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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혜린 Sep 03. 2024

장편 소설 <아무는 개>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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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것은 이벤트였습니다.”


  A 헬멧 회사의 임직원은 기자회견장에서 천연덕스럽게 이야기했다. 고개를 뻣뻣하게 든 자세는 이틀 전에 박 형사 앞에서 취했던 자세와 비슷했다.


  갑자기 늘어난 헬멧 판매량이 의심스러워 박 형사는 헬멧 회사가 일부러 헬멧의 양을 적게 푼 건 아닌지, 혹은 일부러 사재기해서 시중에 있는 헬멧의 가격을 높인 건 아닌지 조사했다. A사 임직원은 전날에도 모든 것은 블랙 헤일에 대한 공포를 없애기 위한 특별 이벤트로서 더욱 튼튼하고 안전한 재난용 헬멧을 제작했을 뿐이라고 대답했다. 확실한 물증은 없었기에 박 형사는 일단 직원을 돌려보냈다. 그 뒤에 바로 최근에 출시된 헬멧과 전에 출시된 헬멧의 안정성을 평가하기 위해 헬멧들을 구해 검사를 의뢰했다. 


  검사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기사가 터졌다. A사 임직원이 블랙 헤일의 원인을 아무개라고 한 유언비어를 최초로 SNS에 유포했다는 기사가 뜬 것이다. 출처가 대어 중의 대어라 기자들도 연관 기사를 쓰느라 바빴다. 단독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가장 먼저 기사를 쓴 기자는 평소에 연예인의 비리 사건을 발 빠르게 터트려 신뢰를 얻었던 기자였다. A사의 이름은 종일 포털 사이트와 SNS에 오르락내리락했다. A사에서는 처음에는 사실무근이라며 허위 사실 유포와 명예훼손죄로 고소한다고 했지만 A사 임직원이 직원들에게 글을 올리라고 지시했던 메신저 내용이 추가 기사로 터지면서 더 이상 반박하지 못했다.


  결국 A사에서 급하게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장에서 A사 임직원은 누가 봐도 대필인 듯한 형식적인 회견문을 읽은 뒤, 질의응답 시간에 당당한 표정과 태도로 말을 이었다. 

  “요새 오토바이 타는 사람들조차 헬멧을 제대로 안 쓰고 있지 않습니까? 게다가 하늘에서 뭐가 떨어질지 모르고 살고요. 대부분의 사고는 부주의에서 생겨납니다. 간판이나 공사 자재가 떨어져 다치는 사고도 의외로 많습니다. 치료 전에 예방이 중요하지요. 그래서 재난에 대비한 헬멧들을 제작한 겁니다.”


  “그렇다고만 보기에는 헬멧 판매량이 지나치게 급증했더군요. 혹시 일부러 SNS에 공포심을 조장하여 헬멧을 살 수밖에 없게 만든 거 아닙니까?”

  “그것 역시 이벤트였습니다. 새로운 홍보 방식인 셈이지요. 사회적인 기여도 했구요. 요새 사회적으로 아무개가 여러 문제를 일으킨다고 들었습니다. 어디에 숨어 사는지도 모르니, 이참에 세상 밖으로 나오고 좋지 않습니까? 덕분에 아무개들도 건강한 일을 하게 되었다고 들었는데 말입니다. 아무개에게 지원금 남발하면 세금 꼬박꼬박 내는 서민들이 피해 보죠. 사지 멀쩡한데 일을 해야죠, 일을.”

  “그래도, 엄연히 허위 사실 유포 아닙니까?”

  “아무개들은 블랙 헤일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영상에 찍힌 아무개도 블랙 헤일이 내리든 말든 통조림만 챙기고 있지 않았습니까?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지요. 범죄자가 죄를 두려워하는 거 보셨습니까?” 

  범죄자는 죄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 말을 하는 임직원의 태도는 당당했다. 기자들의 연이은 질문에 임직원은 긴장이 완전히 풀린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미소가 커질수록 고개의 각도도 더 커졌다.


  “그것이 인권 침해라는 생각은 안 해 보셨습니까?”

  “결과적으로 아무개들도 일자리를 얻고, 저희는 헬멧 팔아서 좋고, 국민들은 튼튼한 헬멧을 얻게 되었습니다. 모두에게 좋은 일입니다. 그리고, 인권 말씀하셨는데…… 그래 봤자 겨우 아무개 아닙니까?”

  그래 봤자, 라고 내뱉은 말과 달리 기자회견장은 소란스러웠다. 임직원은 그 말을 끝으로 기자회견장을 빠져나갔다. 그는 밖에 세워져 있는 차를 타고 편하게 이동했지만 박 형사는 그 뒤로도 오랜 시간 동안 진땀을 빼야 했다. 사람들이 기자회견장으로 몰려왔기 때문이었다.


  휴대폰으로 실시간 중계를 보고 있던 사람들은 더 자세한 사항을 듣기 위해 현장으로 달려왔다. 그중에는 눈에 익은 인권 운동가들도 있었다.

  “우리도 안으로 들여보내 줘요!”

  “지금 이 헬멧 튼튼한 거 맞아요? 사기 아닙니까?”

  “아무개들이 지금 어디에 있는 거죠?”

  “일자리라는 말도 거짓말 아닙니까? 어디에 가둬 두고 있는 거 아니에요?”


  모두가 하나같이 헬멧을 쓰고 있어 박 형사는 허리를 뒤로 젖힌 자세를 취했다. 단단한 헬멧에 부딪히면 다치는 쪽은 박 형사일 게 뻔했다. 이벤트는 무슨, 뭐 이런 지랄 같은 이벤트가 있어. 박 형사는 잇새로 새어 나오는 욕을 낮게 읊조렸다. 박 형사는 다른 경찰들과 함께 기자회견장으로 들어오려는 사람들을 막았다.   



   

  캡 모자를 깊게 눌러쓴 기성은 기자회견의 모든 장면을 서울역 안 로비에 설치된 텔레비전을 통해 보고 있었다. 기성의 오른쪽에는 검은색 캐리어가 놓여 있었다. 크기는 크지 않았다. 가벼운 삶을 정리하는 데에는 작은 캐리어로도 충분했다. 


  병원에서 퇴원하자마자 집이라고 부르기도 버거운 고시원에 돌아가 짐을 쌌다. 책상에 놓여 있던 영어 회화책과 만화책 몇 권, 방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봉에 걸어 둔 옷걸이에 있던 옷 몇 벌이 짐의 전부였다. 패딩이나 코트 같은 겨울옷 하나 없었다. 여름을 제외하고 내내 입고 다니는 회색 점퍼가 유일한 겉옷이었다. 중국집에서 일할 때 입었던 옷이었다. 상관없었다. 목적지가 될 나라에는 겨울이 없었다. 필리핀으로 갈 예정이었다. 보험금이 지급되자마자 비행기 티켓부터 끊었다. 비자를 계속 연장하면 1년 동안 있을 수 있었고, 오래 머무르려면 1년에 한 번씩 외국에 갔다 오면 되었다. 필리핀에 있는 동안 영어도 배울 생각이었다. 


  남은 삶에서는 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 보험금으로 받은 돈을 다 쓰고 나면 마지막으로 한국에 올 것이다. 그동안 남 노인이 죽었다면 무덤이든 납골당이든 찾아가 인사하고 스스로 생을 마감할 것이다. 그때까지 블랙 헤일이 내리고 있다면 생을 마감하는 방법은 너무 쉬웠다. 헬멧 따위 쓰지 않고 거리를 활보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인생에서 한 번이라도 돈을 마음대로 쓰고 살다가 죽고 싶었다. 


  “……그동안…… 가짜 효자 노릇 하느라 힘들었어.”

  기성은 중얼거렸다. 남 노인이 진작부터 귀찮아졌다는 말은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다. 특히 남 노인과 함께 사는 이들에게는 더더욱 하지 않았다. 자신의 속마음을 하늘, 그리고 신 외에는 아무도 알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남 노인의 거주인들은 일종의 보험이었다. 그들이 남 노인을 돌봐 줄 것이다. 가끔 굴에 갈 때마다 철가방에 몰래 탕수육과 짜장면과 짬뽕을 담아 갔다. 일종의 뇌물인 셈이었다.


  앞니도 없이 얼마 남지도 않은 이로 음식들을 먹겠다고, 질긴 탕수육을 어금니로만 오물거리던 남 노인의 얼굴만 생각하면 짜증이 치밀었다. 그런 늙은이 때문에 인생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그들에게 남 노인을 맡기고 떠나는 거라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편했다. 뒤처리가 귀찮긴 하겠지만 그들은 남 노인을 외면하진 않을 것이다. 그래 봤자 겨우 아무개였다. 기성은 임직원이 했던 말을 마음속으로 따라 해 보았다. 마음이 더 편해졌다. 


  얼마 전에 병원을 찾아왔던 유희를 떠올렸다. 당돌한 꼬마였다. 남 노인의 생일날 가져간 탕수육을 맛있게 먹던 유희의 작은 입이 기억났다. 남 노인과 같이 사는 선희의 배급자라던 유희가 자신을 찾아올 줄은 몰랐다. 일하는 중국집에도 자신이 있는 병원의 위치를 알려 주지 않았다. 호기심과 인정이 쓸데없이 많은 주인이 찾아오면 이것저것 캐물을 게 뻔했다. 괜히 변명하다가 헛소리할 수도 있으니 애초에 차단하는 게 좋았다. 


  죽지 않을 만큼만 오토바이를 거칠게 운전해서 승용차와 부딪힌 뒤 일부러 엎어졌다. 갈비뼈가 부러지는 고통은 상상을 초월했지만 필리핀에서의 나날들을 생각하며 참았다. 참기만 하면 갈비뼈는 저절로 붙을 터였다. 따로 조치를 취하지 않아도 되니 어떻게 보면 가장 간편했다. 늘 잠재적인 디스크 환자였기에 허리 통증은 언제나 있었다. 두통은 너무나 흔한 증상이었다. 병원에서 커튼을 친 채 주는 밥을 먹고 만화책과 잡지만 읽었다. 병원 밖에서보다 혈색이 좋아지고 살이 붙었다. 5년 넘게 굴에서 고생하는 것보다 이편이 훨씬 쉬웠다. 도박 같은 구제금만 믿을 수는 없었다. 그러다 쥐꼬리만 한 구제금을 받으면 허무해질 것이다. 보험 사기는 속이는 게 더 정교해야 하긴 하지만 자신에게는 더 적합했다. 효자에 성실하게 일하는 이미지는 남들을 속이는 데 가장 좋았다. 모든 게 완벽했다.


  그런데 유희는 기성의 비밀을 알고 있는 것처럼 행동했다. 심지어 알고 있지만 모른 척해 주겠다는 듯이 행동했다. 기성은 유희와의 마지막 대화를 떠올렸다. 


  - 저주? 복수? 어린 게…… 벌써부터 무서운 단어만 골라서 말하네.

  - 흔한 단어예요. 드라마에서도 많이 나오던데.

  - 이래서…… 텔레비전이 문제…….

  - 친언니도 안 하는 지겨운 잔소리나 훈계는 듣고 싶지 않구요. 아저씨는 저보다 인생 더 많이 사셨잖아요. 나이도 저보다 두 배는 넘게 많고. 그리고…….

  - 그리고……?

  - 얼굴에 그늘이 있어요. 어둠을 아는 눈빛이 보여요. 막 답 없는 꼰대 같지는 않아요.


  유희의 말에 기성은 놀라서 입을 벌렸다. 자신의 안에 고여 있었던 어둠이 언제 밖으로 새어 나가 들켰는지 알 수 없었다. 어둠이 빠져나갈까 봐 입을 다물었다. 보통 애가 아니네. 기성은 유희의 눈치를 살폈다. 

  투둑. 투두둑.

  블랙 헤일이 내리기 시작했다. 최근에 블랙 헤일은 더 많이, 더 자주, 더 오래 내렸다. 한번 내리기 시작하면 끝장을 보겠다는 듯이 세차게 쏟아졌다. 헬멧 없이는 거리를 마음대로 다닐 수도 없었다. 다음 주부터 보급형 헬멧이 지급된다고 하지만 기성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을 것이다. 


  기성은 블랙 헤일을 바라보며 말했다. 

  - 가까이에서…… 찾아.

  -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 저기, 창밖에……. 요새 자주 내리는 거 있잖아. 저게…… 의외로 좋아. 어차피 하늘에서 내리는 거니까…… 흔적도 잘 안 남고.

  - 뭐, 일리 있는 말이네요.

  - 정말 저주할 만한 사람이면…… 하늘이 대신 복수해 주는 거라고도…… 할 수 있지.

  - 올~ 완전 설득됨. 어디에서 배운 말이에요?

  - 만화책……. 너도 병원에 입원해 있어 봐. 할 일도 없으니…… 책이라도 읽게 된다니까. 만화책도…… 배울 거 엄청 많아.

  - 팔자 엄청 좋아 보여요.

  - 좋기는 무슨……. 앞으로 좋아져야지.


  - 아저씨 말대로라면 전 이미 방법을 준비한 셈이네요.

  유희가 주머니에서 블랙 헤일을 꺼냈다. 블랙 헤일을 꺼낼 때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유희는 하나 꺼낸 블랙 헤일을 기성에게 주며 말했다. 

  - 아저씨도 하나 가져요. 비상용으로.

  그 말을 남긴 뒤 유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병실을 나갔다. 기성도 손만 흔들면서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인사를 했다.      


  기성은 주머니에서 유희가 주었던 블랙 헤일을 꺼냈다. 주사위를 굴리듯 블랙 헤일을 손 안에서 이리저리 굴렸다. 날카로운 모서리가 손바닥을 송곳처럼 찔렀다. 그때마다 어깨를 조금씩 움찔거렸다. 수지침을 맞는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또는 지압을 하는 거라든가. 이곳에 대한 향수가 생길지는 모르겠지만 고국의 흙을 가져가고 싶은 것처럼 블랙 헤일 하나 가져가는 건 나쁘지 않았다.


  텔레비전에서 아무개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캐리어를 옆에 둔 채 기자회견을 보고 있던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아무개라는 말도 이젠 지겨웠다.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기성은 주먹을 쥔 채 일어섰다. 떠날 시간이었다. 공항철도를 타는 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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