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을 인정하고 진정으로 반성하는 것이 학교폭력 해결의 출발점
요즘 유명인들의 학교폭력 문제가 이슈가 돼 충격을 주고 있다. 학부모들은 학교폭력의 심각성과 문제점을 일깨워 주고 있지만, 자신의 자녀들이 학교폭력의 피해자가 될까 봐 불안해하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어느 때보다 피해자가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당했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학부모나 지인들이 많아졌다.
나는 그들에게 학교폭력을 예방하려면 자식과 매일 10분이라도, 그게 힘들면 1주일에 한 번만이라도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면 고학년 부모일수록 어렵다고 한다. 맞다. 사실 나 역시도 모처럼 아이들과 이야기를 하려 해도 어색하게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도 그것만큼 학교폭력을 예방하는 확실한 방법이 없으니 포기하지 말고 가볍게 시작해 보라고 권한다.
그리고 혹시 피해 사실을 알게 되면 자신이나 자식을 탓하거나, 자신이 직접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학교를 믿고 담임선생님에게 꼭 연락해 상담하라고 한다. 그러면 학교를 믿을 수 없다고, 선생님들이 너무 무관심한 것 같다고 노골적으로 학교에 대한 불신을 드러내기도 해 민망하고 가슴이 아프다.
그리고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들을 이야기 다 들었다는 듯 이야기를 끝내려고 한다. 자식이 가해자일 경우는 생각조차 안 하는 것 같다. 그러면 난 몇 년 전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곤 한다.
학년부장 선생님이 심각한 얼굴로 잠깐 보자고 했다. 다년간의 경험으로 안 좋은 일임은 직감하고 학년부장 선생님을 따라 빈 연구실에 들어가니 거기엔 이미 두 분의 담임선생님이 와 계셨다. 순간 “학교폭력이구나”했다. 옆반 담임선생님이 어젯밤 △△이 어머니에게 들은 사실을 이야기했다.
“△△이 어머니가 말씀하시기를 △△이가 초등학교 때부터 친했던 A, B, ○○이에게 맞고 괴롭힘을 당해서 △△이가 학교에 안 가려한다고... 그래서 오늘 아침 △△이와 이야기를 했어요. 처음에는 입도 뻥긋하지 않고 울기만 하는 아이를 달래고 설득하니 여름방학 시작할 무렵부터 지금까지 A, B, ○○이에게 지속적인 놀림을 당했고, 여섯 차례 맞았는데 그중 두 번은 세 명 모두에게 맞았다고 했어요. 제가 보기엔 너무 심각한 것 같아 일단 학년부장 선생님께 말씀드렸어요. 아이들과 소통을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자기 반 학생이 한 학기 넘게 피해를 당하고 있는 것도 몰랐다는 것이 너무 부끄럽고, 미안해서...”
“선생님, 너무 자책하지 마시고 △△이가 많이 불안할 거예요. △△이가 적은 피해 사실확인서를 보니 자존감도 많이 떨어진 것 같아요. 잘 안정시켜 주세요. 사실 확인이 중요하니 두 분 담임선생님은 A, B, ○○이를 조사해주세요. 다 아시겠지만 너무 단정적이거나 위압적으로 조사하지 마시고요.”
“네, 알겠습니다. 너무 죄송합니다.” A, B의 담임선생님이 무겁게 말했다. 나 역시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바로 ○○이를 만나 사실 확인을 했다. ○○이는 처음에는 그런 적 없다고 했다. 그래서 장난이든 아니든 때린 사실은 있냐고 하니 없다고 하다 구체적 날짜와 시간 등으로 말하면 그때서야 장난으로 그런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는 다른 아이들도 다 그러고 노는데 △△이만 예민하고 이상해서 그렇다고 했다. ○○이에게서 반성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한참을 이야기해도 소용이 없었다. 시간이 늦어 일단 이 시간 이후로 절대로 △△에게 전화나 SNS로 연락하거나 만나지 말 것을 그리고 다른 아이들에게도 △△이 이야기는 하지 말라고 단단히 주의를 주었다. 그리고 내일까지 같은 상황에서 네가 △△이라면 어땠을지 상상해서 써오라고 하고 하교시켰다.
그리고 ◌◌이 어머니에게 전화를 해 조사한 사실을 말씀드렸다. 어머니는 그럴 리 없다고 아들이 착해서 지금까지 누굴 때리거나 한 적이 없다고... 그리고 △△이와는 어린이집 다닐 때부터 친구고, 부모끼리도 친구로 지내는 사이라 절대 그럴 리 없다고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으니 자신이 △△이 엄마를 만나 오해를 풀겠다고 하셨다. 철저하게 본인, 자식 위주로 사건을 바라보는 것 같아 한숨이 나오는 걸 억지로 참았다. 까딱 잘못하면 아이들의 문제가 어른들의 감정싸움까지 번져 문제 해결이 더 어렵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지금 ◌◌이를 집으로 보냈으니 ○◌이가 오면 차분히 이야기 나눠 보시고 내일 학교로 나와 주시라고 하고 통화를 끝냈다. 그리고 A, B의 담임선생님을 만났다. 선생님은 A는 사실을 인정하고 반성하는데, B는 ◌◌이와 마찬가지라고 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등교한 아이들을 조용히 불러 확인하니 한 아이가 △△이가 아무 소리도 못하고 맞는 걸 본 적이 있다고 하였다. 너무 심한 것 같아 그러지 말라고 하고 △△이에게 왜 가만히 있냐고 했더니 그 아이들이 아니면 친구가 없다고 했다고 했다. 보안을 당부하고 돌려보내고 ◌◌이를 불렀다. 그리고 같은 상황에서 자신이 △△이라면 어땠을지 꺼온 것을 읽게 했다. 담담하게 읽던 ◌◌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울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 해결의 출발점이 보였다.
“◌◌아, 힘들지? 큰 용기를 냈구나. 선생님은 네가 처음부터 나쁜 마음으로 때렸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처음에는 내 말대로 거친 장난이었을 거야. 욱하는 마음에 때리고 너도 아마 놀랬을 거야. ‘내가 △△이를 때리다니...’하고 말이야. 그런데 △△이가 뭐라 하지도 않고 다른 아이들이 때리는 걸 보고 너도 점점 그래도 되나 보다 하는 생각을 하지 않았나 싶어. 하지만 친한 친구에게 맞고도 그 친구를 잃을까 봐 또 나중에는 무서워서 말 못 하는 △△이 마음을 조금이라도 생각했다면 지금 이 상황까지 오지는 않았을 거야. 하지만 지금이라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어떻게 △△이의 상처를 달랠지 생각해 보자. 어제 선생님이 말한 대로 당분간 △△이를 만나거나 하지 않도록 해.”
“네. 선생님.”
◌◌이를 교실로 보내고 교무실로 돌아오니 △△이 담임선생님과 A, B의 담임선생님이 아주 심각한 얼굴로 기다리고 있었다. △△이 담임선생님은 아침에 △△이 어머니가 전화를 해서 어제저녁에 가해 학생 어머니들이 자신의 가게에 찾아왔길래 사과하러 온 줄 알았는데, 와서는 별일도 아닌 것 같고 그런다고, 남자아이들 다 그렇게 노는 것 아니냐고, 왜 문제를 키우냐고 했다고, 더욱이 참을 수 없는 건 △△이가 좀 그렇지 않냐고... 처음에는 사과하고 다시 잘 지내기를 바랐지만 이젠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고. 학교폭력으로 신고할 테니 괴롭힌 아이들을 철저히 조사해서 강력하게 처벌해 달라고, 또 경찰에 고소하고 하여간 끝까지 가겠다고 했다고 했다.
어제 ◌◌이 어머니와 통화하며 걱정한 것이 불과 하루 만에 현실이 돼 버렸다. 그나마 어제보다 좋아진 것은 가해 학생들 모두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문제 해결의 열쇠는 학부모에게 있었다. 점점 교육의 영역이 줄어드는 것 같아 무력해지는 마음을 애써 다잡고 ◌◌이 어머니를 기다렸다. ◌◌이 어머니는 시간 맞춰 오셨다. 서로 어색했다. 녹차 한 잔을 드리며 어렵게 말을 꺼냈다.
“◌◌이 어머니, 제가 게을러서 좀 더 세심하게 살폈어야 하는데, 워낙 ◌◌이가 밝고 친구도 많고 해서 그러지 못했어요. 정말 죄송해요. 힘드시죠? 저도 자식을 키우고 있지만 제 마음대로 안 되더라고요.”
“아니에요. 선생님. 아이가 얼마나 선생님을 좋아하는데요. 선생님............, 사실 어제 ◌◌이하고 이야기한 후 A, B 엄마와 연락해서 △△이 엄마를 찾아갔어요. 그리고 서운하다고 했어요. 아이들이 놀다 보면 그럴 수 있고 설령 그런 일이 있었으면 자기에게 먼저 연락을 해야지 어떻게 학교에 연락을 하냐고... △△이 엄마는 친한 친구들에게 맞고 괴롭힘을 당해 학교에 못 가겠다고 하는 아이 마음은 생각해 봤냐고, 또 아이의 말을 들으며 아이가 당했을 고통을 떠올리는 제 마음은 상상이나 해봤냐고 하며 다 필요 없으니 나가라고 하더라고요. 저도 흥분해서 마음대로 하라고 하고 집에 돌아왔어요. 그런데 집에 들어왔는데 ◌◌이가 선생님이 써보라고 하셨다고 △△이 입장의 글을 쓰고 있더라고요. 순간 선생님이 너무 △△ 말만 믿는 것이 아닌가 생각도 했어요. 그런데 ◌◌이가 쓴 글을 읽어보니 제가 너무 이기적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 자식이 학교폭력 가해자로 낙인이 찍힐까 봐 제 자식이 한 짓은 최대한 작게 하고 ◌◌이의 사소한 잘못은 크게 했구나. 그리고 제가 받은 상처는 최대한 부풀리고, △△이 엄마의 마음은 별 거 아니라고...”
“사실 어머니가 오시기 전까지 정말 걱정 많이 했습니다. 제가 생각할 때 어떤 문제든 해결의 출발은 문제를 바로 보고 인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어제 통화를 하는데 죄송하지만 어머니가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시는 것 같고, 어머니 입장에서만 생각하시는 것 같았거든요.”
“선생님. 사실 ◌◌이를 제가 혼자 키우고 있어요. 아빠 없이 혼자 키우다 보니 누가 ◌◌를 보고 버릇없다고, 아빠 없는 티가 난다고 할까 봐 ◌◌이에게 절대로 남에게 욕 들을 일 하지 말고 피해 주는 일 하지 말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이야기하고 해서 절대로 ◌◌이가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어요. 아니 더 솔직히 말씀드리면 아들 하나 바라보고 사는 제 인생이 무너지는 것 같아 받아들일 수 없었어요.”
“어머니, 전에 ◌◌이와 이야기하는데 어머니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자기가 엄마 보호자라고. 어머니, ◌◌이 잘 키우셨어요. 이번 문제 역시 잘 해결한다면 ◌◌이가 앞으로 살아가는데 큰 교훈이 되리라 생각해요.”
“선생님, 어떻게 하면 될까요?”
“어머니, △△이 어머니가 오늘 아침 학교폭력으로 신고하셨어요. 정말 화가 많이 나신 상태세요. 어머니가 ◌◌이를 보고 사시듯이 △△이 어머니 역시 그러리라 생각해요, 일단 △△이와 △△이 어머니가 안정이 될 때까지는 직접 만나시기보다는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편지 같은 것을 써서 주시면 제가 담임선생님을 통해 전달을 하고, △△이와 △△이 어머니가 원하실 때 직접 만나 저에게 말씀하시듯이 진심을 보여드린다면 어떨까 싶어요. 물론 그럼에도 용서받지 못할 수도 있어요.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할 문제고요. ◌◌이를 아침에 만나 보니 이미 그럴 마음인 것 같았어요. 아이가 원래 착한 아이잖아요. 어머니는 어떠세요?”
“네, 저도 그렇게 할게요. ◌◌이에게 평생 반성하고 반성하고 살아야 한다고 할게요.”
소리 없이 흐르는 어머니의 눈물을 보며 혼자 아이를 키우며 얼마나 노심초사했을지, 또 이번 일이 얼마나 충격으로 다가왔을지, 자식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조금이나마 짐작이 돼 어머니를 보내고도 한참 동안 마음이 아팠다.
그 후 담임선생님을 통해 가해 학생들과 부모님들의 사과 그리고 ◌◌이 어머니의 편지가 △△이와 △△이 어머니에게 전해졌다. △△이 어머니와 ◌◌이 어머니의 전화 그리고 만남. 그리고 △△이와 가해 학생들의 만남이 이어진 끝에 △△이 어머니는 아이들을 용서했으니 학교장 자체 종결로 처리해 달라고 하셨다.
◌◌이 어머니에게 전화를 했다.
“어머니, △△이 어머니가 용서하셨어요. 학교폭력으로 신고된 건이라 절차상 학교장 자체 종결 처리돼서 생활기록부에도 기록되지 않고 징계도 받지 않아요.”
“그래요. 정말 고맙고 미안하네요. 사실 며칠 전 △△이 엄마와 이야기하다 서로 울었어요. 한참을 울다 또 미안하다고 내가 너무 이기적이었다고 하고... 또 울고... 다시는 이런 일 없게 해야죠. 아무튼 선생님께도 너무 죄송해요.”
“아니에요. 제가 좀 더 세심했다면 예방할 수 있었을 텐데 제가 죄송하죠. 내년에 제가 ◌◌이 담임이 아니더라도 끝까지 AS 할게요. 수시로 불러 이야기할게요.”
종례 후 ◌◌이와 함께 △△이 담임선생님을 찾아갔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제가 좀 더 세심하게 지도했어야 했는데...”
“아니에요. 저도 너무 자만했던 것 같아요.”
그러자 보고 있던 ◌◌이가 말했다.
“선생님,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할게요. 엄마와 담임선생님 말씀대로 저의 잘못으로 △△이와 △△이 어머니 그리고 엄마, 선생님 모두에게 너무 큰 아픔과 실망을 드린 것을 명심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할게요. 죄송해요.”
물론 학교폭력이 안 생긴다면 좋겠지만 만일 발생했다면 나는 가해자 측의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가해 학생과 학부모가 자존심을 내세워 사실을 거부하거나 회피해서는 하지 말고, 피해자 입장이 돼서 피해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 피해자 중심의 생각을 할 때 학교폭력은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가해 학생이 없으면 피해 학생도 없다. 내 아이가 피해를 당할까 걱정하고 확인하는 만큼 다른 아이를 가해하지 않을까 걱정하고 확인한다면 학교폭력은 일어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