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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J Oct 31.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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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하고 싶은 거 다해

 초식남과 사업 준비로 한창 분주할 무렵, 남편이 귀국했다. 나파밸리 (napa valley) 포도밭에서 물을 주고 열매를 따고 와인을 숙성시키는 것도 잠시의 낭만일 뿐이다. 메트로폴리탄 (metropolitan) 서울과는 거리가  생활방식에 각종 병충해를 겪어보니 전원생활에 대한 로망이 깨진 모양이다. 눈에서 멀어지니 마음에서도 멀어진  알았는데 오랜만에 보니  반갑고 애틋했다. 농장 일로 무리했는지 팔을 들어 올릴  없을 만큼 아프다고 해서 서둘러 부부 건강검진을 잡았다. 나도 아침에 일어나면 발바닥이 아파 걷기도 힘들고, 요즘 체온조절이   되는지 에어컨을 시도 때도 없이 켜고 틀면서 고생하곤 한다. 언젠가부터 손톱에는 거친 세로줄이 생겨 매니큐어를 발라도 덮어지지 않고 스티커나 인조 손톱을 붙여봐도 하루를  버티고 떨어지는 것이었다.


 반나절 종합검진이 끝나고 주치의는 부부의 이야기를 듣고는 간단명료하게 진단 결과를 말해 주었다.


"노화가 진행되면서 호르몬이 부족해 생기는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힘드시면 약물처방을 해드리겠지만 가급적이면 생활 속 운동을 하시면서 서서히 받아들이세요."


 젊을 때엔 에스트로겐 과다로 고생했는데 나이가 드니 테스토스테론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반면 남편은 여성호르몬 수치가 높아졌다. 에스트로겐과 분자구조가 비슷한 환경호르몬이 내분비교란을 일으키는 중일까, 어쩐지 요즘 눈물도 많아지고 수다스러워지더라니. 이러다가 나는 대머리수염이 나고 남편은 여성스러워지는 것은 아닌지 두렵기도 하고 절망적이었다.


“베르니, 우리 아이들 키워볼까?”

낼모레가 쉰인데 아이를 낳자고? 지난번 대사관에서 신세  것도 있으니 혹시 미국에서 숨겨온 자식이 있더라도  품어줄  있어.”

“Honey, 무슨 그런 살벌한 농담을! 우리 입양하자. 낳은 자식처럼 잘 키우면 되잖아.”

“마음에 둔 아이들이라도 있어?”

예전에 베이징 있을  탈북자 사역했었잖아. 그때 만난 틴에이저 친구들 기억나지? 탈북하면서 부모는 죽고 아이들만 한국으로 보내졌잖아. 자본주의 사회에서 홀로 살아남을  있겠어?”

“하긴 서울이 좀 크레이지 하지. 사실 나도 입양하고 싶은 아이들이 있어. 초파리 좀 키우면 안 될까?”

“뭐, 파리? 집에서 벌레를 키우자고?”

노랑초파리는 바나나, 복숭아, 포도 이런  먹는 깨끗한 과일 파리라고. 눈은 반짝반짝 얼마나 예쁜데! 자기도 실제로 보면 귀여워서 기절할 거야.”


 남편에게 초파리에 대해 한참을 설명하였다. 그동안 벌어진 기적 같은 사건을 이야기하며 금고를 열어 확인시켜주었다. 처음에는 믿기지 않는지 " 마이 !" 외치며 박장대소를 하다가, 눈앞의 루비와 다이아몬드를 보고 현타가 오는지 입을 다물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다음  뜬금없이 전기용 교수의 와이프에게 연락이 왔다. 지난번 일은 자신과 상관없이 남편이 벌인 일이라고 정말 미안하게 되었다고, 그녀의 B 제약회사와 비즈니스 파트너 관계를 구축하자고 한다. 어디서 무슨 소문을 들었는지 상당히 파격적인 파트너십을 제안하였다. 다이아몬드라도 눈치챈 것일까. 우리는  버는 데에는 관심이 없다고 단호하게 전화를 끊고 초식남에게 연락해보니 역시  교수의 연락을 받은 모양이었다. 물론 제약사와 연구소의 연봉의 압도적인 차이로 유혹은 뿌리쳤지만 아카데미아에 대한 미련은 남은 모양이다.


"베르니 님은 하고 싶은 것 없으세요?"

"지금껏 하고 싶은 일은 다 저지르며 살아와 후회 없습니다."

"정말이요? 안 그러실 것 같은데 의외인데요?"

"그런데 이제부터는 신중살아보려고요. 연구원 님도 하고 싶은  있으면  하세요. 루비 재단에서 응원해줄게요!"

“베르니 님은 제 나이로 젊어진다면 무얼 하고 싶으세요?”

글쎄요...  많은 시행착오들을 다시 경험해야 한다면 젊어지고 싶지 않은데요. 게임화 (gamification) 보아도 의미 없는 일이죠. 캐릭터마다 로직이 있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도 똑같은 지점에서 실수를 해요. 선택이 달라지더라도 주인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다면 결과는 달라지지 않아요. 제가 게임을 만들어보니 신의 주사위 게임이 어떤 의미인지 어렴풋하게  것도 같던걸요.”

 소름 돋네요! 귀한 조언들 뼛속 깊이 새기겠습니다.”

“미물 초파리를 통해 제 인생에도 반전이 생기다니 신의 큰 그림이 궁금합니다.”

"저도 베르니 님이 아니었더라면 평생 시큼털털한 연구실에서 평생 지냈을지도 몰라요."


    초식남은 재미있는 전공을 마다하고  우물을 파겠다며 초파리 연구소를 택했다. 생물분류의 기본이 되는 ' 속 과    '에서 초파리가 Drosophila 속이 아니라 Sophophora 속에 가까울  있다는 여러 가지 근거가 발견되었다. 만일 초파리의 재명명으로 현대 유전학의 축이 옮겨지면 데이터베이스의 스키마가 흔들리기에 대혼란이   있는 중차대한 순간이다. 마침 남편이 아는 친구가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샌디에이고의 유전학자이자 ‘초파리종 연구센터 (Drosophila Species Stock Center)’ 소장으로 있어, 추천서를 받아 초식남을 펠로우쉽으로 어렵지 않게 보낼  있었다. 공석이  자리는 조기 은퇴를  남편이 합류했다. 덕분에 작은 스타트업이 단번에 글로벌 기업으로 대외적인 입지를 굳힐  있었다. 초식남에게는 꿈을 펼치라고, 이렇게  마당에 초파리로 노벨상까지 달려보라고 레드 카펫을 깔아 주었다. 노랑초파리 지금도 대를 이어 2주마다 루비와 다이아몬드의 축복을 내리고 있다. 실수로 1캐럿에 달하는  루비를 얻을 때도 있지만 아직은 모든 것이 원인 미상이다. 덕분에 우리 집은 초파리와 식충식물의 서식지가 되었다. 입양한 아이들이 사춘기라서 예상과는 다르게 시도 때도 없이 말썽을 피우지만, 허공을 날아다니는 작은 빨간 눈의 초파리들과 마주치는 것이 행복한 일상이다.


 불어나는 자산으로는 초파리가 자생한 전민동의 이니셜을 따서 JM1 & Co.  설립했다. 기초과학 연구를 기반으로 NFT 디자인과 브랜딩으로 수익을 내고 있다. 그리고 Ruby Foundation 재단도 설립하였다. 이익을 내는 회사와는 별개로 ESG 위한 연구사업에 특화된 비영리 법인이다. 파격적인 처우로 소문이 자자하면서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불을 받는 3개월 인턴 하겠다는 지원자가 속출하였다. 역사적인  발자국을 남기고 싶어 10 25 독도의 , 독도에 법인을 등록했다. 1900 고종이 독도를 울릉도의 부속섬으로 정하는 대한제국 칙령 41호를 제정한 날을 기념하고자 함이다. 내가 개발자 출신인지라 천만다행으로 루비 개발자를 지원하는 재단으로 위장할  있었다. C, 자바, 파이썬  주류 개발자들은 배제되었지만  항상 소수의 편에 서고 싶었. 1 배치 (batch) 초식남의 유학  연구 비용 일체를 지원하기로 했다. 과학기술은 경쟁이 아닌 인류를 위해 사용되어야 하며 독점되어서는  되고 협업이 원칙이다.

 

 사람은 누구나 스스로가 세상의 중심이라고 믿고 살아가지만 타인과의 관계가 특별함을 만든다. 너와 내가 이어지면서 의미 있는 존재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원리를 규명하지 못한 ‘DM (drosophila melanogaster)’ 메신저가 있으니 초식남과 언제든지 만날  있다. 그는 물리적으로 마운튼  (Mountain View) 있지만 내가 설계한 메타버스에도 존재. 그리고 믿음직스러운 초파리 군단은 Unreal Farm에서 루비를 생산한다. 0이면서 1 되는, 존재하면서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양자역학으로 설명되는 개념들이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DNA 복제해 80년의 좋은 기억 업로딩 시켰다. 죽음은 살아남은 자들에게 관계의 끊어짐이라는 '단장지애(斷腸之哀)' 혹은 ‘모원단장(母猿斷腸)’ 아픔이기에 첨단기술을 빌려서 신의 영역에 가까워지고 싶었다. 작은 초파리 덕분에 가상에만 머물던 아이디어로 임상실험이 가능해. 대중들은 어떤 명분을 들어서 도의적인 책임을 논하겠지만 상실을 경험한 당사자들의 생각은 그렇지 않다. 부모에서 나를 거쳐서 자식으로 이어지는 유전자의 비밀은 생명라면 거스를  없는 원리이며 명제다. © Lisay 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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