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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ligitis Dec 19. 2018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습니다

창업이라는 이름으로

컴퓨터는 흔적을 남기고

 2001년 돌연 예술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만학도가 된 저는 12인치 아이북을 처음 접하게 되었습니다. 투박한 PC만 사용하다가 마주한 하얗고 매끄러운 랩탑, 성능은 별로여서 '예쁜 쓰레기'라 불렀지만 GUI는 혁신적으로 편리했습니다. 당시 언니와 형부는 90년대 SW 벤처기업을 일군 프로그래머로 제게 신신당부를 했습니다.


"다 클릭해도 되는데, 컴퓨터가 고장 나니까 시커먼 Terminal은 절대 열지 말어!"


지금 같으면 VM VirtualBox를 사용할 텐데 그때는 클라우드 호스팅 서비스가 없었습니다. 개발자 수업을 듣거나 새로운 언어를 배울 때에는 가상 머신 위에 돌리는 것이 안전합니다. 치명적인 실수나 악성코드의 공격을 받는다거나 에러가 발생해도 손수 뒤처리를 않고 바로 리셋할 수 있기 때문이죠. 컴퓨터에 다운로드했던 프로그램을 삭제 (delete or uninstall) 하더라도 시스템에서 완전히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레지스트리 하이브에 키와 값 그리고 데이터 파일이 남게 되는데 전문가가 아닌 이상 깨끗이 삭제 관리하는 것이 수월하지 않습니다.   


매뉴얼 좀 읽으세요

 저는 살면서 단연코 매뉴얼을 읽은 적이 없습니다. 휴대폰은 물론이고 공기청정기, 에어컨, 자동차까지 기계를 사면 따라오는 상품설명서는 무시하기 일쑤이지요. 하지만 작동 순서가 바뀌면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고, 호기심에 이것저것 막 누르다가 보면 아무리 튼튼하게 만들어진 기계라도 고장 나기 십상입니다. 제가 만지면 십중팔구 망가지기에 별명이 '가위손'이었어요. 그런데 요리는 중식, 양식, 일식, 베이킹까지 잘하는 편입니다. 이유를 생각해봤더니 요리는 예술 혹은 과학입니다. 컨템퍼러리 퀴진 (contemporary cuisine)이나 분자 요리 (Molecular gastronomy)의 세계는 주방 (kitchen)보다는 실험실 (lab)에 가깝습니다. 재료와 영양소의 특성, 조리법을 살펴보면 규칙이 있습니다. 오랜 교류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흥미롭게도 세계 지역별로 비슷한 요리들이 존재합니다. 프로그래밍 언어마다 명령어가 다르다 보니 README.md 파일은 읽어줘야 정상적인 구동이 가능합니다. 코딩에도 언어를 아우르는 공통 규칙이 있습니다.

집을 짓는 설계도처럼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아키텍처가 있습니다.

아키텍처 디자인

 전에는 터미널을 한 번도 열지 않았습니다. 컴컴한 것이 MS-Dos의 콘솔 같기도 하고 컴퓨터가 잘못되어 수리를 하거나, 프로그래머들이 엄청 중요한 일을 할 때 띄우는 창이기에 저와 멀다고 생각했지요. 영화에 나올법한 해커들이 비가 내리듯 코드를 올리기도 하고, 매트릭스에서 가상의 세상으로 들어갈 때 사용하는 블랙홀 같았습니다. 그런 제가 하루에 평균 8시간 이상 터미널을 켜고 프로그래밍을 하다니 믿기 힘들었습니다. 스타트업 CTO로 1년을 공들인 서른 살 친구가 신혼여행을 가더니 돌아오지 않으면서 제가 개발을 떠안아야 했습니다. 투자도 받았는데 결과물 없이 보고를 할 수는 없으니까요. drag-and-drop 방식의 스크래치나 Swift 플레이 그라운드 같은 초보자 코딩 프로그램은 몇 년 전 수료했으니 자신감이 가득했습니다. 이과 출신 예술가이지만 외국어를 배우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기에 컴퓨터 언어도 비슷하겠거니 생각했습니다. 웹사이트를 만드는 기획 단계에서 뼈대를 구성하듯 모바일 앱을 만드는 데에도 아키텍처 디자인이 중요합니다. 잘 모르겠다면 완성된 롤모델을 찾아서 내 컴퓨터로 클론 (clone) 해서 구조를 분석해보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기업가정신을 추구하는가

 창업이 세계적인 추세인지라 제 주변에도 유니콘으로 성장하는 훌륭한 창업가들이 많습니다. 연말이라 명함을 정리하다 보니 대표나 이사가 아닌 사람이 없네요. 너도나도 CEO 혹은 사장이라고 명함을 주는데 사업이 소꿉장난도 아니고 대략 난감합니다. 기업가란 혁신으로 세상의 문제를 찾아내 바꾸거나 지속적인 고용을 창출하고 국가에 합법적으로 세금도 내야 합니다. 돈을 번다고 기업가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웹사이트, 도메인 이메일, 법인은 있어야 시드 투자라도 받지요. 포탈 메일이나 블로그를 명함에 적어놓고 CEO이기를 바라는 이들에게는 1인 크리에이터나 프리랜서를 추천합니다. 국내에도 크몽, 탈잉, 숨고 등 재능을 사고팔 수 있는 프로페셔널 장터 플랫폼이 있습니다.

 

양자컴퓨터의 세상

 코딩을 하면 할수록 성경의 바벨탑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인간과 기계의 언어가 달라서 생긴 일이 코딩인데 단일 언어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말입니다. 고양이와 강아지의 소통법이 인간과 다르고 러시아어와 그리스어가 다르니 서로 통하지 않을 수밖에요! 하지만 양자 컴퓨터가 나오면 인류의 역사가 비약적으로 발전합니다. 빛의 속도로 연산이 이뤄지기에 실시간 통번역이나 블록체인을 푸는 것은 식은 죽 먹기이지요. 그때 인간이 무엇을 하고 있을지 상상만 해도 즐거워집니다. 검색이 보편화되면서 주입식 공부는 의미 없는 세상이지요. 르네 랄루 (René Laloux, 1929-2004)의 1973년 애니메이션 판타스틱 플래닛 (Fantastic Planet)에 외계인이 쓰는 만능 학습기가 나옵니다. 헤드셋처럼 착용하면 세상의 모든 지식을 자동으로 학습하는 세상이 도래하리라 생각합니다. 지식의 불균형이 사라지는 특이점 (Singularity)은 언제쯤 올까요? © Lisay 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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