게 길들여지고 익숙해지기까지.
정치, 나는 잘 모르겠다. 남들 눈치 봐가면서 누구한테 잘 보이고 이런 건 하고 싶지 않다(어차피 고위직에 오르는 것에 관심 있는 것도 아니니). 내가 좋아하는 사람,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에게 호감을 표하며 함께 즐겁게 일하고 싶고 모두 같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이별은 아무리 해도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다. 아직도 문득문득 첫 상무님이 생각난다.
+잔 생각)
2018년, <신과 함께 2>를 보며 내가 느낀 것은 '나쁜 사람은 없다. 나쁜 상황만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직장 생활을 하며 배우는 게, 좋은 업체가 따로 있지 않고 나쁘기만 한 업체도 없다는 것. 내 상사는 말했다. "그냥 우리에게 이득을 주는 업체가 좋은 업체인 거지."
사람도 마찬가지다. 나쁘기만 한 사람 없고 좋기만 한 사람 없다. 어떤 면에서는, 어떤 때에는, 어떤 일에서는 좋은 상대가 다른 상황에서는 안 좋은 대상이 될 수 있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는 好고 누군가에게는 不好일 것이며, 好인 사람에게도 어떤 면에서는 不好일 것이다. 업무적으로, 직책의 성격상 충돌하거나 대립할 수 있지만 그것으로 그 사람에 대한 감정을 호불호로 명확하게 규정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잘은 안되지만, 상황 또는 일과 그 사람 자체에 대한 감정/평가를 분리하며 살고 싶다.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잃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