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땡아 이 층에서 니가 제일 예뻐

내 딸이 상사에게 이 말을 듣는다면

by 어른이 된 피터팬

엄마께서 외출 후 집에 들어와 종종 이런 말씀을 하신다. "오늘 회의에 갔었는데 네 또래의 청년이 아주 적극적으로 의견 표명을 하길래 칭찬해줬지", "어떤 식당에서 사회초년생으로 보이는 직원 분이 실수를 해서 너무 미안해하는데 네가 생각나서 괜찮다고 오히려 격려해줬어." 나와 비슷한 나이대의 청년을 밖에서 보면 내가 생각나 더 잘해주려고 하게 된다는 그런 이야기. 엄마는 항상 밖에 나가면 내가 생각나서 사회 초년생들에게 더 의식적으로 친절하려고 노력하신단다. 그렇게 밖에서 만나는 그는 누군가의 딸이고 아들이고, 어머니고 아버지며, 누군가의 귀한 사람이다. 이 점을 기억한다면, 내 가족이 사회에서 받았으면 하는 대우를 다른 이들에게 한다면, 좀 더 신뢰하고 따뜻한 사회가 될 텐데.


팀원들과 다 같이 장례식장에 간 날이었다. 문상을 드리고 식당에서 다 같이 밥을 먹고, 몇몇 분은 소주를 드셨다. 이미 몇 잔 먼저 들이켜신 상사가 계속 술을 권했지만 원래도 술을 잘 안 하고, 이미 취한 게 보이는 그분의 술을 받아 마시는 건 더욱 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그분은 반쯤 풀린 눈으로 내게 말했다. "땡땡이가 이뻐 보이네"라고. 지나가는 차가 웅덩이에 고인 구정물을 확 튀기고 간 느낌이랄까. "그 발언 불쾌합니다. 성희롱으로 느꼈습니다"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그곳에 여자이자 낮은 연차는 나뿐이었다. 아무도 나의 불쾌 감정에 공감하거나 그분의 발언에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할 것이 뻔했다. 그래서 나는 화를 억누르고 애써 웃으며 "많이 취하셨네요"라고 넘겼다. 그리고는 그쪽을 바라보지도 않았다. 쳐다보기도 싫었다.


전 직장에서 나는 내가 프로 불편러인가? 내가 이상한 건가? 이런 의구심을 품으며 살았다. 나의 상사는 자주 나노 단위의 외모 평가를 했다. "오늘이 가장 예쁘네, 지난주는 좀 부었어", "너는 머리 묶은 게 더 예쁘다"와 같은. 칭찬인데 왜 기분이 나쁘냐고 물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외모 평가의 대상이 되는 것 자체가 기분이 나빴다. 나의 외모가 회사에 와서 평가 대상인 것이 불쾌했다. 그리고 외모에 대한 것을 자주 들음으로써 나도 모르게 코르셋에 갇히는 느낌을 받았다. 소위 가스 라이팅. 스스로를 계속 검열하고 위축되게 하는 효과가 있다. 물론 나도 "예쁘다"라는 감탄사를 남용하긴 하지만, 회사 같은 공적인 장소에서 사람에게 직접적으로 쓰진 않는다. 가족이나 친한 친구에게는 쓸 때도 있지만 회사 사람에게는 의식적으로 쓰지 않는다. 사물이나 비인격에게만 쓰려한다. 그런 면에서 나는 상사의 외모 평가 또는 외모 칭찬이 나를 계속 대상화하고 위축시켜 기분이 나빴다.


여러 차례 말씀을 드렸다. 외모 평가의 대상이 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다고. 하지만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시니 나만 예민한 사람이 됐다. "이 층에서는 A팀의 김땡땡이 제일 예뻐" , 또는 "이땡땡(나의 후배)이 오늘 정말 예쁘다." 다른 분 외모 칭찬하는 걸 듣는 것도 거슬렸다(예쁘다는 표현 자체에 문제제기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건 관계, 상황과 맥락, 뉘앙스를 통해 전달되고, 피해자는 그걸 감지할 수 있다). 같은 여자 동료가 외모 평가 대상에 올려지는 게, 여자라는 속성으로 같이 묶여 평가대에 올려지는 기분이었다. 그럴 때면 말씀드리고 싶었다. 본인의 따님이 사회에 나가 외모 평가당하고 대상화되는 걸 원하시는지.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사람마다 성인지 감수성의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처음에는 세대차이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히려 나이가 많으신 분, 직급이 높으신 분 중에 이런 성희롱적 발언을 하지 않으시는 분들이 많다. 아무래도 이와 관련하여 회사에서 교육을 하기도 하고, 회사생활을 잘하시는 분들은 언행을 조심하시는 측면도 있다. 진리의 사람 by 사람. 뭐가 문제인지 모르시는 분들은 나이에 상관없이 이런 무례하고 불쾌한 발언들을 자주 한다. 누군가에게는 이런 발언들이 큰 스트레스로 다가올 것이다. 상사를 만나기가 걱정스럽고, 비슷한 상황에 놓일까 봐 조마조마할 수 있다. 업무적으로 일 떠넘기기 등은 메신저로 상황 증거가 포착되지만, 이런 순간순간의 발언들은 항시 녹음을 하지 않으니 수집하기가 어렵다. 회사의 성희롱 교육은 매년 이루어지지만 별 개선이 없었다. 처음엔 내가 불편러인지 의심을 했지만 그 상황과 언행을 지인들과 상담사에게 이야기했을 때, 충분히 불쾌할 만하다고, 조치를 취하라고 조언해주었다. 그 이후 날 검열하지 않겠다고, 계속 불편함을 표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다른 피해자가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으니까.


비단 나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남자인 친구가 본인이 다니는 회사에도 변태 같은 이상한 사람이 있다며 일화를 말해주었다. 본인이 속해 있는 팀에 악명 높은 부장님이 있는데, 그분은 여자 사원들 사이에서 조심해야 할 대상이라 불리는 분이라고 한다. 동기들이 본인 얘기를 듣기 전부터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의식적으로 피하고 있었던 존재. 그 변태 부장님이 친구한테 동조를 구하며 "쟤가 00 사번에서 제일 예쁜 것 같아. 그렇지 않냐?"라고 계속 물어봐서 본인이 엄청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그리고 신입들 중 여자분들 외모 순위를 매겨 "1번 온다", "4번 지나간다" 등 순위로 여자분들을 부른다는 것. 정말이지 여러 사람이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생생한 에피소드를 들으면서 같이 화가 났다. '나 역시 나도 모르게 외모 순위로 불렸겠구나'라는 불쾌감까지 밀려온다. 친구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 윗선에서 인지하고 있지만 개선되지 않고 여전히 그가 당당히 그런 발언을 하는 게 답답하다고, 여자 동기들은 그 변태와 같은 층에서 일하며 스스로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지내야 한다고. 왜 피해자들이 조심하며 살아야 하는 걸까. 가해자들을 처벌하고 무엇이 잘못인지 명확히 인지시키고, 권력자의 희롱에 동조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맞을 텐데.


공부를 하면 할수록 성별 문제로 보이는 많은 사회 문제, 젠더 문제가 사실상 권력 문제임을 알 수 있다. 성희롱당하는 남자 사원의 경우가 그 반대의 경우보다 드물지만 존재하는 것처럼 성희롱은 여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개 직장에서의 성적인 문제는 권력의 차이에서 발생한다. 사회에 분배된 권력 구조상 여자가 성희롱당하는 경우가 더 많을 뿐. 남자 신입사원이 여자 상사 앞에서 성희롱 발언을 할 수 있을까? 여자 상사 앞에서 남자 신입이 여자 직원들의 외모 순위를 언급할 수 있을까? 권력의 문제다. 여자만이 아닌, 남자도, 그리고 누구라도 약자 포지션에 처했을 때, 피해자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남자 편, 여자 편이 아닌, 잘못된 행동에 대해 잘못됐다고 함께 말해주는 사회, 권력자의 잘못에 동조하지 않고 피해자의 편을 들어주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더구나 무엇이 잘못인지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나쁜 의도는 아니지만 결과적으론 피해를 주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말이다.


그래서 나는 잘못된 발언에 동조하는 문화를 받아들이지 않고 계속 문제를 제기할 것이고, 다른 누군가가 약자로서 피해를 당했을 때 도움이 안 될지라도 그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의사 표명은 할 수 있게 실력과 용기를 키울 것이다. 우리는 사회 조직원으로서 다른 이와 나를 완전히 분리할 수 없다. '내가 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하라(황금률 Golden rule)'는 암묵적인 룰이 있는 것처럼 우리는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내가, 내 가족이 사는 사회 자체를 좋게 만드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너를 위해서가 아닌 나를 위해서 사회를 점차 좋게 만들어가고 싶다.


※더하는 말


사회 의식수준이 발전함에 따라 이전엔 문제가 아니었던 것들이 문제시되면서 그 경계에 있는 것들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 어려울 때가 많다.
요 몇년새 의식 향상이 된 분야인 여권, 노동권, 동물권 등에서 특히 그러하다.


칭찬의 의미에서 섹시하다, 예쁘다라고 말했는데(캣콜링과 크게 다른가?) 기분 나빠하는 건 오바다라며 예민한 사람을 만들거나, 요새 유리천장이 어디 있냐라며 누군가가 느끼는 어려움 자체를 부정한다. 개를 학대하는 것을 비난하는 게 지나친 동물 감싸기라고 누군가는 말하기도 하고, 주 40시간 근로에 대해서도 예전에 비하면 좋은 세상인데 요즘 사람들은 불평이 많다고 평한다.


세상의 기준이 바뀌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저런 갈등이 생긴 것 자체가 그 반증이다. (대개는 기득권이 이해할 수 없는)문제의식을 가진 자가 나타나고 있다.


예민하다, 네가 이상한 거다 라고 하기에 앞서 누군가는 이렇게 느껴왔을 수도 있구나, 불편할 수 있겠구나, 이제까진 아무렇지 않았는데 사회에 이런 목소리도 나오고 있구나 정도로만이라도 이해하며 사회가 정반합의 과정을 거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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