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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망 Sep 28. 2022

나의 대나무 숲

메아리 뿐이라도 대나무 숲은 있어야지.

저는 그릇이 조금 작아요.

안에 삭혀두고 흘려보내고 하는 편이 못되죠.


하지만, 최근에는 벌어진 일들을 흘려보내려고 애쓰고 있어요.

나의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할 때,

온연히 공감을 받기도 어렵고,

아주 가끔은 상대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다는 걸 아는 나이니까요.

예를 들자면, 나는 한 문제를 놓친것이 너무 아쉽지만, 

공부한 범위에서 한 문제도 나오지 않은 친구에게는 그런 말을 할 수 없죠.

내가 상투에서 주식이나 부동산을 팔지 못한 아쉬움이나, 

남편이 음식물 쓰레기를 버려주지 않아서 생기는 짜증은

어떤 이들에게는 사치스러운 고민일 수도 있다는 걸, 이제는 조금 압니다.


오히려, 제가 사기를 당해 쫄딱 망했거나, 사고를 당했다는 얘기는

누구에게나 안타까움을 자아낼 수 있으니 그런 얘기는 상대적으로 쉽겠지만,

그마저도 누군가는 말하지 못하는 더한 사정이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그러다보니 점점 더 말을 아끼는 요즘입니다.

하지만, 사람이란 동물이 감정적으로 누군가와 교류하고 싶은 욕구는 있잖아요.


그런 날 대나무 숲에 전화를 합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하고 외쳐도 메아리만 들리니까요.


저에게는 대나무 숲같은 사람이 몇 있어요.

대표적으로는 남편이 있죠.

비슷한 처지에 있고, 제가 왜 고민하는지 공감해줄 수 있는.

게다가 말이 옮겨질 걱정도 적은 사람이예요.


하지만 가끔 같은 일을 겪지 않은 상황에서는,

메아리가 들리지 않아요.


그런 메아리를 외쳐주는 고마운 사람이 또 있어요.

R 언니는 한번을 말을 옮기지 않죠.

늘 그저 있는 그대로의 저를 들어주는 편이예요.

저도 그 언니의 대나무 숲이 되어 서로가 서로의 메아리를 외쳐줍니다.


방금은 그 R언니와 한참을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외쳤어요.

이렇게라도 해야 그냥 흘려보내지 못했던

회사에서 임금님이 못살게 했던 이야기들을 털어버릴 수 있으니까요.


서로에게 오랜기간 신뢰를 쌓아왔으니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얼마전 후배에게 했던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또 부던히 노력하겠지만.

오늘은 그저 감사함을 전달하고 싶어요.


가뜩이나 팍팍한 직장생활에, 버팀목이 되어주어 고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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