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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혜린 Sep 03. 2024

장편 소설 <아무는 개> (30)

에필로그

에필로그






 “굴에 사는 개, 아무개

  굴은 넓지도 깊지도 않아

  개는 귀엽지도 무섭지도 않지

  아무개는 개도 아니고 사람도 아니야.”     



  “유이야, 그 노래 좀 그만 부를 수 없겠니? 들을 때마다 머리가 아프려고 해.”

  “없는 사실을 지어낸 것도 아닌데 뭐 어때? 그런 걸 기억해야 더 오래 잘 살 수 있는 거여.”

  “유이는 너무 어려서 기억 못 할 거예요.”

  “사실은 기억 못 해도 느낌은 기억할 수 있어.”


  나는 마루에 앉아 두 다리를 까닥거렸다. 내 옆에서 엄마와 남 할머니는 서류 봉투를 붙이며 티격태격했다. 아빠도 그 옆에서 열심히 풀칠하고 있었다. 풀이 고르게 칠해지지 않는지 미간을 찌푸리고 입술을 동그랗게 모으고 있었다. 아빠의 표정이 제일 웃겼다.


  결국 아빠는 서류 봉투를 집어 던지며 말했다.

  “아니, 이거 진짜 잘 안 되네. 아무래도 풀칠은 적성에 잘 안 맞는 것 같아.”

  “풀칠이 적성에 맞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냥 하는 거지.”

  “그래도 이렇게 같이 하니 좋네요. 하다 보면 요령이 늘겠죠. 붙여야 할 서류 봉투가 줄어드는 것에 위안을 삼아야겠어요.”

  “맞아. 그런 희망이라도 있어야지.”

  “너도 심심하면 와서 거들어.”


  남 노인에게는 살갑게 말하면서, 마지막에 나더러 거들라고 한 엄마의 말에 나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다리를 계속 까닥거리면서 하늘을 보았다. 맑았다. 오늘은 블랙 헤일이 내리지 않을 것 같았다. 블랙 헤일이 멈추지 않았는데도 나는 하늘을 보는 게 무섭지 않았다. 하늘에 오랫동안 시선을 두었다가 마루의 구석에 나란히 놓인 헬멧들을 보았다. 붉은 헬멧 하나와 신문지 헬멧 세 개. 붉은 헬멧은 죽은 조강 이모가 사 줬다고 했다.


  오늘은 조강 이모의 기일이다. 우리가 굴에서 해방된 날이기도 했다. 굴은 블랙 헤일과 시멘트로 막혀 버려 내가 태어난 고향이고 뭐고 다 사라져 버렸지만. 해방이라고 하면 더 좋은 상태로 가야 하지만 지금도 그다지 좋다고도 할 수 없다. 그래도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다. 나도 그럭저럭 자라났다. 귀엽지도 않고, 무섭지도 않은 모습으로 자랐다.


  최초로 본 아빠의 눈빛을 기억한다. 굴 밖을 나가던 엄마의 눈빛도 기억한다. 이 기억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그때 나이가 너무 어려서 확인할 수 없지만 어느 쪽이든 괜찮다. 굴 밖에서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블랙 헤일은 여전히 내리지만 이제 그 블랙 헤일이 아무개 때문이라는 말은 아무도 하지 않는다. 덕분에 더 가벼운 마음으로 헬멧을 쓰고 다닐 수 있게 되었다.


  아무개들이 헬멧을 만들던 폐교는 국민들의 청원으로 정식 공장으로 바뀌어 월급을 받으면서 일할 수 있게 되었다. 엄마는 그 공장에 나가기 시작했다. 엄마가 딱 한 번, 헬멧 공장에서 일할 생각이 없는지 물었을 때 아빠는 고개를 저었다. 좀 더 부드러운 것을 만들고 싶다는 이유였다.


  아빠는 대신 식당에 나가기 시작했다. 퇴근한 뒤에는 저녁때마다 부드러운 수프를 만들어 주었다. 옥수수 수프와 감자 수프와 돼지고기 수프와 호박 수프를 먹을 때마다 마음이 포근해졌다. 재료비가 많이 안 드는 음식이기도 했지만 남 노인을 배려한 메뉴였을 것이다. 이렇게 열심히 만들다 보면 언젠가 아빠는 수프 전문 요리사가 될지도 모른다. 아빠가 어느새 서류 봉투를 밀어 두고 마늘을 까고 있으니 저녁 메뉴는 마늘 수프가 될 수도 있겠다. 알싸한 마늘의 맛을 느끼면 굴에서의 생활이 조금이나마 더 기억날까?


  이제는 어떻게 살고 있는지 모를 동민 삼촌과 선희 이모와 유희 이모가 보고 싶었다. 굴에서 함께 살았던 가족이라는데, 기억나지 않아서 얼굴을 딱 한 번만이라도 보고 싶었다. 사진 하나 없으니 길에서 마주쳐도 모르고 지나갈 것이다. 유일하게 아는 얼굴은 기성 아저씨뿐이었다. 모두 일부러 기성 아저씨의 얘기는 하지 않았다. 필리핀에서 교통사고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기성 아저씨는 남 할머니에게 유골함과 이천만 원의 재산을 주고 가 버렸다. 필리핀에 간 지 한 달도 안 되어서 일어난 사고였다. 기성 아저씨는 역시 살아서나 죽어서나 진정한 효자였다.


  영정 사진 속에 있는 기성 아저씨는 순해 보였다. 눈꼬리가 아래로 내려가 있는 눈으로 입을 크게 벌린 채 웃고 있었다. 기성 아저씨가 남긴 돈으로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살 수 있게 되었다. 엄마의 엄마, 그러니까 외할머니가 살던 집이었다.


  엄마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선희는 잘 있겠지? 참 곱고 밝은 사람이었는데.”

  “동민 삼촌도 잘 있겠지요?”

  “지 아내 버리고 내뺀 놈을 왜 찾아?”
   “조강 씨가 죽은 건 알고 있는지나 모르겠어요.”

  “서류라도 한번 떼 보면 알겠지. 그런데도 찾지 않는 걸 보면 참으로 독해.”

  “저희 몰래 찾아갔을 수도 있지요.”

  “사람에게 괜한 기대 하지 마. 그만큼 인간 전체에 대해 실망하기 쉬우니까.”

  남 할머니의 일침에 엄마가 입을 다물었다. 다들 묵묵히 서류 봉투만 붙였다.    

 

  유우는 남 노인을 구하기 위해 급하게 나가느라 선희에게 마지막 인사도 하지 못했던 걸 두고두고 아쉬워했다. 뛰어가서 가장 먼저 보이는 편의점으로 들어간 유우는 편의점 직원의 휴대폰을 빌려 119에 신고했다. 굴의 위치를 설명할 때 처음에는 말문이 막혔다. 그곳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굴에 사는 동안 굴의 위치에 대해 알려 줄 일이 없었다. 배급자들 외에 오는 사람이 없으니 말이다. 근처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났던 폐터널이라고 하면서 위치를 겨우 설명한 유우는 재빨리 굴로 되돌아갔다. 혹시 119 대원들이 굴을 못 찾을 수도 있기에 잡초밭이 시작되는 초입에서 고개를 빼고 기다렸다. 119 대원들이 도착한 뒤 소방차는 들어갈 수 없어 입구에 섰다.     


  119 대원들과 함께 굴로 돌아간 유우는 반가운 얼굴을 보았다. 그토록 그리워하던 민형이 유우 2세를 안고 서 있었다. 그 옆에 있던 낯선 남자는 민형과 인연이 있는 형사라고 했다. 유우는 활짝 웃었다. 웃으면서 민형이 준 시계를 찬 손목을 민형에게 보여 주었다. 민형도 유우를 마주 보며 웃었다. 유우 2세도 웃었다.


  119 대원들이 남 노인과 조강을 들것에 싣는 동안 유우는 굴 안에 들어갔다. 유우 2세를 선희에게 맡겼었는데 선희는 사라지고 없었다. 민형에게 물어보니 자신이 왔을 때도 이미 없었다고 했다. 눈을 감았다. 이렇게 쉽게 이별할 줄은 몰랐다. 굴을 구석구석 살펴보았다. 마디게 잘 버텼다. 굴에는 동민이 두고 간 책들과 유우와 선희의 옷가지 몇 개, 통조림 몇 개가 굴러다니고 있었다. <페스트> 책만 굴 가운데에 떨어져 있었다. 구석에는 임시로 모아 놓은 블랙 헤일들이 쌓여 있었다. 희미한 손전등이 블랙 헤일들을 비추고 있었다. 그 옆에 유우 2세의 모자가 있었다. 모자 안에 블랙 헤일 하나가 들어 있는 게 보였다. 모서리가 날카롭지 않고 뭉툭했다. 동민의 손길이 들어간 거였다.


  그 블랙 헤일은 한동안 유우 2세의 장난감이 되었다가, 진정한 ‘악마의 공’처럼 둥근 모양이라는 이유로 수집가에게 꽤 높은 가격에 팔렸다. 동민은 진정한 예술가였다. 그 돈은 한동안 유우 가족의 생활비가 되었다. 동민이 마지막까지 선물을 주고 간 셈이었다.      


  “그런데, 그 노래는 누가 만든 거야?”

  민형의 질문에 남 노인이 유우를 쳐다보며 말했다.

  “요런 쪽에 재주가 있는 듯해.”

  유우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굴 안에서는 시간이 너무 안 가니까 이것저것 만들어 본 거지. 유이에게 동요를 가르쳐 주고 싶은데 아는 것도 몇 개 없고 새로 배울 곳도 없고…… 그래서 그냥 만들어 본 거야.”


  “난 이게 제일 좋아! 다른 건 기억 안 나는데 이 노래는 생생히 기억해!”

  유이가 여전히 하늘을 쳐다보면서 소리쳤다.

  “정작 만든 사람은 그 노래를 좋아하지 않지만 말이지. 그때는 몰랐는데 노래가 어쩐지 좀 음침해 보여서 말이야. 동요보다는 괴기스러운 민요 같아.”

  “뭐, 과하게 밝게 만드는 게 오히려 더 어색할 수도 있지.”

  민형이 허리를 펴면서 스트레칭을 하며 말했다.


  “……우리는 여전히 아무개인가?”

  남 노인이 중얼거렸다. 유우가 곧바로 이어 말했다.

  “여기가 여전히 굴이라면요.”

  남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유우가 자신이 만든 유일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유이가 잠깐 틈을 두었다가 같은 노래를 했다. 돌림노래가 된 셈이었다.



  “굴에 사는 개, 아무개

  굴은 넓지도 깊지도 않아

  개는 귀엽지도 무섭지도 않지

  아무개는 개도 아니고 사람도 아니야.”  

   


  “온다.”


  고개를 숙인 채 노래를 듣고 있던 민형이 고개를 들며 말했다. 블랙 헤일이 다시 내리고 있었다. 이번에는 얼마 동안 내릴지 몰랐다. 언젠가는 그칠 것이다. 영영 그치지 않을 것 같기도 했다. 모두 조용히 눈을 감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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