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지르는 글쓰기'를 넘어서
1. 계급과 계층, 다양한 사회집단이 존재한다. 그런데 그 어떤 계층이나 집단도 하나의 속성으로 똘똘 뭉쳐있지 않다. 어떤 집단에 대한 명명이 그 집단의 특성을 모두 드러낼 수는 없다. 아니, 때로는 이름이 해당 집단의 특성과 행동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 하게 하기도 한다.
2. 개념의 세계도 마찬가지다. 일견 단순한 개념조차도 다수에 의해 회자되려면 결코 짧지 않은 여정을 거쳐야만 한다. 수많은 이들의 경험과 생각이 응축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적어도 개념적 층위에서 보면 하나의 개념 안에는 다양다종한 입장과 생각, 사뭇 다른 삶의 경험이 녹아들게 된다. 그렇기에 개념은 종종 폭력적이다. '예외'나 '불규칙', 구체성을 잘라 내야만 많은 이들의 말글에 오르내리는 권력을 차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3. 기사건, 칼럼이건, 페이스북 업데이트건 한정된 지면 안에서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려다 보면 집단과 개념의 단면, 그 중에서도 아주 작은 부분만을 이야기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짐짓 권위적인 목소리를 취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개념을 납작하게 만든다‘는 표현은 이런 행태를 가리킨다.
4. 그 와중에 사회문화적, 역사적, 정치적 함의를 지닌 다면적이고 중층적인 개념 혹은 집단의 삶과 역사는 조악한 캐리커쳐로 변화한다/격하된다. 예를 들면 (그렇지 않아도 구멍이 숭숭 뚫린) 세대론이 몇 분 짜리 클립으로 변환되는 과정이, 그것이 다시 밈이 되어 순식간에 퍼지는 과정이 그렇다. 다양다종한 개체와 관계, 그들의 동적인 변화가 한두 가지 개념으로 전화되는 현상이야말로 인간이 갖고 있는 고도의 추상화 능력과 기막힌 망각 역량을 동시에 보여준다.
5.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은 "대부분", "일부", "경향이 있다", "예상된다", "가능성이 있다", "증명된 건 아니다", "추정된다", "특정한 조건이 주어진다면", "특정한 시공간 하에서"와 같은 표현들의 형태는 알고 있지만, 그 의미와 쓰임에 대해서는 '무지하다'. 엉망진창인 세계를 경험하고 있으면서도 구김없이 깔끔한 언어의 세계를 별 생각 없이 받아들이곤 한다. (이쯤에서 소위 '구루'의 지혜를 담은 명언이 소비되는 방식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6. ‘~인 것 같다’는 말은 자신 없음의 표현이니 쓰지 말라 하고, ‘~라고 생각한다’는 ‘네가 말하는데 그럼 네 생각이지’라며 글쓰기 초보로 몰아붙인다. “~이다”와 “~라고 생각한다”는 명백히 다른 문장임에도 불구하고, 왜 거기에 ‘생각한다’를 썼는지, 무엇이 '생각한다'라는 어구가 그곳에 솟아나도록 했는지 묻지 않는다. 나쁜 습관은 고치면 그만이니까.
7. 사실 공적인 영역에서의 글쓰기에서 특정 개념과 집단에 대한 일반화가 허용되는 경우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인간은 언젠가 죽는다’ 정도가 퍼뜩 떠오른다.
8. 글쓰기를 "자기 주장을 확고부동하게 표현하는 과정"이 아니라 "일반화에 저항하며 세계-개념-자신의 관계를 정립하는 복잡성의 정제과정"으로 이해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생각을 문자로 내지르는 일은 분명 글쓰기가 맞다. 하지만 그보다 조금은 나은 글쓰기를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영어로논문쓰기 #삶을위한리터러시