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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Code Pink 0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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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ligitis Dec 29. 2018

레거시를 부숴라

혁신은 어디에서 오는가

레거시 시스템 (legacy system)은 낡은 기술이나 방법론, 컴퓨터 시스템, 소프트웨어 등을 말한다. 이는 현대까지도 남아 쓰이는 기술을 부르는 말일 수도 있지만, 더 이상 쓰이지 않더라도 현대의 기술에 영향을 주는 경우도 포함한다.     -위키백과


레거시도 모르는 여자

 프로그래밍을 배우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파일 구조나 문법도 아닌 케케묵은 레거시였습니다. 디자이너라 맥킨토시를 사용하기에 윈도는 낯설기 그지없는데, 코딩을 가르치는 강사님은 레거시에 갇힌 기술자였습니다. 정해진 질문에 앵무새처럼 곧잘 답변은 하지만 비전이나 창의성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은행권에 근무하다가 국내 대기업의 50대 부장님이셨는데, 자녀 학자금 지원 때문에 회사는 별로지만 퇴직까지 그만두지 않을 거라 공공연히 이야기합니다. 아들은 자신이 다닌 은행에 낙하산으로 인턴까지 시켰다고 뿌듯해했습니다. 대한민국에서는 줄을 잘 서야 한다고 강조하더군요! 회사를 갉아먹는 이런 분들이 빠져줘야 청년 정규직 일자리가 생길 텐데 답답합니다. 정말이지 첫 시간부터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강사님의 인격이나 태도를 가릴 처지는 아니었습니다. 한 달 동안 수업시간과 쉬는 시간 내내 폭풍으로 질문을 했습니다. 모르는 것을 해결해야 장기적으로 원하는 게임에서 이길 수 있으니까요. 수강 내내 '레거시도 모르는 여자'로 불렸지만 상관없습니다. 환갑을 바라보는 강사님과 두 번 다시 볼 일 없도록 이를 악물고 공부했습니다.

초파리의 눈으로 당구를 치면서 유전공학에 빠져드는 게임 © Lisay G.


브로그래머의 세상

글로벌 IT 기업이 주최하는 1시간 반에서 5시간에 걸쳐 진행된 밋업들은 만족스러웠습니다. 찾아보면 일반인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양질의 강의들이 많습니다. 맥킨토시나 아이폰 사용자라면 애플스토어에 가도 좋고, 여유가 된다면 실리콘밸리에서 열리는 테크 캠프나 콘퍼런스에 참여해도 좋습니다.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IBM에서 주최하는 밋업은 명품으로 정평이 나있고, 강남의 빠른 캠퍼스로 가시면 최신 트렌드 강좌를 골라 들으실 수도 있습니다. 대학교수 친구는 사회적 지위도 있고 학생들 눈치가 보인다고, 5분 늦게 들어갔다가 5분 일찍 나오더군요. 예전에 이공계 수업을 가면 같은 여학생을 만나는 것이 하늘의 별을 찾기만큼 어려웠는데, 지금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개인적으로 디자이너를 위한 코딩 교육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타고난 예술 감각에 유연성도 있으니 일석이조이겠지요. 배우고 잊어버리면서 익숙해질 때까지 반복합니다. 아이들이 크는 모습을 관찰하면서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하는데, 처음에는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고 따라 하다가 나중에는 온갖 변주를 만들어냅니다. "아기 상어 뚜루루 뚜루~" 흥얼거리다 보면 어느새 창작의 경지에 이르게 됩니다.

마이크로 파이썬으로 IoT에 코딩을 얹어 봅니다

터미널에서 나를 좀 구해줘요

환경설정을 추가하러 시스템 파일을 열었다가 저장하고 나오는 법을 몰라서 질문했다가 무시당한 것이 수차례, 어제까지 잘 열리던 터미널이 오늘 갑자기 먹통이 되는 것은 여러분 잘못이 아닙니다. 컴퓨터를 리셋하면 원상복구가 되기도 하니까요. 때로는 우리 인생에도 리셋 버튼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전에는 lan, dns, 보안 설정하는 것은 인터넷 설치 혹은 컴퓨터 수리 기사님께서 해주던 것이었는데, 스타트업에서 개발을 하려니까 이 모든 것들을 알아서 해야 합니다. 여기에 IoT까지 추가되면 기계공학이나 전기전자공학에 대한 기본 지식도 있어야 올 스펙 개발자가 될 수 있습니다. 매일 충전기 선을 백만 번쯤 풀었다가 감았다가 하니 선이 버틸 리가 없겠지요. 결국 램프가 깜빡거리다가 전원이 들어오지 않아, 니퍼와 펜치로 손수 맥 세이프를 분해해서 피복을 하고 납땜을 하고 절연테이프를 감는 것쯤은 일도 아니게 되었습니다. 인생에서 고상하고 품위 있게 사는 것은 일찍이 포기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어렸을 적 과학반을 하면서 라디오 조립하고 RC 카도 만들면서 저항과 센서를 만지면서 놀던 것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역시 뭐든지 배워두면 살면서 언젠가는 쓸모가 있더군요.

AI Landscape © Max Tegmark life 3.0

프로그래밍은 디자인이다

킬러앱 (killer application)을 만들어야 합니다. 한 가지만 뛰어나서는 훌륭한 서비스를 만들기 어렵습니다. 기획력이 있어야 시장에서 필요로 하는 제품을 만들 수 있고, 프로그래밍 아키텍처 디자인도 치밀해야 합니다. 비슷하게 작동하지만 짧은 코드로 같은 결과를 낼 수 있다면 당신은 고수입니다. UX, UI 디자인은 필수이지요. 매일 앱들이 수없이 나오지만 소비자가 선택하는 것은 보기 좋고 사용하기 편한 앱입니다. 인내의 시간을 지나 과정을 마칠 때쯤 괜찮은 앱과 웹을 출시하게 되었습니다. 다들 개발자 출신이라 실력도 출중하고 다양한 결과물이 나왔습니다. 개발은 서툴지만 디자이너와 기획자로서 도메인이 있는 저는 낯선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첫 술에 배부를 수 없으니 과욕은 부리지 않기로 했습니다. 늦더라도 차근차근 밟아가면 됩니다. 강사님은 제 결과물에 대해 실험적이라고 평하며 구체적으로 언급을 피했습니다. 올해는 모든 일을 내려놓고 테크 스타트업을 하기로 한만큼 투자는 개발 전에 준비되었고, 제게 필요한 것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코드뿐이었습니다.

코딩은 자전거 타기를 배우는 것과 참 비슷합니다  © Lisay G.


김박사넷은 혁명이다

왜 한국에서는 귀도 반 로썸 (Guido van Rossum, b.1956), 빌 게이츠 (Bill Gates, b.1955), 캐빈 시스트롬 (Kevin Systrom, b.1983), 비탈릭 부테린 (Vitalik Buterin, b.1994) 같은 세계적인 스타 프로그래머가 나올 수 없는지 개발자 수업을 들어보니 자명했습니다. 정치권이나 방송에서 알려지고 경력이 화려한 강사일수록 상황은 심각했습니다. 이상한 학생이 수업에 들어와 질문을 하면 인신공격으로 받아치거나 대꾸도 해주지 않고, 아니 그들이 모르니까라고 위로해봅니다. 하루에도 몇 번 참을 인 (忍) 자를 쓰고 지웁니다. 강사님 뼛속까지 내 것으로 만들어야 했기에, 당분과 카페인으로 버티면서 한 땀 한 땀 코드를 적어 내려갔습니다. 강의동 앞에 동티모르 커피를 파는 트럭이 있어 망정이지, 상처 받은 영혼을 위로해 준 커피 트럭 사장님께 감사를 보냅니다. 시스템에서 규정할 수 없는 다이버전트 (Divergent)는 눈엣가시로 도태될 수밖에 없습니다. 얼마 전 후배의 강력 추천으로 알게 된 김박사넷을 보면서 진정 혁신이라 생각했습니다. 특권의식에 젖어든 치과의사 동기 녀석은 전문직을 대중이 감히 평가하냐고 역정을 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교육 서비스, 법률 서비스, 의료 서비스가 된 세상에서 성역은 없습니다. 공정한 평가가 없다면 올바른 선택도 없으니까요. © Lisay 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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