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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J Oct 2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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랩실의 도망자들


drosophila melanogaster 이슬을 사랑하는 

난 오늘도 답이 보이지 않는 wet lab에서

이슬  잔에 기대어 고된 하루를 버티지 yo

빛나는 빨간  작고 신비한 생명

넌 언제부터 이 지구에 살았을까

눈에 보이지 않는 반짝이는 루비를 품고 다니지

갈색  하얀  돌연변이 종류가 

atom to the byte it's digital twin

한 땀 한 땀 쌓아 올린 DNA 프로그래밍

dry lab에서 내가 써 내려간  줄의 코드뿐 skrr

Fly high 메타버스 속으로 다시 날아올라


 주말에 기분 전환을 할 겸 미용실에 몇 시간 다녀왔다. 그런데 서재에 고이 놓아두었던 초파리와 루비만 온데간데 없어졌다. cctv를 보니 외부에서 두 차례 침입이 있었다. 서로 다른 사람으로 보이는 두 사람이 30분의 시간 차를 두고 다녀갔다. 둘 다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범인 특정이 어려웠다. 아는 사람인가? 대체 누구일까. 그런데 루비와 초파리만 없어지고 다른 귀중품들은 그대로인 것으로 보아 초파리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 분명하다. MOK의 주변 사람일까. 이런 날이 오다니 진짜 우리가 무슨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것일까.


 다음  아침이 되자 신고도 하지 않았는데 경찰이 들이닥쳤다. 사기  횡령죄로 신고를 받아 집안을 조사하겠으니 협조를  해달란다. 워낙 돌발상황인지라 실수하지 않도록 심호흡을   하고 정신을 가다듬었다. 우선 경찰들에게 호통을 치며 경찰 신분증 확인을 요구했다. 시간을 끌며 스타트업 협력 변호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친구 공변호사는 승소율 99.9% 자랑하는 실력파로 아쉬운 일이 있을 때에만 연락해서 미안할 뿐이다. 그가 귀띔해 주길 압수수색영장이 없으면 무시해도 상관없다고 했다. 나는 현관에 주저앉아 거부의사를 밝혔다. 정말 자존심이 상해 이러고 싶지는 않았는데 급한 마음에 남편에게 국제 전화까지 걸었다. 다행히 캘리포니아가 퇴근 시간 전이라 주한 미국 영사관을 통해 비상연락망을 돌릴  있었다. 위아래로 대충 훑어봐도 허접해 보이는 경찰 서너 명이 무전기와 전화를 번갈아서 받더니 차에 올라타고 철수를 선언한다. 변호사의 능력인지 공관의 개입인지 모르겠지만  시간도 되지 않아서 해프닝은 종료되었다.


 잠시 떨어져 있어 존재를 잊고 있었지만 외교관 남편 덕분에 나는  치외법권에 있었다. 남색 번호판이 달린 차량으로 이동하면 누구든 어디에서든 예의를 갖춰 대해주었다. 그런 특권을 언젠가부터 당연하게 여기고 즐기고 있었음을 부정하지는 않겠다. 경찰의 출동은 초식남의 지도교수 전기용의 신고로 밝혀졌고, 우리 집에 시차를 두고 침입해 초파리와 루비를 가져간 사람들에 대해서는 여전히 조사 중이다. 영장도 없이 압수수색을 운운하던 경찰은  이상 믿음직하지 않아서, 변호사와 사설 경호업체에 조사를 . 그리고 혹시 모를 초식남의 안부를 확인하려고 연락을 했다. 그런데 한 용건 있다고 만나자고 한다.


“연구원 님, 며칠 전 저희 집에 도둑이 들었어요.”

알고 있습니다. 긴히 말씀드릴 것이 어요.”

“네? 알고 계셨어요?”


“지도교수님과 루비에 대해 의논하던 중 논쟁이 붙었어요. 초파리는 실험실에서 제 실수로 불법 반출을 했는데, 학교 자산이라며 장학금을 받는 학생이 그러면 안 된다고 교수님이 몰아붙이셨어요. 졸업은커녕 횡령죄로 저를 고소하겠다고 협박하면서, 250여 개의 루비를 가져오면 혐의를 벗겨주겠다고 저를 회유했어요. 초파리 천 마리를 합법적인 절차를 생략하고 실험실에서 내어드린 것은 제 잘못이지만, 루비를 만든 건 제가 의도한 것이 아니라고 했더니 화를 내시면서 쫓아내셨어요. 원하는 목적을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하는 분이라 예감이 좋지 않아 서울로 올라갔어요. 당장 초파리를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켜야 할 것 같아 베르니 님 댁으로 바로 갔는데 안 계셔서 그만 들어갔어요. 설마 했는데 비밀번호가 마침 전화번호 뒷자리와 같아서 도어록을 열고 초파리만 챙겨 나왔습니다.”


“비밀번호를 그런 허술한 것으로 하다니 제가 실수했네요. 아이들은 잘 있는 거죠?”

“깨어난 초파리 두 마리를 찾아 돌연변이를 만들어 보았습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죠?”

“냉동에서 깨어난 녀석들을 찾아서 인위적으로 눈을 망가뜨려서 하얗게 만들었어요.”

“뭐라고요?”

“베르니 님, 초파리를 다시 돌려드릴 테니 기적을 보여주세요!”

지금 제정신이에요? 생명체로  그런 짓을 했어요!!!”


 돌연변이를 만드는 과정이 초파리에게 몹쓸 짓이었다니 말문이 막혀 버렸다. 반짝이는 예쁜 눈을 망가뜨려서 시각장애를 만들다니! 생명의 무게는 크고 작음에 상관없이 중하다면서, 내심 다이아몬드를 기대하고 이율배반적인 실험을 하는 행동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자연적인 돌연변이로 암이 걸린 생명체를 보아도 막막한데, 인위적으로 돌연변이를 만들다니 희생된 생명들에 슬픔이 밀려왔다. 초파리를 돌려받는데 눈물이 났다. 결국은 너도 차가운 심장을 가진 과학자였구나. 초식남이 고개를 떨구더니 말없이 가버렸다.

 

 1004 마리의 초파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돌연변이가 되어버린  마리만 눈이 하얗다. 백내장에 걸린  같기도 하고, 성에가  안경 같기도 하고, 눈이 흩날리는 snow ball 같다. 보이기는 하는 걸까. 그러고 보니 깨어난  마리 초파리가 암컷  마리, 수컷  마리로 서로 짝이 맞았다. 초식남이 돌연변이를 세피아 눈이 아니라  눈으로 만든 데에는 이유가 있다. 세피아 눈을 결정하는 유전자는 2 염색체에,   유전자는 x 염색체에 있다. 초식남은 반성 유전을 추적하기 위함이며  눈은 열성으로 빨간 눈과 교배하면 천만다행으로 다음 세대에 빨간 눈이 나올  있다. 재빠르게 조치를 취한 MOK 아니었으면  번째 침입한 누군가가 루비와 아이들까지 모두 데려갔을 테니, 돌연변이라도 살아있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내 욱하는 성격에 초식남에게 윽박질렀다니  미안해진다.


 우선 안전한 곳을 찾아야겠다. 혼자 있는데 집이  이상 안전하지 않다니... 대사관에 신변보호를 요청하고 임시거처를 안내받았다. 며칠 만에  번째 침입자의 동선을 역추적해서 택배기사 정성민을 범인으로 체포했다. 새벽 배송을 왔던, 출입문 비밀번호를 훤히 아는, 한남동 441 담당 택배기사로 이름도 얼굴도 익은 사람이다. 그런데 루비를  적도 없고 가져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조서를 읽어보니 그는 루비의 존재조차 모르는듯하다. 그럼 루비 252개는 누가 가져갔지? 혼란 속에 다시 2주가 지나고, 새로 머무는 아지트에서 반짝이는 루비  개가 만들어졌다. 아쉽게도   돌연변이는 자연사했다.   돌연변이는 다이아몬드는커녕 보석으로도 변하지 않았다. 가설에 대한 결과를 초식남과 공유하고 열띤 토론을 하고 싶은데 그의 휴대전화 전원이 꺼져 있어 연락이 되지 않는다. 그래도 확인할지도 모르니 지난 2주의 결과를 메시지로 남겼다. 설마 경찰에 잡혀가거나 지도교수에게 혼나는 나쁜 일이라도 있는 것은 아니겠지.  지내고 있는지 이상하게 마음이 간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소식이 궁금하다. © Lisay 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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