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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혜린 Sep 03. 2024

장편 소설 <아무는 개>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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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강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분명 블랙 헤일 모양이었어야 할 복권이 구름 모양으로 뒤바뀌어 있었다. 6억 원이 순식간에 천 원으로 둔갑했다. 민자를 따라 명당자리에서 복권 두 장을 샀었다. 명당자리는 경마장 근처에 있었다. 그 자리에서 복권을 긁은 민자는 또 별 모양이 나와서 5천 원을 탔다. 요새 경마장에서도 매일 마이너스만 찍어서 민자도 안달이 나 있었다.


  조강은 그 자리에서 복권을 바로 긁지 않았다. 경건한 마음으로 해야 할 것 같았다. 민자와 헤어진 뒤 곧바로 경마장으로 갔다. 경마장에 자리를 잡았다. 다른 때와 달리 전략을 세우지 않고 눈을 감은 뒤 찍은 말에 배팅했다. 조강이 배팅한 말이 우승했다. 승률이 높지 않았던 말이었다. 지금이 긁을 때였다. 좋은 꿈을 꾸고 난 뒤 복권을 사는 것처럼 좋은 말을 택한 뒤 복권을 긁고 싶었다. 


  백 원짜리 동전을 꺼내 복권을 힘차게 긁었다. 첫 번째 복권은 구름 세 개였다. 복권을 다시 살 수 있는 돈이었다. 본전이었다. 첫 번째 복권을 주머니에 아무렇게나 집어넣은 뒤 두 번째 복권을 긁었다. 블랙 헤일이 나왔다. 그런데 그다음에도 블랙 헤일이었다. 손이 벌벌 떨렸다. 눈이 커졌다. 식은땀이 흘렀다. 마지막 그림을 최대한 천천히 긁었다. 검고 울퉁불퉁한 모양이 나왔다. 그게 먹구름은 아닐 터였다. 블랙 헤일 세 개를 본 조강의 입이 동굴처럼 벌어졌다. 믿을 수 없었다. 경마장에서도 오지 않았던 행운이 민자를 따라 산 복권에서 나올 줄은 몰랐다. 


  일단 다른 사람들이 눈치채지 않게 나가야 했다. 조강은 아픈 척 머리를 짚으면서 경마장을 나왔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택시를 잡고 바로 버스터미널로 가 서울로 올라왔다. 버스에서도 내내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끝내 눈물이 고일 정도였다.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동민이 있는 굴로 향했다. 가다가 유우를 만나 헬멧을 선심 쓰기도 하고 음식을 풍성하게 사기도 했다. 거기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굴에 가서는 동민을 따로 불러내서 당첨 복권을 몰래 보여 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굴에 가서 동민을 보았을 때 생각이 달라졌다. 굴에 있는 동안 햇빛을 제대로 못 봐 더 창백해지고 생기 없는 얼굴을 보자 저 사람과 남은 생을 같이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 끔찍해졌다. 그런 생각을 들키고 싶지 않아 입에서 나오는 대로 아무 말이나 지껄였다. 카미긴 얘기도 했다. 뜬구름 같은 말이었다. 동민에게 수면제를 주면서 그가 영원히 잠들어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소설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에 대해 좋게 써 달라고 했다. 그때 조강은 동민을 버릴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의 마음속에 자신이 좋은 이미지로 남기를 바랐다. 소설 속에서만이라도. 가짜로.


  미안한 마음이 들어 천 원짜리 당첨 복권이라도 선물로 남기고 가려고 했다. 그걸로 다시 복권을 산다면 행운이 전염될지도 몰랐다. 동민의 책들 중 가장 위에 있는 책에 복권을 끼워 넣었다. 복권을 넣기 전에 마지막으로 확인했었다. 둥그런 테두리가 분명 구름이었는데 그게 언제 울퉁불퉁한 모서리로 둔갑했는지 알 수 없었다. 아무리 굴이 어둡다고 해도 손전등까지 켜 놓은 곳에서 두 가지 모양을 구분하지 못했다는 게 말이 되지 않았다. 


  조강은 소리를 지르면서 굴로 향했다. 동민이 아직 복권을 발견하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책을 뒤지는 척하면서 다시 가져오면 아무 문제 없을 것이다. 원점으로 돌아갈 것이다. 소리를 지르면서 뛰어가면 굴을 들킬 염려가 있었지만 그런 건 신경도 쓰이지 않았다. 6억이 그대로 남아 있느냐, 동민과 사이좋게 나눠 갖느냐, 한 푼도 못 가지느냐가 달려 있었다. 한여름도 아닌데 등이 땀으로 흥건했다. 속은 더 긴장해서 금방이라도 토할 것 같았다.      


  조강은 마라톤이라도 하는 것처럼 쉬지 않고 달려 굴에 도착했다. 이상하게 입구에서부터 굴이 조용했다. 해가 중천에 떴는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굴 안에 들어갔다. 모두 잠들어 있었다. 신기하게 와인 향이 났다. 선희를 제외하고는 평소에 늦잠 자던 사람들이 아닌데 이상했다. 게다가 아무리 둘러봐도 동민이 보이지 않았다. 불길해졌다. 손이 떨리고 눈앞이 아찔했다. 머리가 핑 돌았다. 


  “……동민 씨?”


  조강은 조심스럽게 동민을 불렀다. 아무 대답이 없었다. 아무도 깨어나지 않았다. 그 아무 중에 동민은 없었다. 유우 2세도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책더미 쪽에 다가갔다. 동민의 분신 같은 책들은 모조리 편안하게 잠들어 있었다. 맨 위에 있는 책을 들었다. 책을 넘겨 보았다. 그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표지로 보나 두께로 보나 조강이 복권을 끼워 두었던 책이 분명했다. <페스트>였다. 신경질적으로 책의 페이지를 몇 번이나 넘겨 보았다. 세 가지 가정 중 가장 최악의 가정이 맞아떨어졌다. 동민은 6억을 들고 달아나 버렸다. 들고 있던 책이 바닥에 떨어졌다. 꽤 큰 소리가 났는데도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다. 유우 2세만 잠깐 몸을 움찔할 뿐이었다. 


  툭, 툭, 툭.


  책이 떨어지는 소리와 비슷한 소리가 굴 밖에서 났다. 조강은 고개를 천천히 옆으로 돌렸다. 기름칠을 하지 않은 기계처럼 삐그덕, 소리가 날 것 같았다. 블랙 헤일이 내리고 있었다. 복권에 그려져 있던 블랙 헤일이 생각났다.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의 것이었다. 노력이든 운이든 다른 사람에게 기대지 않고, 빚지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얻은 거였다. 그것을 동민에게 빼앗겨 버렸다. 동민은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실종될 것이다. 자신을 찾지 못하도록 영원히 숨어 버릴 것이다. 어디인지 알 수 없는 굴에서. 살면서 그를 다시, 우연히 만나게 될 확률이 얼마나 될지 알 수 없었다. 작정하고 숨는다면 다시 복권에 당첨되는 것만큼이나 불가능할 일일지도 몰랐다. 


  조강은 굴에 왔을 때처럼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굴 밖에 나갔다. 눈앞에서 떨어지고 있는 블랙 헤일은 위협적이었다. 복권에 당첨된 뒤 충동적으로 샀던 붉은 헬멧도 오늘은 없었다. 두 번의 행운은 없을 것이다. 블랙 헤일을 제대로 맞은 뒤 다시 한번 당첨된 천 원으로 헤일 복권을 산다면 모를까. 그것도 이제 소용없는 일 같았다.


  툭, 툭, 툭.


  조강은 한 걸음 내디뎠다. 주먹만 한 블랙 헤일 하나가 조강의 왼쪽 어깨에 떨어졌다. 몸이 왼쪽으로 기울어졌다. 용케 쓰러지지는 않았다. 다시 한 걸음 내디뎠다. 주먹보다 더 큰 블랙 헤일이 양쪽 어깨에 동시에 떨어졌다. 조강이 주저앉았다. 어깨에 금방이라도 멍이 들 것 같았다. 몸을 약간 숙이자 등에도 블랙 헤일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뼈를 부술 것 같았다. 투둑. 투둑. 떨어지는 소리인지, 부서지는 소리인지 알 수 없었다. 


  그때 누군가가 조강의 허리를 잡았다. 조강은 뒤를 돌아보았다. 남 노인이 조강을 붙잡고 굴 안으로 끌어들이려고 하고 있었다.


  조강은 고개를 돌리며 소리를 질렀다. 

  “이거 놓으세요!”

  “남자 하나 도망갔다고 목숨을 버리려는 거야? 아서. 남편 하나 없어진다고 해서 세상이 망하지는 않아!”

  “제가 지금 그깟 남자 때문에 이러는 줄 아세요? 그보다 더 중요한…….”

  “……중요한?”

  “그런 게 있어요. 회복하지 못할 치명적인 실수를 했다구요. 돌이킬 수 없어요. 모든 게 다 끝났어요!”

  “끝났다는 걸 사람이 함부로 정할 수는 없어. 동민 군, 나갈 때 표정은 못 봤지만 뭔가 망설이는 것 같았어. 죄스러워하는 것 같기도 하고…….”


  동민이 나갔을 때 유이 2세 외에 남 노인도 깨어 있었다. 남 노인은 와인의 맛을 잘 몰랐기 때문에 마시지 않고 구석에 놓아두었었다. 그 와인은 선희가 모두 마셔 버렸다. 덕분에 남 노인은 동민이 나갈 때 깨어 있었지만 깬 척을 하지 않았다. 어차피 나갈 사람이라면 늙은이 한 명이 붙잡는다고 해서 안 나갈 리 없었다. 그제야 남 노인은 확신했다. 기성 역시 영영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남 노인의 감은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어요. 어디로 갔는지 찾지 못할 거예요. 꽁꽁 숨어 버렸겠죠. 내가 자기를 찾지 못하도록.”

  조강은 남 노인을 뿌리쳤다. 거센 힘에 남 노인이 엉덩방아를 찧었다. 뒤로 넘어지면서 남 노인의 머리가 굴 바닥에 부딪혔다. 남 노인의 머리에서 피가 새어 나왔다. 남 노인은 눈을 뜨지 않았다. 입을 약간 벌린 채 눈을 감고 있었다. 피를 본 본 조강은 두려움에 떨며 뒷걸음질 쳤다. 계속 뒷걸음질 치다 보니 잡초가 우거진 쪽으로 들어서게 되었다. 허리께까지 자란 잡초들이 조강의 몸을 스치면서 춤을 추었다.


  그때, 멜론 크기만 한 블랙 헤일이 조강의 정수리에 떨어졌다. 

  “아악!”

  비명을 지른 조강은 잡초 사이로 엎어졌다. 엎어진 조강의 몸 위에 기다렸다는 듯이 블랙 헤일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여기가 내 무덤이구나. 돌무덤이라면 누군가가 돌봐 줄 필요가 없겠어.’

  조강은 머릿속으로 생각했다. 그 생각은 곧 블랙 헤일이 머리를 때리는 바람에 사라졌다. 다음 생에는 경마장의 말로 태어나고 싶다. 시키는 대로 훈련하고, 주는 대로 먹고, 경기에서는 앞뒤 안 보고 최선을 다해 뛰다 늙으면 은퇴해서 편하게 지내다가 가고 싶다. 매일, 매 순간 버텨 내고 견뎌 내고 애쓰면서 살고 싶지 않다. 애써 온 행운도 허무하게 놓치고 싶지 않다.


  내 행운도, 생도 끝났다.

  조강의 의식이 점점 꺼져 갔다. 머릿속도 암흑이 되었다. 더 이상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복권 생각도, 카미긴 생각도, 동민의 생각도 사라져 버렸다.


  블랙 헤일, 블랙 아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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