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입주 전후로 배송, 설치, 시공 등으로 인해 낯선 사람들과의 일회성 만남이 많아졌다. 그리고 그렇게 마주친 사람들의 90프로가 나를 "사모님"이라고 불렀다. 난생처음 사모님이란 소리를 들은 건 잔금을 치르고 아파트 키를 받는 날이었다. 영상 매체에 등장한 사모님의 이미지 때문인지 그 말을 듣는 순간 너무 당황스러웠다. 방금 내가 뭘 들은 거지? 아파트 회사 직원의 응대는 무척 친절했지만 자꾸만 불러대는 사모님이란 호칭 때문에 무슨 말을 하는지 들리지 않았다.
이렇게 한 번 사모님으로 불리고 나니 그 말이 계속 내 심기를 건드렸다. 이제 나는 초면에 사모님이란 소리를 들을 만큼 중후한 외모를 갖게 된 건지 거울을 보며 자기반성을 하기도 했다. 금세 자란 새치와 얼굴 곳곳 자리 잡은 주름에 움찔하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은 (내가 생각하는) 사모님 이미지까지 간 것 같지 않은데...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기분이 유쾌하지 않았다.
소파 배송날은 그중에서도 역대급의 날이었다. 배송기사님은 배송시간도 정확히 지키시고, 등장할 때부터 새 아파트에 대한 칭찬과 농담을 투척하실 정도로 호탕한 분이셨다. 빠르고 정확하게 소파를 조립하시면서도 중간중간 소파 사용에 대한 주의사항도 잘 설명해 주셔서 소파주문에 대한 만족도가 최고조를 치려고 할 때였다. "사모님, 이 소파는 남자들이 특히 좋아해요."라고 묻지 않는 걸 알려주셨다. 소파가 널찍해서 아무래도 여자보다 체격이 큰 남자들이 더 선호하나 생각하며 아 그래요? 하고 넘겼다. 우리 집엔 소파를 좋아할 "남자"가 없어서 별 대꾸를 안 했는데 기사님은 또 남자들이 좋아하는 소파라는 것을 재차 강조하셨다.
나는 사모님이란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기로 했다. 스승의 부인, 남의 부인, 윗사람의 부인을 높여 부르거나 이르는 말이었다.
살면서 그 누구의 "부인"이 된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왜 그들은 나의 결혼을 확신하고 누구의 부인일 것이라 전제하는 걸까. 이것이 소위 사회통념인 것일까.
의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지만 한 번 보고 말 사람들에게 "나는 혼자 사니까 그놈의 사모님이란 소리 좀 그만하시라"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냥 끝까지 그들의 생각대로 사모님 인척 했다.
결혼을 했고 아이도 있으며 아파트에 사는 대학 동기 두 명이 얼마 전 내 아파트에 방문했다. 밥을 먹고 한참 수다를 떠는 중에 한 친구가 나에게 화장기 없는 모습을 오랜만에 봐서 그런가, 애를 안 낳아서 그런가 넌 여전히 학생 같다는 말을 했다. 내가 발끈하며 무슨 소리야, 아파트 이사 오고 나서 나 사모님이란 소리 들어!라고 대꾸했다. 친구가 박장대소하며 무슨 뜻인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도 사모님으로 많이 불리었다고 했다. 내가 사모님이란 호칭에 볼멘소리를 해대자, 그럼 너를 뭐라고 부르냐고 친구가 되물었다. 음... 고객님? 입주자님? 친구가 입주자님은 괜찮은 거 같지만 결국 넌 사모님일 거라고 했다.
아파트에 입주하고 나서 거액의 채무자가 되고, 사모님이 되었다. 첫 달 이자 기한 도래 메시지를 보고 이 정도 금액을 부담하면 (내 선입견 속) 사모님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긴 했다. 어쨌든 모든 공정이 완료되어 낯선 사람들을 만나는 일을 이만 끝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