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연락하지 않았던 이와의 연락
강산이 두번 변할 정도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
저는 대학을 졸업했고, 직장생활을 이어나갔어요.
누구나 그렇겠지만 그 기간 중에 스쳐지나간 인연은 아주 많습니다.
어떤 이에게서는 명함을 받았지만,
언제 옷깃을 스쳤는지도 모를 인연으로 기억이 희미하죠.
어떤 이에게서는 명함이 떨어졌다고 해서
포스트잇에 휘갈긴 연락처만 가지고 있지만,
생김새며, 취향이며 생각나는 인연들이 있어요.
또 어떤 이는 아주 가깝게 지내서
명함따위 필요 없는 인연이었지만,
오랜 기간 떨어져 지내다 알음알음 소식만 듣기도 하죠.
얼마전, 대학 시절 과 1등을 놓치지 않던 복학생 오빠가
제가 일하는 분야에 교수님으로 취업했다는 소식을 건너 들었죠.
그것도 해외에서 일하는 분들이, 그 분이 거기에 취업했다는 정보를 건내주었어요.
그는 아주 먼곳에서 일하고 있어서 만날일이야 없겠거니 했죠.
그런 그가 어느날 전화를 했어요.
20년 전 그대로의 번호라 이름도 XX학번 OOO으로 뜨더라구요.
그는 모교에서 일하게 되었다고,
저의 소식을 알음알음으로 들어서, 그래도 후배들에게 귀감이 될만한 것 같으니
학교에서 와서 직장 소개를 해달라는 부탁을 했죠.
제 입장에서는 너무 놀라운 이야기였어요.
시간이 지나도록, 내가 그에게 좋은 모습으로 남아있었고
그러니 그도 나의 평판을 계속 체크 했던 모양이구나 싶어서요.
얼마 지나지 않아,
모르는 번호로 전화를 한통 더 받았습니다.
전화 뒷편의 그는 차분하게 자기 소개를 했습니다.
저를 10년 전쯤 어느 행사장에서 만난 적이 있다고, 혹시 기억하느냐고.
사실 기억은 가물가물했어요.
그리고 스피커 폰으로 돌린 채 명함 앱을 뒤적거리면서, 기억을 되짚었어요.
많은 사람을 만나는 직업 특성 상, 상대를 언제 만났는지 왜 만났는지,
다음에 만나면 알아볼만한 인상들, 식성들을 명함에 기록하고 있거든요.
명함을 보니, 그 사람의 이미지에 대해 써놓은 게 있더라구요.
차분함. 어른 같음.
그래서, 기록에 의존한 채 "아- 네 어렴풋이 기억나네요." 했어요.
그는 자신을 기억할 거라는 확신이 없었다는 듯,
본인이 이직을 해서 저와 더욱 비슷한 분야에서 일하게 되었다며 소개를 이어갔어요.
그래서 자문을 구할 일이 있어 제 최근의 연구들을 쭉 분석하다가,
자문을 요청하고 싶으니 만나고 싶다고 했죠.
사실, 기억도 가물가물한 상대였지만,
제가 명함에 써놓은 "어른 같음"이라는 문구에 희망을 걸며, 만나기로 했습니다.
만남 당일에 어색할지도 몰라
저도 그의 연구기록들을 찾아보며 무슨 얘기를 해야할지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그런데 식사자리에서 기다리던 그는 제 기억에 정확히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얼굴을 보자마자, 그의 어른스러움이 생각났어요.
사회 초년생이던 시절에 바라보던 30대 중반의 노련함이나, 어른스러움.
그리고 그것은 40대 중반이 된 지금도 여전했습니다.
걱정이 무색하게도 두시간 가량의 식사는 대화가 끊이질 않았고요.
오랜 기간 만나지 않았지만, 일 얘기는 10분만에 끝내놓고 끊임없는 일상대화를 했습니다.
최근에 이렇게 두사람을 만나고 나니,
스쳐지나간 인연들이 스쳐지나가게 두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색할지도 몰라서 하지 못했던 연락들을,
그런 인연들을 조금 더 둘러봐야 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