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혜린 Sep 03. 2024

장편 소설 <아무는 개> (20)

4 (1)

4 (1)






  시내버스에서 내린 여자가 버스 정류장에 가만히 서 있었다. 그러다가 바깥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차분한 걸음이었다. 머리에 헬멧을 쓰고 있지 않았다. 하늘에서는 블랙 헤일이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조심해요!”

  “뭐 하는 거예요! 빨리 정류장 안으로 들어와요!”


  정류장 안에서도 가방이나 책으로 머리를 가리고 있던 사람들이 외쳤다. 헬멧을 쓴 사람은 거의 없었다. 여자는 그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여자와 가장 가까이 있던 다른 여자가 여자의 팔을 잡았다. 검은색 캡 모자를 쓴 여자였다. 여자가 그 팔을 뿌리쳤다. 캡 모자는 내팽개쳐진 팔을 다른 손으로 붙잡고 입을 벌린 채 서 있었다. 곧 멍한 표정을 지은 채 말했다. 


  “요새 복권 때문에 일부러 맞으려는 사람들도 있다던데 그 부류인가?”

  “……자살하려는 거야.”


  정류장 안에 있던 남자가 중얼거렸다. 그 남자는 그곳에 있는 사람 중에서 유일하게 헬멧을 쓰고 있었다. 내심 그 남자가 여자를 붙잡아 주길 바라며 다른 사람들이 남자를 쳐다보았다.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머리 외의 다른 신체에도 블랙 헤일이 닿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것이 아무리 죽음과 먼 상처라고 할지라도. 


  그 옆에 있던 또 다른 여자가 휴대폰으로 119를 불렀다. 그 신고는 한참 늦었다. 여자의 머리와 어깨에 블랙 헤일이 떨어졌다. 블랙 헤일의 날카로운 모서리가 여자의 정수리를 찍었다. 다른 모서리들은 여자의 얼굴과 팔과 다리에 상처를 냈다. 여자가 쓰러졌다. 쓰러진 여자 위로 블랙 헤일이 계속 떨어졌다. 그중에서 유독 큰 블랙 헤일이 여자의 등을 때렸다. 퍽, 소리와 함께 여자의 몸이 위로 튕겼다가 다시 바닥에 떨어졌다. 


  “꺄악!”

  “아저씨, 가서 구해 줘요!”

  “나도 무서워. 여기에서 한 발만 더 나가면 나도 맞을 텐데, 스스로 죽겠다는 사람을 어떻게 말려?” 

  “그래도 아저씨는 헬멧을 쓰고 있잖아요!”

  “아, 하필 헬멧 수리 맡긴 날 이게 뭐람! 우박이 하도 세니 헬멧도 남아나질 않네. 헬멧 잔뜩 쟁여 놓고 쓰고 싶다. 오늘 블랙 헤일 내린다는 말 있었어?”

  “언제 예고대로 블랙 헤일이 내린 적이나 있었어?”

  “아저씨, 그 헬멧 좀 잠깐 빌려줘요!”


  캡 모자가 헬멧을 쓴 남자에게 말했다. 남자는 자신에게 시선이 모인 게 부담스러웠는지 이번에는 순순히 헬멧을 벗어서 주었다. 캡 모자는 자신의 모자를 벗어 바닥에 던지고 남자의 헬멧을 썼다. 남자의 헬멧을 쓴 여자가 쓰러진 여자에게 다가갔다. 쓰러진 여자의 어깨와 등에 블랙 헤일이 떨어졌다. 헬멧도 이를 악물었다. 쓰러진 여자의 겨드랑이를 받친 뒤 상체를 들어 여자를 정류장 안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여자의 다리가 바닥에 질질 끌렸다. 여자의 다리와 배에도 블랙 헤일이 떨어졌다.


  헬멧은 쓰러진 여자를 정류장으로 끌고 들어오면서 여자의 몸이 점점 무거워진다고 생각했다. 틀렸다, 늦었다는 생각에 눈을 감고 싶었다. 시체에 멍이 몇 개 더 드는 차이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래도 기어이 정류장 안으로 여자의 무거운 다리까지 끌고 들어왔다. 그 뒤에 헬멧을 벗어서 남자에게 주었다. 119에 신고한 여자가 캡 모자를 들고 있었다. 여자는 감사 인사를 하고 캡 모자를 받아 다시 썼다. 남자는 캡 모자와 시선을 맞추지 못하고 헬멧을 재빨리 썼다. 신고를 받은 소방대원들이 도착했다. 그들은 쓰러진 여자를 보자마자 고개를 저었다. 


  블랙 헤일을 이용한 자살 방식은 너무나도 간단해서 마음만 먹으면 실행에 옮기기 쉬웠다. 자살인지, 사고인지 구분되지도 않았다. 헬멧을 쓰지 않고 집 밖으로, 세상 밖으로 한 발짝만 내디디면 되었다. 자살자들은 나날이 늘어났다. 맞으면 아플 것 같아 이렇게는 죽기 싫은 사람들 외에는 모두 이 방법을 쓰는 것 같았다. 쉽고도 편리했다. 죽을 때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도 않았다.


  정부에서는 헬멧을 보급하면 자살자들도 줄 거라 생각했다. 헬멧을 쓰고 나가지 않으면 자살 행위나 다름없다는 말도 했다. 유사 자살자라는 말이 퍼졌다. 헬멧을 쓰지 않은 사람들이 자살하려는 것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헬멧을 쓰지 않았다는 것 자체가 중요했다. 헬멧을 안 쓰는 것조차 죄가 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유희는 말없이 짜장면 가닥을 입안에 밀어 넣었다. 오랜만에 먹는 짜장면이었다. 마지막으로 짜장면을 먹은 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남 노인과 비슷해 보이는 얼굴의 가게 주인이 준 짜장면이었다. 블랙 헤일이 내리기 시작하자 가게 주인은 여분의 헬멧이 없으니 짜장면이나 먹으면서 블랙 헤일이 그치기를 기다리라고 했다. 기다리라는 말도 오랜만에 들어 보았다. 선희도 언젠가부터는 유희에게 자신을 기다리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유희는 멍한 표정으로 짜장면을 씹으면서 단무지를 집어 들었다. 곧 집은 단무지를 내려놓았다. 단무지 옆에 있던 양파 조각을 들어 짜장에 찍은 뒤 입에 넣었다. 양파의 알싸한 맛과 짜장의 짭조름한 맛이 입안에 퍼졌다. 비로소 정신이 들었다. 생양파를 먹은 것은 처음이었다. 어른이 된 것 같았다. 양파를 끝까지 씹으면서 아까 가게 주인과 나누었던 대화를 되새겨 보았다.  


  - 기성이? 일 그만둔 지 오래되었는데.

  - 네? 그런 말은 처음 듣는데요. 일 그만두고 어디로 갔는지는 모르세요? 어머니가 애타게 찾고 있어요.

  - 자기 아들인데도 어디 있는지 모른단 말이야? 사이가 안 좋아?

  - 네, 그게…… 사정이 좀 있어서…….

  - 거 혹시, 요즘 유행하는…….

  - 아니, 아니에요! 그냥 몸이 좀 편찮으셔서 그동안 연락을 못 했던 것뿐이에요.

  - 학생은 기성이 동생인가? 동생이 있다는 말은 못 들었는데.

  - 기성이 할머니랑 친해요. 

  - 뭐…… 어쨌든, 일 그만둔 뒤에 교통사고가 났다는 말은 들었어.

  - 교통사고요?

  - 심하게 다친 건 아닌데 당분간 병원에 있어야 하고 일도 못 할 것 같아 겸사겸사 그만둔다고 하더라고. 그러고 보니 병원도 못 물어봤네. 병문안이라도 가 보면 좋을 것을. 어느 병원에 있는지 알면 나한테도 알려 줘. 함께 일한 정이 있는데.


  유희는 가게 주인을 쳐다보았다. 가게 주인은 작은 텔레비전을 계속 보고 있었다. 요즘에는 팔지도 않을 것 같은 구형 텔레비전이었다. 텔레비전에서는 아무개를 수색해서 헬멧을 만드는 일을 시킨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민형이 아무개로 잡혀갔다는 말이 생각났다. 아마도 헬멧 일을 하게 될 것 같았다. 그 말을 어떻게 전해 줘야 할지 난감했다. 따지고 보면 자기 때문에 민형이 잡혀간 것이다. 아무개라는 존재만 안 퍼뜨렸어도 이렇게 일이 커지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짜장면이 더 이상 넘어가지 않았다.


  가게 안에는 여전히 손님이 없었다. 종일 이렇게 손님이 없을 것 같았다. 유희는 목이 메어 물을 마셨다. 물을 마시다가 사레가 들려 한동안 기침을 심하게 했다. 유희의 기침이 그치지 않자 가게 주인이 등을 세 번 두드려 주었다. 퍽. 퍽. 퍽. 약하지만 효과가 좋았다. 기침이 멈췄다.


  겨우 진정한 유희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주변에 있는 병원을 돌면서 기성을 찾아야 하나. 솔직히 귀찮았다. 남 노인을 위해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다. 짜장면 한 그릇 얻어먹은 것으로 일단 성의를 보인 값은 받았고, 그 후에 계속 기성을 찾을지 말지는 유희의 선택이었다. 양파와 콩과 돼지고기가 섞인 건더기까지 말끔하게 먹어 치웠다. 짜장면 한 그릇을 끝까지 다 먹은 건 처음이었다. 남기면 등까지 두드려 준 가게 주인에게 미안할 것 같았다. 배가 든든했다. 든든하다 못해 부풀어 오르는 것 같았다.


  “전 이만 가 볼게요.”

  유희는 문밖을 바라보았다. 블랙 헤일이 그쳤다. 도로 곳곳에 블랙 헤일들이 쌓여 있었다. 블랙 헤일이 내린 뒤로 유일하게 늘어난 일자리인 청소부들이 도로를 치울 것이다. 그 전에 나가고 싶었다.

  “그래, 기성이 찾으면 연락 좀 다오.”

  가게 주인이 그릇을 치우며 말했다.



이전 19화 장편 소설 <아무는 개> (19)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