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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Code Pink 0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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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ligitis Jan 25. 2017

예술, 정치, 디지털 게임

유토피아로 인도하는 함수

괴테 인스티투트와 독일의 인디게임회사 마쉬넨-멘쉬가 공동 주최하는 게임잼이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열렸습니다.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10대 개발자도 많기에 수상을 기대하지는 않았습니다. 아티스트로서 전시나 강의 경력은 적지 않지만 디지털 게임을 만들어본 경험이 전무하고, 한정된 시간에 팀을 구성해 작품을 완성하는 일종의 해커톤에서 청년들과 경쟁하면서 체력이 버틸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고도 근시라 항상 안경을 쓰고 지냈기에, 시각보다 GPS나 WIFI를 이용해 동작으로 구현되는 게임도 만들고 싶었습니다. 업계 사람이 아니니 편견에 자유로울 수 있고,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것은 언제나 가슴 설레는 일 아니던가요. 아티스트가 새삼 두려운 것이 있으랴. 스타크래프트, 프린세스 메이커, 테트리스, 뿌요뿌요, 침 뱉기 게임 (BEAVIS and BUTT-HEAD in Hock-A Loogie) 등 게임과 만화 덕후이자 프로그래머 출신의 언니와 형부를 보아왔고 지난 20여 년 한국 게임사와 비하인드 스토리도 알기에, 행여 코딩을 완성하지 못하면 부루마블 같은 보드 게임이라도 만들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교육용 게임을 만들지, 사회 풍자 게임을 만들지, 상업 게임을 만들지 고민이 되었지만 결론은 하나였습니다. 아트적인 부분을 살려 스토리와 디자인에서 감동할 수 있는 게임을 만들겠다고 방향을 잡았습니다. 그런데 복불복이었던 팀빌딩에서 역할분담을 잘 못한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노련미가 강점인 나의 전략 기획과 디자인은 끼어들 자리가 없었고, 최연소 참가자였던 17세 프로그래머의 넘치는 열정에 그만 페이스 조절을 실패해 소스와 코딩을 합체하는 시점에 실신해 보호자와 귀가 훈방조치를 받게 됩니다. 과로사로 간밤에 생사를 달리 한 후배도 보았고,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친구들을 단체로 갑자기 저 세상으로 보낸 기억이 스멀스멀 떠올라 긴장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잠을 거의 못 자서 다들 예민한 데다 공황상태에 빠진 나머지 멤버들 모두 게임잼은 처음인지라 완성도 못하고 집에 가야 하는지, 어쩐지 간밤 꿈자리가 뒤숭숭했다고, 병신년 (丙申年)의 저주가 풀리지 않았다고 개탄하며 밖으로 나가 버리고 감정에 북받쳐 울먹이기도 했습니다. 모든 노고가 물거품으로 돌아가는 순간, 이렇게 주저앉을 수 없다는 생각에 저는 다른 팀에 부탁해 프로그래머를 구해오기로 했습니다. 서로 알지도 못하고 경쟁하는 자리에 남을 도울 리 만무했지만, 운 좋게 작업을 일찍 마친 경력 프로그래머가 도와주면서 몇 시간 만에 상황은 풀리게 되었습니다.


 유토피아로 가는 길을 찾았을까요. 연애도, 교육도, 취업도 세상사 중에 정치가 아닌 것이 있었던가요. 선택과 배제의 힘겨루기에서 우리는 정치라는 과정을 경험해야 하는데, 강하고 뛰어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이기는 자가 살아남습니다. 이번 게임잼은 순위를 매기는 방식이 아니라 인도네시아, 러시아, 브라질, 멕시코 등 8개 도시에서 각각 세 팀을 선정하고, 멘토들과 프로토타입을 디벨롭하면서 최종적으로 지역별 한 팀씩 독일행 티켓을 거머쥐게 됩니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굽힐 수도 있어야 하며 적과 협업도 해야 합니다. 고통스럽지만 순간을 즐기기로 했습니다. 팀에서 포지션을 찾지 못해 헤매는 고급 잉여들과 인류가 당면한 문제를 논하기도 하고, 이 와중에 연애를 하는 커플도 있었습니다. 삼시 세 끼와 넘치게 채워진 간식과 야식을 눈 앞에 두고도 시간이 없어 못 먹는 것을 한탄하면서도 2박 3일 동안 살이 찔까 봐 행복한 고민을 했습니다. 독일이 게임산업에서 전 세계로 러브콜을 보내면서 법인 설립, 스튜디오 및 장비, 세금 등 각종 지원을 하고, 미국과 중국은 거대 자본을 앞세워 국적을 불문하고 인력을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앱스토어 100만 다운로드와 8주 연속 1위를 기록한 국산 게임 팔라독

 가상의 공간에 시간이나 돈을 투자한다는 것은 허무하다고 생각하던 제가 난생처음 유료 구매를 했던 게임이  바로 팔라독 (Paladog)입니다. Fazecat 김진혁이 만든 타이쿤 (大君, tycoon) 디펜스 게임으로 나름 서사로 시작됩니다. 먼 미래에 인간의 욕심으로 지구는 생명을 잃어갔고 신들은 인간을 멸망시키게 됩니다. 신은 인류에게 고통받던 동물들에게 문명을 이룰 수 있는 지능을 부여하면서 개 (dog) 팔라딘 (paladin)이 일어서는데, 그가 팔라독이지요. 매뉴얼대로 레벨 업을 하는 시뮬레이션 게임이라 중독성이 있지만, 엔딩을 보면 방치되거나 예상외의 결말은 기대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그 후 몇 년간 위안을 주었던 농장류 게임이 있었으니 타이니팜 (Tiny farm)과 레알팜 (Real farm)입니다. 애지중지하던 타이니팜을 떠난 결정적 사건이 있었으니, 컴투스 (Com2 us)가 게임빌 (Gamevil)에 인수 합병되면서 미국 현지법인으로 거듭나게 된 것입니다. M&A는 훌륭한 경영 전략이지만, 한국 디자인의 감성은 사라지고 그래픽에서 영혼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림을 잘 그리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지역성으로 그림체가 완전히 변했습니다. 그 후 레알팜 O2O (online to offline) 게임으로 갈아탔는데 상추, 멜론, 사과 등을 키우면 실제 먹을 수 있는 농산물을 배달해 주는 획기적인 기획이었습니다. 초창기 어마어마한 지지를 얻었지만, 레벨업을 하려면 실제 농사꾼과 다름없이 시간을 들이거나 현질 (현금 결제)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마트에서 사 먹는 것이 이득이라 판단하고 게임을 접었습니다.

몇 년 전부터 8비트 게임의 향수를 자극하는 픽셀아트의 투박한 디자인의 게임이 유행하게 되었는데 Crossy Road (길 건너 친구들), 개복치 키우기, 디스코 주 (discozoo) 등이 있습니다. 게임 룰은 퍼즐을 맞추거나, 동물이 끝없이 길을 건너다가 로드킬 되고, 개복치를 키우다가 죽으면 허무하게 게임이 끝납니다. 비트코인 빌리언 에어 (bitcoin billionare), 거지 키우기, 숙주나물인, 고양이 콜렉터 (Neko Atsume), 괴혼: 굴려라 왕자님 (Tap my Katamari) 등은 병맛 (맥락 없고 형편없고 어이없는)이거나 엽기로 이어졌다. 아마도 단순한 게임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어보고자 하는 심사였겠지요. 이외에도 Angry bird (앵그리버드), Pokemon Shuffle (포켓몬 셔플), Smurf Village (스머프 빌리지), 뿌까와 친구들 (Pucca n' Friends) 등은 캐릭터에 열광하는 오타쿠 (御宅)와 혼모노 (本物) 층까지 끌어들였습니다. VR의 원년으로 불리는 2016년 여름 세계적으로 히트를 친 증강현실 (AR) 게임이 있었으니, 올해 한국에서도 정식 출시된 Pokemon GO (포켓몬 고)입니다. 뒤늦게 한국에서도 GPS 기반의 게임을 만들려 고군분투했으나, 20년 이상의 팬덤을 가진 포켓몬 콘텐츠, 인그레스 (Ingress)를 통한 지도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하지 않으면 만들 수 없는 게임의 탈을 쓴 최신 기술이었습니다. 게임을 하면 할수록 비슷한 것조차 만들 수 없는 한계에 화가 났습니다. 스타벅스의 사이렌 오더 (Siren Order)도 커피점을 가장한 IT 종사자들이 만든 비즈니스임을 알게 된다면 근본적인 기획부터 바뀌어야 합니다.

국세청의 새해벽두 설문조사를 하다가 의아해지다

 일반적으로 게임에 대해 가지는 몇 가지 편견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사용자 대부분이 학생들일 것이라는 추측입니다. 그러나 최근 나온 통계에 따르면 게임 사용자의 평균 연령은 만 35세에 육박합니다. 월 3,000 usd이상 유료 결제를 하는 집단은 40대 이상의 고소득 전문직이라는 분석도 의미심장합니다. 게임을 사회악으로 치부해버리던 시절이 있었지요. 과연 게임이 술이나 담배, 마약이나 도박처럼 규제가 필요한 영역일까요. 20년 전만 해도 자녀들이 게임을 하고 있으면 부모님이 말리셨지만 이제는 세상이 달라졌습니다. 얼마 전 국세청에서 하는 설문조사에서 예술가가 연구직, 의사, 변호사와 더불어 전문기술직으로 분류가 되어 감개무량했습니다. 분야의 경계도 없어져 융합과 탈영역, 협업은 필수가 되었습니다. 기획자가 그림도 그리고 작곡도 하는 다빈치 같은 인재가 필요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게임잼을 통해 1인 개발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신 능력자들, 노장은 죽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한 우리 X세대 동지들, 결과물을 포기해야 할 위기에 놓였을 때 영웅처럼 나타나 도움의 손길을 주던 엔지니어, 모두가 지칠 때 팀을 돌면서 안마 서비스를 해주던 예술가까지... 우리는 모두 아름다웠습니다. 2박 3일, 신이 내 곁에 머물다 간 순간을 감사하며 2017년을 시작합니다. © Lisay 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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