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끝자락을 펼치기

영화 ‘사랑하는 당신에게’

by 최지원


언젠가 뉴스를 보다 '육각형 인재'라는 단어를 접한 적이 있다. 어느 하나 부족함 없이 무엇이든 잘 해내는 사람을 뜻하는데, 넓고 모나지 않은 반듯한 육각형이 그려질수록 요즘 사회가 선호하는 인재상이라고 한다.


​또 다른 언젠가는 인생을 '끝 없는 길'에 비유한 글귀를 읽은 적도 있다. 이 갈래 저 갈래로 헤매가면서도 결국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올바른 삶의 방향이라고 쓰여있었다.





말마따나 한 사람의 인생을 길에 비유한다면, '사랑하는 당신에게'의 주인공 '제르맹'은 생의 막바지에 도달해가는 노인이다.​


사랑하는 아내와 사별하고, 스스로의 건강도 썩 좋지 못한 채 텅 빈 집에 홀로 남겨졌다. 자식들의 눈에 비친 제르맹의 모습은 곧 끊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얇고 위태롭기만 하다.


​그러나 이 영화는 노년의 제르맹이 삶의 끝자락을 갑작스레 육각형으로 펼쳐나가는 엉뚱한 방향으로 전개된다. '사랑하는 당신에게'는 모나고 부족한 채로도 삶을 원하는 각도로 그려나갈 수 있음을 일깨워주는 영화이다.



삶의 지도를 새롭게 그려보기



영화는 갑작스레 아내를 떠나보낸 제르맹의 상황에서 출발한다. 아내가 생전 꼭 서고 싶어했던 현대 무용 공연에 대신 서기로 결심한 제르맹은 단조롭던 일상의 영역을 꾸역꾸역 넓혀나가기 시작한다.


​아내가 살아있을 적에도 가본 적 없는 듯 한 공연장에 발을 들이고, 생판 모르는 무용수들과 어색한 인사를 나눈다. 팔자에도 없던 민망한 레깅스 차림으로 뜻모를 춤동작을 배우며 서툴게 팔과 다리를 뻗어보기도 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제르맹 주변의 젊고 노련한 무용수들에 비하면 턱없이 느리고 어색한 춤사위였다. 그러나 동료와 가족들은 그런 제르맹의 서툰 몸짓에 외려 감동받는다.


​처음엔 웃음을 터뜨리며 제르맹의 춤을 바라보던 관객들도 어느 순간부터는 백발 노인의 서툰 시도를 진심으로 응원하게 된다.



제르맹은 아내가 떠난 뒤 슬픔 속에 홀로 고여있는 대신, 아내가 못다 춘 춤을 춤으로써 아내의 죽음을 그리워하기를 택했다.


​죽은 아내가 못다 마친 삶을 자신의 것으로 더 넓게 끌어안는 것이 제르맹의 방식이었다. 제르맹은 생의 끝자락에 서서 전에 없던 각도로 삶의 지도를 넓혀가기 위한 용기를 냈다.


팔다리는 여전히 느리게 움직이고, 현대 무용이 어렵고 난해하기는 마찬가지다. 노인 제르맹은 앞으로 아무리 더 노력하더라도 육각형 인재가 되긴 힘들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르맹은 이제 기꺼이 춤을 춘다. 모자라고 부족한 모습으로도 얼마든지 삶의 지도를 새로이 그려나갈 수 있음을 비로소 깨달았기 때문이다.




인생을 선이 아니라 면으로,

길을 걷는게 아니라 지도 그리기에 빗대어 보는건 어떨까. 줄 맞춰서 순서대로 살아가기보다는, 매일매일 다른 모양으로 삶의 지도를 그려갈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게 삶의 지형을 넓혀가다보면 그 끝이 반듯한 육각형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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