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아더 따라 하기

암기가 아니라 이해가 목표다.

by 이동수

군대를 갔다 오고 복학을 한 내가 가장 난처한 문제는 돈이었다. 군대 가기 전에는 선배가 많았는데 복학을 하고 보니 어느새 챙겨야 할 후배들이 더 많아져 있었다. 적어도 내가 선배들에게 받은 만큼은 후배들에게 돌려줘야 했으므로 난 돈이 많이 필요했다. 가난한 집 형편에 대학을 다니느라 등록금 마련도 힘든데, 복학생 선배라는 이유로 필요한 돈까지 들어가야 하니 참 힘들었다. 특히 이런 돈은 부모님께 달라고 말하기 더 어려웠다.

명색이 군대까지 다녀온 놈이 하루가 멀다고 돈을 달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물론 영원한 물주 작은 누나가 몰래몰래 용돈을 주었지만, 그걸로는 턱도 없이 부족했다. 아르바이트하려고 해도 잘 웃지 않는 얼굴 때문인지 잘 구해지지 않았다. 하루가 다르게 늙어가는 부모님을 보면 뭐라도 해야 했다. 아르바이트도 안 구해지고 돈은 필요하고 아무튼 진퇴양난이었다. 결국, 난 후배들과 만남을 최대한 피하기 시작했고 후배들에게 난 항상 바쁜 사람이 되었다.


시험 기간이 되고 난 어떻게 해서든 장학금을 받기로 했다. 시험공부를 열심히 하면 충분히 가능하겠다 싶었다. 아니 해야만 했다. 부모님의 부담도 덜어드리고, 후배들에게 무게도 잡을 수 있는 일거양득이었다. 장학금을 받으려면 강의를 열심히 들어야 하는데 난 그런 스타일은 아니었다. 틈만 나면 딴생각에 빠져들곤 했다. 그래도 장학금은 받아야 했다. 한 번 결심하고 나니 더 절실해졌다. 다른 길은 보이지 않았다.

시험 과목 중 한 과목이 문제였다. 몇 번을 읽어도 도대체 뭔 소린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읽고 또 읽어도 짜증만 날 뿐이었다. 창피함을 무릅쓰고 후배들에게 물어봐도 자기들도 잘 모르겠다고 했다. 막막했다. 어찌해야 하나 생각하다 고등학교 때 사회 선생님에게 들었던 맥아더 이야기가 생각났다.


맥아더는 미국 육군사관학교인 웨스트포인트에 다닐 때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를 배웠다. 그런데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아 통째로 외워 시험을 봤고 너무 정확하게 정답을 적은 것이 이상했던 교수는 맥아더를 불러 어떻게 그렇게 정확하게 적었냐고 물었다. 그러자 맥아더는 “사실 몇 번을 읽어도 알 수 없어 책을 통째로 외웠습니다.”라고 했다. 그 말을 들은 교수는 “실은 나도 그렇다네.” 했다는 이야기였다.


사회 선생님은 암기는 머리가 나빠도 노력하면 되는 것이므로 머리 탓하지 말고 노력하라고 이 이야기를 해 주신 거로 기억한다. 아무튼, 난 맥아더가 되기로 했다. 문제의 책을 맥아더처럼 무작정 외웠다. 외우고 또 외워서 시험 시간에는 책에 있는 그대로 적을 수 있었다. 시험 보고 첫 강의 날 교수님이 내 이름을 불렀다. 영문을 몰라 당황한 나에게 교수님은 자신이 수년 동안 이 책으로 강의를 했는데 조사까지 똑같은 적은 사람은 처음 봤다고 하셨다. 그 노력을 높이 사 만점을 주었다고 하셨다. 민망했지만 그래도 내 맥아더 따라 하기는 성공적이었다. 결국, 난 장학금을 받아 부모님의 칭찬을 받았고 후배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렇게 열심히 외웠던 것이 뭔지는 불과 한두 주 만에 잊어버리고 말아 지금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교사가 되고 한동안 나는 공부를 포기한 아이들에게 나의 맥아더 따라 하기를 이야기해 주었고 “너희들이 공부를 못하는 건 노력을 안 해서라고. 이해가 안 되면 나처럼 외워!”라고 격려하고 질책했다. 그런데 몇 년 전 그때도 여느 때처럼 아이들에게 맥아더 따라 하라고 질책하는데 한 아이가 “선생님,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해요? 그래서 뭐가 남는데요?” 했다. 순간 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처럼 멍했다. 적당히 얼버무리고 교실을 나와 ‘뭐가 남았지? 왜 공부했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맞다. 그렇게 외웠어도 내 머릿속에 하나도 남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무식한 공부 방법으로 그 과목에 질려버려 그 강의 관련 분야는 내가 절대로 관심을 가져서는 안 되는 것으로 남았다. 장학금은 얻었지만, 그 강의를 선택하고 들었던 목적과는 정반대의 결과가 벌어지고 만 것이다. 난 공부를 한 것이 아니라 장학금이라는 눈앞의 이익에 집착해 잘못된 요령만 익힌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모르고 아이들에게 자랑스러운 경험이라고 아이들에게 훈계(?)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내 말을 믿고 열심히 외운 아이 중 실력이 향상된 아이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대부분 아이가 공부라는 것에 질리지 않았을까 싶다. 가뜩이나 하기 싫은 공부를 무조건 외우라니 이 얼마나 무식한 말인가? 장학금, 성적이라는 눈앞의 목표에 대한 집착이 아이에게 공부를 더 멀리하게 하는 것은 아닐까? 공부라면 치가 떨리게 만드는지도 모르겠다. 부끄럽고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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