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초소는 사라졌고, 기록은 남았다
인왕산 능선을 따라
과거 군인들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운다.
그들은 이름 없이, 얼굴 없이,
다만 자리를 지키는 임무만을 안고
그 초소에 있었다.
그 자리에 있던 기억만 남기고,
그 자리를 떠났다.
그 시절,
산은 한 걸음마다 경계였고,
바위는 위치 좌표였고,
침묵은 명령이었다.
누가 묻지 않았고,
대답할 일도 없었다.
기억을 남기지 않는 것이
오히려 책임을 다하는 방식이던 시간.
지금 그 자리는
누구나 오를 수 있고,
누구나 숨 쉴 수 있는 산책로가 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산을 오를 때
그 경계 위에 남은 군인의 그림자를 잊지 말아야 한다.
정치는 가끔
그 자리를 지킨 자들의 이름을 묻지 않는다.
그러나 리더는 달라야 한다.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의 무게까지
함께 품을 수 있는 사람이 리더다.
책임은 명령이 아니라,
기억하는 일이다.
과거를 끌어오는 일이 아니라,
과거 위에 무엇을 얹을지를 고민하는 태도다.
인왕산은 그런 사람을 기다린다.
그 자리를 잠깐 지나간 사람이 아니라,
그 자리를 지켜온 이들의 무게까지
자신의 판단에 담을 수 있는 사람.
그게 리더다.
그게 책임이다.
초소는 사라졌지만,
그곳에 있었던 이들의 무게는
바위와 바람 속에 여전히 남아 있다.
우리는 그 자리를 그냥 지나칠 수 있다.
하지만 리더라면 멈춰야 한다.
그 그림자에 대답해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