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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 Oct 26. 2024

인생 첫 혼술 in 코펜하겐


누군가 나에게 혼자 하는 여행의 좋은 점에 대해 물어본다면 술술 나열할 수 있지만, 무언가를 먹을 때만큼은 나 홀로 여행자라는 게 무척 아쉽다.

여행지에서 혼밥을 할 때면 평소와 다른 내 모습에 놀라곤 한다. 나의 식욕이 이럴 리가 없는데... 해외에서 혼자 여행 몇 달만 하면 (매번 실패하는 그놈의) 다이어트도 성공하겠는걸...






 슬슬 해가 지고 바람이 쌀쌀해지고 나서야 (코펜하겐으로 오기 전) 오슬로의 호텔에서 조식을 먹은 것 말고 하루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코펜하겐에서의 첫날 저녁을 어떻게 할까 하다가, 혼밥 말고 혼술을 하기로 결정했다. 혼자 여행을 할 때는 밤에 돌아다니지 않는다는 철칙을 처음 깬 것이었다. 여행책을 뒤적이다가 알게 된  맥주 &와인바가 내가 묵는 호텔에서 멀지 않기도 했고, 코펜하겐의 버스도 타보고 싶었다. 한국에서는 대중교통 이용을 꺼리지만, 여행지에서는 대중교통조차 이국적이고 새롭다. 코펜하겐에서 조금 더 길게 머물렀다면 자전거 타는 것도 시도했을 것이다. 베트남에 오토바이 교통문화가 있다면, 덴마크에는 자전거가 있다. 코펜하겐 시내 거리를 처음 걸었을 때, 레드 새틴셔츠에 핫핑크 스커트를 매치한 여성이 빨간 하이힐을 신고 자전거를 타는 모습이 멋있어서 한참을 넋 놓고 보기도 했다.



라운스보겔 거리에 내려 구글 지도를 켜고 더듬더듬 찾아가는데 불금을 즐기려는 코펜하겐 사람들로 가득 찬 술집이 즐비한 거리가 펼쳐졌다. 활기차게 들썩거리는 밤거리 분위기에 덩달아 신이 나면서도 혼자라는 사실이 쓸쓸했다.


나의 목적지였던 kind of blue 역시 사람들로 꽉 차 있어 몹시 시끄러웠다. Bar 쪽으로 가서 앉으니 따뜻한 미소를 가진 바텐더가 친절하게 맞아준다. 생맥주 중에 아무거나 추천해 달라고 했더니 설명을 해주면서 한 잔 따라준다. 사람들의 말소리로 시끄럽기도 했지만, 나는 그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한다. 북유럽 영어 리스닝에 또 한 번 위축되는 순간이었다. 여행책에서 소개한 여러 술집 중에서 내가 이곳을 고른 건 호텔에서 가까운 것도 있었지만, '영어가 가능하면' 코펜하겐 사람과 대화도 할 수 있다는 설명에 대한 기대감이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현실의 금요일 맥주 바를 채운 사람들은 다들 일행이 있었고, 나의 영어는...'가능'하지 못했다.




맥주를 천천히 들이키며 휴대폰으로 대니쉬에 대한 검색을 시작했다. 덴마크인들은 다른 북유럽에 비해 사교적이라는 문장이 눈에 띈다. 북유럽이래 봤자 첫날 도착한 오슬로에서의 하루치 경험밖에 없었지만  호텔직원들의 응대에 크게 실망했던 나로서는 바로 수긍이 되었다. 코펜하겐의 호텔 직원도 상냥했고, 보트 투어의 선장님과 가이드도 친절했고, 방금 만난 바텐더도 따사로웠다. 인터넷으로 한참 대니쉬에 대해 탐색하고 있는데, 유럽 여성으로 추정되는 몇 명이 내 옆에 서서 바텐더에게 주문을 한다. 나는 귀를 쫑긋 세우고 그들의 대화를 알아들어보려고 애쓴다. 그녀들은 맥주 맛에 대해 물어봤고, 맛의 비교 대상 기준은 블랑이었다. 내가 유럽사람이 아니어서 영어를 못 알아듣는 건가 답답했는데, 그 여성들과 바텐더의 대화도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지켜보고 나서 안심이 됐다. 한 잔 더 마실까 하다가  사람들의 수다 소리 데시벨이 점점 더 커져서 남은 맥주를 빠르게 들이켜고 들어간 지 30분 만에 나왔다.


버스정류장까지 걸으며 돌이켜보니 술집에서의 혼술은 인생 처음이었다. 온전히 즐겼다고는 할 수 없지만, 해외에서 밤에 혼자 술을 마셨다는 것 자체로 어른(?)으로서의 레벨이 한 단계 상승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사십 대가 되고 나서 겁이 많아진 영역이 분명 있지만, 안 하던 짓을 혼자서 할 수 있는 담대함, 고독에 맞설 수 있는 용기는 사십을 넘기고 나서 얻은 수확이다.




입김이 절로 나오는 한 겨울에 kind of blue 앨범을 들으며 kind of blue에서 와인을 마시면 그야말로 죽이겠다는 상상을 해본다. 실내를 천천히 둘러볼 새도 없이 앉아 버리는 바람에 결코 알고 찍은 게 아닌데, 지금 사진으로 보니 사진 속 남자가 그인 것 같기도 하다.


오십 대가 되기 전 한번 더 갈 수 있다면, Kind of blue라는 가게 이름을 Miles Davis의 앨범에서 따온 것이냐고 꼭 물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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