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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ligitis Jun 12. 2016

Nam June Paik 10주기 그리고 로봇 정신

백남준을 추억하며 

백남준 장례식 안내장 © Lisay G.

 2006년 1월 미국을 한 달간 여행하고 있었습니다. 풀브라이트 (Fulbright) 재단 프로그램으로 한국을 방문했던 동갑내기 친구가 귀국한 지 1년이나 지났는데, 한국 친구가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는 푸념에 겨울 휴가 1달을 뉴욕에서 보내기로 했습니다. 당시 30대 미혼여성이라 비자가 나오지 않을 거라는 소문도 있었지만, 초청 기관 덕분인지 비자는 순조롭게 나왔고 필요한 모든 것은 현지에서 구입하면 되기에 기내용 캐리어만 챙겨서 미국행 티켓을 끊었습니다. 10년째 해외에 살고 있지만 무소식이 희소식이라 평소 집에 연락을 하지 않는데, 친구 안부도 전할 겸 오랜만에 연락을 했습니다. 어머니는 흥분한 목소리로 백남준 선생이 서거해서 뉴욕에서 장례식을 치른다고 오늘 아침 뉴스를 브리핑해주셨습니다. 스마트폰이 없던 때라 인터넷으로 백남준 스튜디오에 스케줄을 알아보고 가능하면 참석하겠다고 답했습니다. 타지에서 예술하는 딸을 둔 어머니는 국내외 미술계 뉴스는 빠짐없이 브리핑해주셨습니다. 함께 있을 때는 정색하셨지만 돌이켜보면 어머니가 저의 후원자셨습니다.

뉴욕 프랭크 E. 캠벨 장례식장 © Lisay G.

뉴욕 81번가 1076 Madison Ave에 위치한 프랭크 E. 캠벨 장례식장 (Frank E. Campbell The Funeral Chapel)은 세계적인 부호들을 비롯해 유명인사들이 마지막으로 거쳐간 곳으로 유명합니다. 1898년 설립되어 백 년 이상의 전통을 지닌 장례식장으로 뉴욕타임스 부고란에 가장 많이 소개되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재클린 케네디 여사 (Jacqueline Kennedy Onassis), 로버트 케네디 (Robert F. Kennedy), 조지 거쉰(George Gershwin), 존 레넌 (John Lennon), 필립 호프만 (Philip Seymour Hoffman) 등이 이 곳을 거쳐갔습니다. 한국은 장례식에서 고인의 주검을 공개하지 않지만 미국의 장례식 문화는 다릅니다. 망자를 어떻게 아름답게 조문객들에게 보여주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행여 주검을 공개하지 못하면 '망자의 죽음에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말이 나올 정도이니까요. 기독교적 가치관에서 죽음이란 천국에 가는 것이기에 슬프지 않습니다. 우리가 상상하는 을씨년스러운 묘지가 아니라 주거지와 함께 어우러져 고인이 생각날 때면 언제든 생화를 들고 조문할 수 있도록 삶의 일부로 자리 잡아 있습니다.

관에 누운 고 백남준 © Lisay G.

<로봇 정신>은 로봇박사 한재권 교수가 펴낸 책 제목이기도 한데, '로봇과 공존하는 인간의 정신'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일자리를 뺏거나 인류를 위협하는 존재가 아니라 한계를 지닌 인간을 보조하고 때로는 재난현장에 투입돼 사람을 구조할 수 있는 로봇입니다. 아이폰 시리 (Siri)는 음성으로 이메일도 확인하고 검색을 하지요. 상용화를 앞둔 하이브리드 자율주행차는 어떨까요. 운전기사 없이 드라이브할 수 있는 꿈같은 세상이 열렸습니다. 음성과 얼굴인식으로 미묘한 감정을 읽고 모방하는 인공지능을 친구로 만들지 적으로 만들지는 우리의 선택입니다. 획일화된 교육이 아니라 '전인교육 (全人教育)'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지식은 그저 냉장고에서 재료를 꺼내 요리할 수 있으면 충분합니다. 북유럽에서는 2020년까지 교과별 교육을 없애고 4C 교육으로 전환한다고 발표했습니다. 4C는 소통 (communication), 비판적 사고 (critical thinking), 협업 (collaboration)과 창의성 (creativity)입니다. 어쩌면 AI가 인간을 위로하려고 지루한 체스나 바둑을 두면서 인류와의 공존을 모색하는지도 모릅니다. 소수 엘리트를 우주에 보내는 것을 문명의 진보로 보아야 할지, 인류가 다 함께 행복해지는 것을 선 (善)으로 규정해야 할지는 가치와 정치의 문제입니다.

To Anyone 뮤직비디오에 등장했던 CL 로봇

물리학 박사 이기진 (Dr. Lee kiejin) 교수는 걸그룹 2NE1 CL의 아버지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작업실 겸 갤러리 창성동 실험실은 컬렉터이자 디자이너로 활동하는 작가를 주축으로 끼가 넘치는 사람들이 모이는 아지트입니다. 도자기 로봇에 색깔을 넣거나 칸딘스키의 컴포지션을 입혀서 만든 다양한 로봇과 대형 로봇은 파리의 팔레 드 도쿄 (Palais de Tokyo)와 일본 하라주쿠 멀티숍에서도 판매되고 있습니다. 어릴 적 집집마다 있던 장난감 레고 (LEGO)를 기억합니다. 수없이 많은 조각인데 설명서를 따라서 조립하거나 혹은 나만의 창의력을 살려 이 세상에 없는 형태도 만들 수 있는 꿈의 장난감이죠. 일반적인 장난감이 한 가지 형태로 기능하는 것에 반해 레고는 무한한 변주가 가능하기에, 어른이 되어서도 그 매력에서 헤어나기 쉽지 않습니다. 이기진 작가의 로봇 역시 그러합니다. 때로는 부드러운 가죽으로 때로는 스피커로 음악을 결합해 시시각각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납니다. 유사품은 많지만 그 속에 담긴 철학과 정신까지 카피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602 공작소 파이프 로봇 (좌측)은 수제 조명으로 알려진 최윤녕 작가의 작품입니다. 판교의 한 카페에 갔다가 우연히 발견했는데, 반짝이는 전구 머리에 쇠파이프를 연결해 몸체를 디자인하였습니다. 팔과 다리, 손가락 등 관절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습니다. 2012년 핸드메이드 코리아에서 폭발적인 인기로 매진에 연이은 추가 주문으로 바쁜 나날을 보냈다고 합니다. 로봇의 스테레오 타입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 유사 제품은 수 없이 많지만 이들의 독창적 가치를 꼽으라면 틀에 넣고 찍어낸 것이 아니라 장인정신으로 수제작 합니다. 유닛 씨 Unit -C (최호준, 신승민, 정준영)로 알려진 로봇 도자기 조명도 경기 세계 도자비엔날레를 통해 젊은이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탔습니다. 도예 전공자들답게 노하우를 녹여내어 세라믹 가구와 고급 세라믹 조명을 전문적으로 제작하고 있습니다. 흙으로 빚어진 로봇들은 제각기 다른 표정과 무늬로 전구가 켜지면 따뜻한 감성이 느껴집니다.

                     도쿄 오모테산토 소프트뱅크 본점에서 만난 페퍼, 월 렌탈료는 5만 엔이다 © Lisay G.


인공지능 (AI)하면 얼마 전 국내에서 큰 충격을 안겨주었던 '알파고 (Alpha Go)' 대국을 먼저 떠올릴 것입니다. 하지만 그전부터 로봇의 약진은 꾸준히 있어왔습니다. 오래전부터 인간이 하는 일을 로봇이 대체하고 있는데 자동판매기, 로봇청소기, 자동판매기, 자동차, 스마트폰, 로봇수술, 디지털 TV 등 많은 곳에 관여하고 있습니다. 원형, 박스부터 시작해서 이제는 사람의 형태와 촉감까지 흉내 내고 빅데이터 분석과 머신러닝으로 호시탐탐 인간의 자리를 넘보고 있습니다. 세계 최초의 가정용 로봇 페퍼 (Pepper)는 1.21m의 위압감이 없는 크기와 생김새로 호텔, 병원, 공항, 은행, 상점에서 대인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 비극에서 풀지 못한 사건을 절대적 힘으로 해결하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 (Deus ex machina)'라는 극적 장치가 있지요. 우리가 무심코 던지거나 부순 컴퓨터가 이를 기억하고 있다가 인간을 심판할 날이 올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다시 백남준의 이야기로 돌아와 2006년 2월 나는 얼떨결에 세계적인 예술가의 장례식의 참여해 귀한 장면을 사진과 영상으로 담았습니다. 오노 요코 (Ono Yoko), 빌 비올라 (Bill Viola), 크리스토 & 장 클로드 (Christos & Jeanne-Claudes), 머스 커닝햄 (Merce Cunningham) 등 기라성 같은 예술가들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던 것은 물론이고, 험난한 예술가의 길을 떠나는데 다시금 용기가 충만해졌습니다.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꽃-아티스트 백남준을 기리며'라는 기사를 송고하고, 그 인연으로 베이징에서 열리는 백남준 선생 회고전 서문도 쓰게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나고 저는 아직도 예술이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곱게 단장하고 꽃으로 덮인 관속에 잠자듯 고요히 누워계신 모습이 떠오릅니다. 워낙 기인이었던 백남준이기에 어쩌면 저 세상에서 애도하는 우리를 지켜보면서 거꾸로 즐거워하고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올해 백남준 10주기 전시를 둘러보면서 그의 작품들을 마주하고 있으니 시대를 앞서간 로봇 정신을 보는 듯했습니다. 지금 여기, 세상에 남은 우리들은 여전히 넘사벽 백남준을 추억하고 있습니다. © Lisay 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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