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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혜린 Aug 29. 2024

장편 소설 <아무는 개>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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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이 보이지 않자 두려움이 더 커졌다. 검은 안대가 눈을 점점 눌러서 없애 버릴 것 같았다. 안대는 제법 질긴 천으로 되어 있어 희미하게라도 보이는 것이 전혀 없었다. 뒤로 묶인 두 손이 불쾌했다.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죄인 취급을 받는 것 같았다. 여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이 왜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 건지.


  아침에 국밥 한 그릇을 비우자마자 박 형사는 민형을 묶었다. 그리고 안대를 씌웠다. 너무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라 민형은 박 형사의 표정을 보지 못했다. 목소리만 들을 수 있었다. 

  - 대체 내가 뭘 하는 건지 모르겠어. 이 사람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끌고 가야 하는 거지?
  - 뭐, 일단 일을 시켜 준다잖아요. 염전 같은 곳만 아니면 되죠.

  이런 말들을 들으면서 민형은 김 형사의 부축을 받으며 트럭에 탔다. 염전이라는 말만 들어도 무서웠다. 그 뒤로는 박 형사와 김 형사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천막을 친 트럭 안에는 민형 외에도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았다. 아이의 울음소리, 여자가 아이를 달래는 소리, 남자가 욕하는 소리, 할머니가 경전을 읊는 소리 들이 들렸다. 민형은 입을 다물었다.

  욕하던 남자가 민형에게 물었다. 

  “당신도 아무개요?”
   아무개라는 말에 민형은 눈을 번쩍 떴다. 안대를 썼기 때문에 눈을 뜨나 안 뜨나 똑같았다. 안대 속에서 민형의 눈이 커졌다. 그에 비례해 목소리도 커졌다.

  “네, 맞습니다. 당신들도……?”

  “그렇소.”

  “대체 어디로 가는 걸까요?”
   “나라를 위해 중요한 일을 한다고 하는데 그 말을 어떻게 믿어? 이대로 외진 곳에 끌고 들어가 생매장해도 아무도 모를 것 같은데. 우리 같은 사람들 목숨 따위 아까워하지 않겠지.”

  “재수 없는 소리 좀 하지 말아요. 여태까지 어떻게 버텼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수는 없어!”

  “굴은, 굴은 어떻게 됩니까?”


   자기들끼리 떠들던 사람들은 민형의 말에 소리를 내지 않았다. 처음에 민형에게 질문했던 남자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폐쇄된다더군. 블랙 헤일로 막아 버린다는 거야.”

  “제길, 그러니 안 나오고 배겨? 팔자 한번 마지막으로 고쳐 보려고 했더니만 이렇게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 팔려 가는 신세가 되다니…….”

  “진짜로 일 시키고 돈이라도 주면 다행이지. 그냥 우리가 꼴 보기 싫어서 눈앞에서 치워 버리려는 것 같은데.”

  “굴 안에서 조용히 눈에 안 띄고 살겠다는데 그것도 못 봐주겠다는 거야?”

  “다들 블랙 헤일 때문에 미쳐 가는 거지. 화풀이할 대상이 필요한 거 아닌가?”

  “헛고생했어, 헛고생.”

  “그냥 블랙 헤일 맞고 뒈져 버릴까 보다.”

  “쉿! 애도 있는데 말조심하라고.”


   그 순간 트럭이 위로 덜컹, 솟았다가 내려왔다.

  “어이쿠!”

  다들 손이 뒤로 묶여 있어 중심을 제대로 잡지 못했다. 옆이나 앞으로 쓰러지면서 서로 엉켰다. 앞이 안 보이고 묶여 있어 부딪힌 곳을 보지도, 만지지도 못했다.

  “아니, 운전 좀 살살 하지! 사람이 아니라 물건 태우고 간다고 생각해서 저렇게 운전 험하게 하는 건가?”

  여자의 목소리가 화를 냈다. 

  “엄마, 엉덩이 아파.”

  “어이구, 우리 애기. 아픈 데가 어디야? 엄마가 문질러 줄게.”


  민형은 옆으로 쓰러진 채 유우와 아이를 생각했다. 일어날 힘도 없었다. 헤어지는 게 아니었다. 눈이 가려지고 묶인 상태에서라도 함께 있었어야 했다. 민형은 고개를 흔들었다. 아직 호적에 올리지도 못한 아이를 그렇게 살게 할 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돌아가야 했다. 그때까지 유우와 아이가 버텨 줘야 했다.      


  트럭은 한동안 매끄러운 길을 달리더니 몇 시간 뒤에는 울퉁불퉁한 길로 들어섰다. 지금이 낮인지 밤인지도 알 수 없었다. 차가 덜컹거려서 엉덩이가 튀었다가 내려앉는 바람에 얼얼했다. 지금 놀이동산에서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아침에 출발했으니 아직 해가 저물지는 않았을 터였다.

  차가 지나가는 소리와 바람 소리만 들렸었는데 점차 새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새소리가 오히려 공포스러웠다. 도시에서도 새소리를 들을 수 있었지만 떼로 들리는 소리는 처음이었다. 한두 마리가 지저귀는 게 아니었다. 지지배배, 처럼 경쾌한 게 아니라 소꾹소꾹, 처럼 낮은 소리였다. 마치 여기에 오지 말라고 경고하는 것 같았다. 찜찜했다. 


  “이, 이거, 산속으로 들어가는 거 아니야?”
   “설마…… 진짜로 그냥 땅에 파묻어 버리는 건 아니겠지?”

  코로 들어오는 공기도 지나치게 상쾌했다. 공기의 질이 다른 것으로 보아 강원도 같았다. 그 뒤로도 한참 달리던 트럭이 드디어 멈췄다. 먼지가 날렸다. 먼지마저 깨끗했다.

  먼지 섞인 공기를 들이마신 남자가 외쳤다. 

  “흙? 운동장 같은데?”

  “그럼 학교인가?”
   “조용히 하고 한 명씩 내려!”

  처음 듣는 날카로운 목소리가 말했다. 트럭을 운전했던 사람인 것 같았다. 


  가장 바깥쪽에 앉았던 남자가 엉덩이 힘으로 일어섰다. 두 손이 묶여 있어서 내리는 게 쉽지 않았다. 풀쩍 뛰어내리던 남자가 바닥을 굴렀다. 남자가 신음했다.

  날카로운 남자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트럭 안으로 들어갔다. 가장 먼저 아이를 안고 내렸다. 그다음에는 한 명씩 부축해서 트럭 바깥쪽까지 데리고 나갔다. 날카로운 남자가 먼저 트럭에서 뛰어내린 뒤 아무개들을 아래에서 받아 주었다. 민형도 선뜻 도움을 받았다. 유우를 만나기 전까지는 털끝 하나도 다치고 싶지 않았다. 


  트럭에서 내린 아무개들은 일렬로 섰다. 아무개들의 몸이 걷잡을 수 없이 떨리기 시작했다. 이대로 한 명씩 쏴 죽인다고 해도 저항 한번 못 할 것 같았다.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곧 뒤에서 경찰차가 연달아 들어오는 소리가 났다. 날카로운 남자가 아무개들의 눈을 가리고 있던 안대를 하나씩 풀어 주었다. 안대가 풀리자마자 아무개들은 날카로운 남자를 가장 먼저 보았다. 남자의 옷차림은 평범했다. 겉모습으로만 봐서는 경찰인지 민간인인지 구분조차 되지 않았다. 사복 경찰인가 싶기도 했다. 군복만 안 입은 조교일지도 몰랐다. 경찰차에서 내리는 경찰들은 제복을 입고 있었다. 


  아무개들의 시선이 눈앞에 있는 건물로 향했다. 생기 없는 학교의 모습이었다. 주변에 나무들도 없고 화단도 시들어 있었다. 굳게 닫혀 있는 창문들도 어두워 보였다. 금방이라도 귀신이 나올 것 같았다. 온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거미줄이 잔뜩 있을 것 같았다. 폐교였다. 새똥이 잔뜩 묻어 있는 동상도 괴기스러웠다.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폐가는 공포 체험 때문에 곳곳에 귀신이나 놀라게 하는 장치들을 해도 무섭다기보다는 게임 같았는데, 눈앞에 있는 곳은 안에 들어가지 않았는데도 벌써부터 목덜미를 서늘하게 했다. 들어가자마자 시체를 마주쳐도 놀라지 않을 것 같았다. 진짜 폐가와 세트장의 차이점이었다.


  “한 줄로 서서 1층까지 가도록.”


  날카로운 남자의 말에 따라 아무개들은 떨리는 몸을 바로잡았다. 폐가를 보느라 흐트러졌던 줄이 바로잡혔다. 숨소리도 제대로 나지 않았다. 바람 빠진 풍선처럼 거친 숨소리들이 들렸다. 폐교 안에 무엇이 있을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폐교로 가는 걸음이 느렸다. 날카로운 남자는 재촉하지 않았다. 짐을 진 개미들은 어차피 느리더라도 개미굴로 들어가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처럼 무심한 표정이었다. 


  민형은 날카로운 남자를 한 번 본 뒤 앞만 보고 걸었다. 그 뒤에 서 있는 경찰들도 보았다. 박 형사는 보이지 않았다. 무엇이 나타나더라도 놀라지 않으리라. 하지만 무조건 무사해야 했다. 그 누구보다 빨리 적응한 뒤 이곳에서 탈출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여기는 오래 있을 곳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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