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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다 Jul 24. 2024

내 낡은 자동차

수능을 마치고 졸업을 앞둔 시점의 고3들은 시간이 많이 남는다. 십여 년 전의 나 역시 수능을 보기 좋게 말아먹었지만 재수를 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고, 재수를 할 만큼 집안의 여력도 없어 점수에 맞춰 대학을 가기로 마음먹고는 편하게 탱자탱자 놀기 바빴다. 그때 몇몇 친구들은 운전면허 학원을 등록하고 운전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내가 면허를 딴다고 바로 운전할 수 있는 차가 주어질 리 없을 테니 지금 당장 면허를 따야겠다는 생각은 내 머릿속 단 한구석에도 없었다. 

하지만 대학생이 되고 나서 면허가 있는 친구들이 종종 차를 렌트해 운전을 하곤 했는데, 그 모습이 정말 멋져 보였다. 특히 여자친구들이 운전을 하는 모습은 나이가 차서 성인이라 불리는 것이 아니라 진짜 어엿한 어른처럼 보였다고 해야 하나. 그때야 비로소 졸업을 앞둔 그 많은 시간 동안 운전면허 하나 따놓지 않고 탱자탱자 논 것이 후회가 되었고, 그 해 여름방학이 되자마자 바로 운전학원을 등록했다.


면허는 따놨지만 운전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취업을 하고 6개월 정도가 지났을 무렵이었다. 동생의 대학교 근처에서 동생과 함께 살았는데 취업한 회사가 너무 멀어서 버스 환승시간까지 포함하면 출근길이 거의 한 시간이 넘게 걸렸었다. 매일 아침 만원 버스에 시달리며 새벽 일찍 하루를 시작하던 내게 아빠가 선물로 중고차를 한대 뽑아주셨던 것이 그 무렵이었다. 그 중고차는 출고된 지 10년 정도가 된 이미 낡아버린 경차였다. 아빠는 첫 차니까 중고차로 부담 없이 몰고 다니다가 운전이 익숙해지면 좋은 차로 다시 사라고 하셨는데, 그 낡은 경차가 12년이 지난 지금까지 나와 출퇴근을 함께하고 있을 줄이야.. 내 차는 자동차로서의 삶을 20년이 넘게 하고 있는 셈이다. 


직접 운전을 해서 차를 몰고 다니기 시작했을 때 내 나이는 25살이었다. 그때만 해도 내 또래 친구들 중 운전을 직접 하고 다니는 친구들이 몇 없었기 때문에 어디로 놀러 가거나 이동을 할 때면 내 차를 많이 이용했다. 초보운전자가 운전하면서 여행을 하려니 잔뜩 긴장한 탓에 몸은 힘들었지만, 우리끼리 음악을 틀어놓고 노래를 부르며 재잘재잘 떠들면서 가는 그 여행길이 마치 선물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런 선물 같은 시간을 내 운전과 내 자동차로 만들 수 있어서 더 행복했다. 중학교 친구들과 제주도를 갔을 때는 차를 렌트해서(역시 경차였다) 한라산 자락을 몇 번이나 오르락내리락하며 여행했고, 회사 친구들과 전주를 놀러 갈 때도, 선물꾸러미를 한가득 싣고 명절에 고향을 갈 때도 내가 내 차로 운전을 해서 갈 수 있다는 사실이 기쁘고 다행스러웠다. 퇴사 후 혼자 전국일주 여행을 계획할 때는 주변에서 그 낡은 자동차로 무슨 전국여행이냐며 말리는 사람들이 몇 있었지만, 최대한 자동차와 내가 무리하지 않는 루트와 주행시간을 계획해서 결국 나 홀로 전국 여행도 다녀왔다. 그때도 생각했던 것 같다. 만약 내가 운전을 할 수 없었다면, 낡았지만 내 차가 없었다면 이런 선물 같은 시간은 없었을 거라고. 


내 낡은 자동차는 선물 같은 시간뿐 아니라 내 슬픔과 분노의 시간도 고스란히 받아주었다. 하루종일 회사의 갑질에 시달리던 날, 찔끔찔끔 나오는 눈물을 꾹꾹 눌러 참으며 운전하던 퇴근길이 있었고, 가끔은 아무도 듣지 않는, 아니 듣지 않기를 바라서 차 안에서 창문을 꼭꼭 닫고 분노가 가득 담긴 오만가지 욕설로 고함을 치던 날도 있었다. 핸들을 손으로 퍽퍽 내려치고, 고개를 앞뒤로 흔들며 상스럽게 욕을 내뱉던 내 모습을 누가 봤다면 아마 소스라치게 놀랐을 것이다. 차 안이라 아무도 못 봤다는 것이 다행... 이 아닐 수도 있다. 내 차의 창문은 선팅이 아주아주 연하게 되어있다는 사실을.. 잊었네... 이런.


내 낡은 자동차로 함께 여행을 다니고 출퇴근을 했던 친구들은 30대 중반이 넘어가는 지금 다들 자신의 차를 가지고 있는 멋진 여성들이 되었다. 내 낡은 경차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좋은 차를 몰고 다니는 친구도 있고, 결혼을 해서 종종 남편의 차를 몰고 나오는 친구도 있다. 또 여전히 운전이 두렵거나 혹은 다양한 이유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친구들도 물론 있고. 친구들은 이제 내 차를 보면서 ‘아직도 끌고 다니는구나’ 하며 내 차와 함께였던 옛날 추억을 꺼내보기도 하고, ‘차가 낡아서 이젠 위험할 수도 있으니 그만 보내줘라’ 하며 걱정이 섞인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사실 나는 자동차뿐만 아니라 모든 물건을 오래 쓴다. 특히 자동차를 비롯한 컴퓨터, 핸드폰 등 첨단기술이 집약된 물건일수록 더 오래 쓴다. 물론 대체로 그런 물건들이 비싸기도 해서 쉽게 교체하기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내 손에 익숙해져서 편해진 물건을 마치 괴롭히듯이 오래오래 사용하는 게 내 성격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렇게 불편함을 잘 참고, 익숙한 것을 잘 유지하는 성향 탓에 언제나 나는 ‘마지막으로 문을 닫고 나오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한다. 내가 그런 사람이라는 게 가끔은 외롭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그렇다고 썩 나쁘진 않은 것 같다. 무언가를 잘 갈고닦아서 후대에 물려주는 사람이 아닌 내 선에서 마무리하고 매듭짓는 사람. 아마 내 낡은 자동차에게도 다음 주인은 없을 것 같다.


내 낡은 자동차가 노쇠하다 보니 함께 먼 거리를 달리거나 여행하는 일은 이제 거의 없다. 요즘엔 심심치 않게 엔진경고등이 들어오면서 마른기침을 하듯 쿨럭쿨럭 거리기도 하는데, 카센터에서는 차가 낡아서 어쩔 수 없다며 고치는데 걸리는 비용과 시간이 자동차의 연식에 비하면 아까우니까 잘 달래 가며 타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자동차 전문가의 말이 그렇다니 어쩔 수 없지 싶어서 나름 잘 달래 가며 타고 있었는데, 엔진경고등이 들어오면서 쿨럭 하다가 서서히 차가 길 한가운데에 멈춰서는 일도 종종 생겼다. 이제 정말 차를 보내줘야 할 때가 다가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최근 다른 차를 알아보고 구매를 결정했다.

이제 정말 내 낡은 자동차와는 이별을 해야 한다.

그동안 생초보 운전자를 이만큼 키워줘서 너무 고마웠고, 서툰 운전실력 탓에 여기저기 박고 긁히게 만들어서 너무 미안했다고 매일 속으로 말해주고 있다(소리 내서 말하면 누군가 이상한 여자로 볼까 봐). 주차를 하고 돌아설 때도 괜히 한번 더 뒤돌아보게 되고, 또 아련하게 핸들을 한번 쓸어보기도 하는 요즘이다. 


아빠는 삼 남매가 어렸을 때 처음으로 새 차를 뽑은 적이 있었다. 그 당시 마초남의 상징과도 같았던 갤로퍼라는 차였는데, 아빠가 퇴근하면 삼 남매가 쪼르르 달려 나가 아빠의 새 차를 타고 동네 한 바퀴를 돌자며 조르곤 했다. 당시 제일 어렸던 막냇동생은 아빠가 퇴근하기 전부터 ‘갤로퐁갤로퐁!’ 하며 새 차와 함께하는 동네 한 바퀴 시간을 잠도 안 자고 기다렸다. 아까워서 비닐도 채 다 벗기지 못한 새 차에 삼 남매가 총총 올라타 아빠와 함께 동네를 드라이브했던 날들. 몇 년 뒤 사정이 생겨 갤로퍼를 팔아야 했던 날, 아빠는 그 추억들이 떠올라 차를 팔고 돌아 나오는 길에 눈물이 핑 돌았다는 얘기를 해준 적이 있다. 


이제 곧 사진으로만 기억될 나의 낡은 자동차에도 구석구석 추억과 기억들이 묻어있다. 차를 두고 돌아 나올 때 묻어있는 것들을 깨끗하게 담아와서 심심할 때 꺼내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궁리해보기도 하고, 자동차와 이별하는 날 아빠처럼 눈물이 핑 돌진 않을까 상상해보기도 한다. 그런데 또 막상 새로운 자동차가 생기면 언제 그랬냐는 듯 옛 차를 잊어버리게 될 수도 있겠지. 사람의 마음이란 게 이토록 깊고 무겁다가도 후- 부는 작은 입김에 날아가버릴 정도로 가볍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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