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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J Oct 3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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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A

 3년 전 글로벌 이니셔티브로 dna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시작했다. Deep:phi라는 머신러닝 플랫폼에 전 세계 연구실에서 공유하는 빅데이터를 분석해 가공하는 것이다. 당장은 돈이 되지 않지만 먼 미래를 위해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다. 한국은 신기술에 대한 규제가 많은지라 해외법인을 설립했고, 국내는 연락사무소 형태로 개발자들과 협업하고 있다. 아톰 (atom)의 세계를 바이트(byte)의 세계에 얹는 일을 하면서 디지털 트윈 (digital twin)을 통해서 몇 가지 흥미로운 가설을 세웠다.


'세대를 거듭할수록 종의 특성들이 업그레이드된다.’


‘세대가 짧을수록 신체적으로 우수하고, 세대가 길어질수록 지능적으로 우수하다.'


‘무녀리보다는 두 번째 이후에 얻은 자손의 유전자 조합이 더 조화롭다.’


 귀납적으로 알려진 결과인데 원인은 찾지 못했다. 그러던 중 우주비행선에 최다 탑승한 생명, 인간과 DNA가 유사한 초파리를 알게 되었고 초식남 TV를 비롯한 각종 학술잡지에 입덕하였다. 초파리는 위협적이지도 않고 과일을 먹다가 입에 들어가도 모를 일이다. 초파리의 유전자 중 인간에게 동일하게 작용하는 Hox 유전자는 신체형성에 관여한다. 암, 뇌종양, 당뇨, 자폐, 알츠하이머 등 질병을 일으키는 유전자만 떼어서 비교하면 초파리와 유사도가 75%에 달한다. 하지만 생물과 화학 물질을 다루는 wet lab을 만들기에 한계가 있어, 컴퓨터 과학, 수학, 통계학에 기반한 dry lab을 만들었다. 초식남이 찾아 돌려준 루비와 새롭게 얻은 다이아몬드, 초기 초파리 천 마리까지 dna 데이터셋을 추가로 업로드했다. 데이터와 해답을 넣고 반복학습을 통해 보석이 만들어지는 알고리즘을 찾아내야 한다. 추후 인간의 개입이 없어도 cnn, rnn 딥러닝을 통해 과정을 자동화해야 한다. 머리가 복잡할 때는 단순작업이 최고다. 천 마리를 100열 종대로 루비와 다이아몬드도 나란히 세워본다. 어느 날 새벽 화장실에 다녀오다가 거실에서 우연히 엄청난 광경을 목격하였다.


'어, 지금 무슨 상황이지?'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네펜데스가 점액을 흘리는데 작은 루비가 반짝거리며 묻어있는 것이다. 초파리를 잡아먹고 루비를 뱉는 상황인가. 그러나 옆에 초파리를 세어보아도 빠진 녀석 없이 그대로다.


'오해할 뻔했네! 정말 한 마리도 먹지 않았는지 주머니를 잘라서 확인해 볼까?'


 특별히 영양제를 준 것도 아닌데 왜 영양 상태가 좋은 것일까.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붉은 기운이 있어 잘라보면 피가 솟을 것 같다. 아무래도 초식남이 전문가이니 밝으면 도움을 청해야겠다. 이참에 포렌식 (forensics)하고 PCR 테스트도 알려달라고 해야지.


 다음날 아침 초식남에게 연락하자 장갑, 가위, 바이알 등 실험 도구를 잔뜩 싣고서 왔다. 우리는 오늘 네펜데스의 주머니를 해부하고, 중합효소 연쇄반응 (PCR) 실험 영상을 찍어 초식남 TV 채널에 업데이트할 예정이다. dna를 증폭시켜 눈으로 확인하는 실험이라 기대가 된다.


"여러분, 오랜만이죠? 오늘은 특별히 베르니 님과 PCR 실험을 진행합니다. 초식남 TV 3주년 기념 초파리 천 마리를 받으시고 빨간 눈을 오마주한 작품을 만들어 주셨어요. 제가 키우다가 실패한 네펜데스까지 이렇게 탐스럽게 키우셨네요!"

"매일 커피 마실 때 아메리카노를 한 스푼씩 주었습니다. 이렇게 검정 비닐을 씌우고 창가에서 온실을 만들어 주었어요."  

"그리고 오늘 PCR 실험을 도와주시기로 했습니다."

"처음이라 부족하지만 잘 부탁드립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는 상상력을 최대한 동원해야 한다.  히브리서 11장에도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고 했다.


검체를 용액에 넣고 95도 끓기 직전까지 온도를 높이면 단백질에 열변성이 일어나면 dna 이중나선이 풀어진다. 온라인 과학 장터에서 구입한 ‘프라이머 (primer emulsion)’를 섞은 후 55도 정도 온도를 낮춰주면 dna 짝에 맞춰서 염기서열로 결합한다. 그리고 중합효소를 넣고 온도를 72도 정도 올려주면 dna가 연장되어 길이가 2배로 된다. 이것이 한 세트이고 서른다섯 번을 반복하면 dna가 2의 35 제곱으로 10억 개가 넘게 복제가 된다. dna에 따라 다르지만 실험시간이 대략 2-3시간이 걸렸다. 눈에 보이지 않아 실험은 외롭고 힘들기도 하고, 온도를 올렸다고 내리고 혼합하는 과정은 지루하고 섬세한 작업이다. 예전에는 겔 전기영동으로 확인했지만 이제는 형광물질로 실시간 확인이 가능하다. 블랙라이트를 켜니 플랑크톤 같은 것들이 발광하며 둥둥 떠 있다. 저 반짝반짝 빛나는 것이 dna라니! 우리는 서로 입을 맞췄던 것은 아니었지만 녹화가 끝날 때까지 그 누구도 루비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6시간에 걸친 실험이 끝나고 우린 녹초가 되었다. 편집을 하면 30분 안팎의 결과물이 나오지만 방송은 준비하는 시간이 반나절은 넘게 걸린다. 초식남을 앞에 앉히고 몇 가지 가설을 풀어보았다. 초파리에 dna 데이터가 전해진다. 도커 (docker)가 서버와 디바이스를 오가며 서비스를 하는 개념이다. dna도 유전으로 대를 넘어가는 형질과 한 세대에서 끝나는 것이 있는데 컴퓨터에도 두 가지 메모리가 존재한다. 빠른 속도로 연산이 이뤄지지만 휘발성이 있는 flash 메모리, 속도는 느리지만 영구적으로 저장이 되는 cpu 메모리가 그렇다. 초식남은 할머니도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하는 것을 지향한다면, 나는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알려주고 싶었다. 설명을 다 들은 MOK이 고개를 끄덕인다.   


"신기한데요. 생물학적 dna와 기계적인 구조가 쌍둥이처럼 닮아있다니요!"

"원래 컴퓨터가 인간의 뇌를 따라서 만들어져서 그래요. digital twin이라는 용어도 있잖아요."

"이렇게 같은 공간에 앉아있는데 저와 베르니 님은 애초에 다른 차원에 있는 것 같습니다."

"물리학에서 우리가 사는 세상은 수많은 차원으로 겹쳐져있다고 해요. 두 세계가 웜홀로 이어지는 지점이 있겠죠. 극과 극이 통한다는 말도 있잖아요?"

"그런데 네펜데스 주머니에 빨간 루비가 가득 들어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믿기 힘든 사실인데 어떻게 할까요? 알려지면 루비와 다이아몬드 가격이 곤두박질칠 텐데요..."

"당분간 비밀에 부쳐야 할 것 같습니다. 아무도 식충식물을 선상에 올리지는 못할 거예요. 제가 ngs에서 생물학적 원인을 찾아보는 동안 베르니 님이 선순환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보면 어떠실까요?"

"규모가 커지면 감당하기 힘드니 일단 법인부터 설립하려고 합니다. 연구원님이 CEO 할래요?"

"박사학위도 없고 부족한 제가 가능할까요?"

"Founder가 자격이 필요한가요? 먼저 발견하는 사람이 임자이지요. 연구원님의 끈기와 열정 높이 삽니다. 해보고 안 되면 그때 전문경영인을 영입해도 늦지 않을 것 같아요."


 초식남이 웃는다. 머쓱해서 그러는지 정말 기분이 좋아서 그러는지 내 앞에서 자주 웃는다. 행여 의사를 안 물어봤으면 혼자 울었을 것 같다. MOK은 실험실에 머물기는 아까운 인재다. 반복되는 지루함도 마다하지 않고, 늘 묵묵히 견디고, 안전운전도 잘하고, 무서운 것도 대담하게 만지고... 나의 부족함을 채워 줄 수 있는 소중한 존재이다. 결국 초식남은 공동대표직을 수락하였다. 내가 그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있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MZ세대가 어렵다 하지만 Z세대는 M세대와 뭉뚱그려 부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개성으로 자란 Z세대들은 부머 세대의 자녀 M세대와는 다르다. 가상공간에서 ae 아바타로 드나들면 느끼겠지만 DNA를 후대에 전해주는 것은 학습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성경에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낳고...' 누가 누구를 낳았는지 궁금하지도 않던 계보가 왜 중요한지 이제야 알 것 같다. M세대인 MOK을 바라보는 X세대인 나도 그렇다. 세대를 거듭할수록 업그레이드되는 생명의 신비에 겸허해질 뿐이다. © Lisay 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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