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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바댁 린다 Jul 29. 2024

흐르는 강물처럼

올해 처음으로 시작한 것이 하나 있다.

에린이의 소개로, 나의 첫 작품인 [어쩌다 쿠바] 서평을 너무나도 정성스레 감동적으로 써 주시면서 SNS에서 인연을 맺게 된 혜진 님이 운영하는 온라인 독서모임인 문학살롱.

매 분기마다 혜진 님께서 심혈을 기울여 도서를 선정하는데 시작은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었다.


나는 일요일 오전 7시 반을 선택했고, 주말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역시나 인원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참 좋았다. 혜진 님의 발제에서부터 감탄사를 연발하게 하더니, 함께 하는 도반님들의 의견을 들을 때마다 어쩜 저리도 똑 소리 나게 자신들의 의견을 조리 있게 잘 표현하는지, 그저 듣기만 해도 나의 지적 수준이 높아질 것만 같아서 나도 모르게 겸손한 사람이 되어 버렸다. 많지 않은 인원이라 돌아가면서 혜진 님의 질문에 대해서 의견들을 나누는데, 그녀들 속에서 내가 가장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앞으로 이곳에서 내가 많이 성장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기쁨의 에너지로 흥분되기까지 했다.


데미안을 읽으며 알에서 깨어난 건지, 문학살롱을 통해서 알에서 깨어난 건지 모르겠지만 첫 분기를 마감할 때 각자의 소감을 얘기하는데, 갑자기 감정이 울컥 올라오면서 이 모임을 함께 하게 되어 너무 감사하다며 눈물을 쏟고야 말았다. 누가보아도 F라는 걸 또 들켜버렸다.


이번 분기의 책은 흐르는 강물처럼, 미비포유 그리고 양귀자님의 모순이었다.

별 기대 없이 읽은 흐르는 강물처럼.

이 책이 이리도 내 마음을 흔들 줄이야!


인스타에 올려놓은 리뷰를 가지고 와 보았다.






흐르는 강물처럼 이라는 유명한 영화와 동일한 내용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이 소설은 어릴 적 '토리'라고 불리던 한 여인이 끌림이 무엇인지 알려준 남자로 인해 더 이상 토리가 아닌 빅토리아로 살아가며 세상의 편견에 잔인하게 죽임을 당한 그녀 인생의 단 하나뿐인 남자를 통해 강인하게 살아가는 과정을 순수하고 서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지금과 달리 1940년대 미국은 여전히 인종차별이 심했으며, 유색인종은 표적이 되어 백인들에게 죽임을 당해도 누구 하나 입을 열지 않던 때라, 사랑하는 윌슨 문이 껍데기가 벗겨진 채 죽임을 당했어도 토리는 혼자서 슬픔을 삼켜야만 했다.


"무고한 소년을 포용하지 못할 만큼 이 세상이 잔인하다는 진실을.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가르지 못할 만큼 이 세상이 잔인하다는 진실을. 블랙 캐니언이 윌의 깊고 끔찍한 무덤이 되어버린 것은 그가 나를 사랑하기 위해 이 마을에 머물렀기 때문이라는 진실을."


인전 놈이라 불리며 동네 사람들의 사냥감이 되었던 인디언 원주민이었던 윌슨 문.


그는 토리에게 본질을 제외한 모든 것을 비운 삶이야말로 참된 삶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었고, 오로지 현재의 순간만을 두 손에 소중히 담고서 작은 것 하나하나에도 경탄하는 사람이었다.


그의 손이 닿으면 토리의 아픈 곳도 낫고, 죽어가는 강아지도 살리는 생명의 손을 가진 마법 같은 소년이었다.


그리고 그의 그런 생명력을 지닌 이 마법은 그의 죽임 후, 사람들의 눈을 피해 산에 숨어서 혼자 출산하고는 다른 사람에게 맡겨버린(버린) 그녀의 아들이 그대로 물려받았다.


"루카스의 손길에는 마법 같은 힘이 있었다. 전기나 열 같은 어떤 에너지가 흐르는 것인지, 아니면 마음씨가 비범할 정도로 따뜻해서인지 모르겠지만, 루카스의 손길이 특별하다는 건 내 공상이 아니었다. 루카스는 싱크배수구에 빠진 거미를 꺼내주었고, 창문 방충망 사이에 갇힌 벌을 살려주었다. 무엇보다 다가가지도 못할 만큼 난동을 부리는 맥스웰도 루카스라면 진정시킬 수 있었다. "


아.. 내 남편도 그러하다...

조단의 손에는 마치 생명력이 있는 것처럼 그 커다란 손으로 작디작은 죽어가는 식물을 여러 번 살려내었고, 쿠바에서는 죽을 뻔한 사람들도 살려내었으니.

생명의 손을 지닌 조단 푸엔테스.


까무잡잡한 것까지 닮아 후반부로 갈수록 감정이입이 되어 '흐르는 강물처럼'이 아닌 '흐르는 눈물처럼'이 되어 크리넥스를 몇 번을 뽑았는지 모른다.


빅토리아가 그동안 살아온 터전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옮기면서 복숭아나무도 함께 이식해서, 첫 두 해 동안 복숭아의 꽃봉오리를 잘라내면 나무의 에너지를 다시 뿌리로 내려보낼 수 있다는 교수님의 말에 눈물을 흘리며 꽃봉오리를 잘라내는 모습에서는 마치 나를 보는 것 같아 또 감정이입이 되어 버렸다.


스무 해가 넘게 아들을 가슴속에만 묻어두며 미안해하던 빅토리아가 아들을 사랑으로 키워 준 어머니 덕분에 사랑하는 그녀의 단 한 남자, 윌슨 문이 환생한 것 같은 아들 루카스를 만나러 걸어가며 소설은 막을 내린다.


소실이 끝나고 나는 감정을 추스르느라 그 자리에 한참을 가만히 앉아 있었다. 윌슨 문과 루카스와 닮은 조단 생각에 여러 가지 감정들이 교차하며 순수하고 자연 친하적인 이토록 아름다운 소설을 추천해 주신 문학살롱 혜진 님께 감사한 마음이 물씬 올라왔다.


"흐르는 강물처럼 살 거야. 우리 할아버지가 늘 그러셨거든. 방법은 그뿐이라고. "






조단이 쿠바에 간 지 두 달 남짓이 되었다.

한 달 반도 길다고 생각했는데, 오랜만에 방문한 쿠바에서 외할머니와 어머니가 그동안 겪으신 아픔과 고충을 보며 도저히 그냥 올 수 없다고 하면서 내년에 어머니가 은퇴하실 때까지만 있도록 해 달라며 사정을 하였다. 일 년이 넘는 시간이다. 아흔이 넘으신 외할머니는 이제 잘 걷지도 못하시고 앞도 잘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어머니가 일 하러 가시면 외할머니 혼자 집에 계시는데, 도둑이 들 뻔도 했고 불이 날 뻔도 했다며 어머니가 온전히 외할머니를 돌볼 수 있을 때까지만 자신이 돌보고 싶다고 했다.


지난번에도 외할머니 때문에 일 년 반을 넘게 떨어져 있었는데, 이번에도 같은 이유였다.

12남매의 첫째로 돌아가신 부모님을 대신해서 동생들을 다 키웠는데, 이번에 와보니 외할머니와 어머니가 힘들 때에도 누구 하나 도와주지 않았다는 것에 몹시 속상해했다. 그도 그럴 것이 조단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외할머니가 아니던가! 그런 외할머니가 거동이 불편하시고 힘든 모습을 보니 반사적으로 자신만 편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조단이 나를 사랑하지 않아서 그런 결정을 내린 게 아니라는 건 알지만 내년에 돌아가면 안 되냐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그동안 쌓아두었던 속상함이 화가 되어 올라옴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에게 말했다.


"당신은 결혼을 하지 말고 외할머니와 어머니랑 살든지, 성직자가 되어야 했어. 왜 결혼하자고 해서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는 거야? 내 남편이 이렇게 융통성이 없는 사람이라는 게 부끄러워."


그러면서 덧붙였다. 결혼을 후회한다고...


이런 말을 입에 올린 건 결혼하고 처음이었다.  


자본주의에 사는 나와 친구들은 차라리 조단이 한국에 와서 일하면서 돈 벌어서 그 돈으로 도와주는 게 훨씬 낫지 않냐는 의견이었는데, 조단은 돈을 주고 믿고 맡길 사람이 없다고 했다. 어떤 상황인지 이해가 되기도 하지만 넓고 멀리 보지 못하는 남편을 보며 속상한 마음에 남편을 더 힘들게 해 버렸다.


남편은 결정을 했고 혼자라도 잘 살아야지 하던 차에 흐르는 강물처럼을 읽었는데 융통성 없고, 답답하다고 생각했던 남편 생각이 나서 강물처럼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기가 힘들었다.


결국 죽임을 당할 것을 알면서 그녀를 떠나지 않고 현재만 보며 사랑하는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이자, 생명의 손을 지닌 윌슨 문이 왜 내 남편 같다는 생각이 자꾸만 드는지. 인디언이었던 윌슨 문, 원주민의 후예인 조단 푸엔테스는 피부색도 영혼도 많이 닮아 있었다.


이해해 주어야지.

지금 가장 힘든 사람은 남편일 텐데, 이제는 서로 속상할 말은 그만하고 힘내라고 응원해 주어야겠다.

힘들다고 말도 못 하고 항상 통화 마지막에 씨익 웃으며  '파이팅'이라고 하는 남편이 안쓰러웠는데, 이제는 나도 함께 '파이팅' 하며 힘을 보태주어야지.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마음이 아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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